다산초당(茶山艸堂)의 동암(東庵)과 서암(西庵)-뿌리길
다산초당(茶山艸堂)
동암(東庵)과 서암(西庵)
다산초당(茶山艸堂)의 동암(東庵)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하던 건물로서
여기에서 저술작업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는 동암(東庵)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관(牧民官)이 지녀야할 정신과 실천방법을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1976년 서암(西庵)과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판 중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정다산유적(丁茶山遺蹟)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380 번지
만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107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저자가 죽은' 이 시대, 원본 텍스트는 수많은 저자들에 의해 복제,
가공되는 시뮬라시옹의 시대다. 원래도 그랬다.
초당은 말 그대로 풀로 지은 집 뿐 아니라,
자신의 당호를 낮춰 부르는 뜻도 있었다. 기와집인데도 말이다.
'토굴'도 그렇다. 사실 당시 다산은 다산이라는 호도 잘 쓰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들이 다산이라고 즐겨 쓰는 것일 뿐.
다산의 사상은 건물을 복원한 사람들은 물론 동안 끊임없이 재구축되고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다산의 사상을 잇겠다고 뜻을 모으고, 그것을 세우고, 연구하고,
이리저리 힘을 써 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예전의 건물이 어떻든지간에
지금의 건물은 이미 다산의 초당으로 시각적으로 일체화가 되어 있다.
혹 자신들의 과오를 들추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는가?
문화재청에서는 여기에 원본성만을 들이델 것인가? 나는 예산소모도 걱정된다.
'백성의 돈을 한푼이라도 절약해 쓰는 것'이 목민정신의 출발이다.
그런데, 멀쩡한 건물을 왜 뜯어다 옮기고 초가집으로 다시 짓는다는 것인가?
내가 초등학교 때 당시엔 갯펄이었던 귤동 앞에 유적비를 세웠는데,
그때만 해도 다산초당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80년대가 지나면서 많은 분들의 노력에 의해
다산의 면목이 드러나고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다산초당이라는 것의 물리적 시각적 이미지를
현재의 건축물로 각인하고 있다.
그런데, 초당을 새로 짓는다면 이제 사람들은
예전의 그것을 지우고 다시 만들 것이다. 이 혼란,
그것이 가져올 비물리적 대중들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궤적은
문화재청은 진정 모른단 말인가?
다산 초당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뿌리의 길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정호승님의 시처럼
가슴에 와 닿는 뿌리의 길을 함께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을 가다보면
뿌리의 길을 만나게 됩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뿌리가 땅위에 올라와 있다니...
깜짝 놀라게 되는 길을 만나고
뿌리를 밟지 않고 걷기 힘들만큼 온통 길이 뿌리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뿌리가 계단처럼 뻗어 있습니다.
뿌리의 길을 걸으면
그 시대를 고뇌하던 다산의 마음이 보이는듯 하여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제멋대로 휘어지고 꺾이고
휘감은 뿌리의 길은 알고 있으리라.
수 많은 고뇌가 이 길에 깔려 있음을 보게되는 길이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며 공감하고.....
뿌리의 길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 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흠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할 길이 되어 눕는다.
-정호승님의 詩-
나는 뿌리의 길을 오르며
오래전 읽었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참다운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라 생각하며 늘 마음에 둔 편지내용입니다..
저도 문학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서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라서 적어봅니다..
“지식인이 세상에 전하려고 책을 펴내는 일은 단 한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해서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신경 쓸 것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이가 있다 면,
너희들은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설령 적대시하던 사 람이라도 그와 결의형제를 맺어야 한다.”
뿌리의 길을 걸으며
정호승님의 시구처럼
땅 위로 흐르는 눈물 덩이를 밟고 지나야 했습니다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까지
흙길에 솟은 뿌리를 보며
나를 다잡아 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