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우리들
196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
이순재와 남정임의 한창때 모습.
최인현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영화 "춘원 이광수"의 한 장면.
춘원의 젊은시절 역을 맡은 "이순재"와 그의 아내 허영숙 역을
맡은 "남정임"이 극중 연애하던 시절의 한창 때 모습이다.
"남정임"의 눈물이 고인 듯한 눈망울이 참
이 영화에서 중년 이후의 춘원과 허영숙 역은
"이광수"의 일대기를 "최인현"감독이 당대의 톱스타를 더블
캐스트로 기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영화화하였지만,
"트위스트 김"과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있는데
저 사람이 극장쇼의 전설이라는 "체리보이"이다.
1968년경 부산의 극장무대로 추정되는 사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상수도 보급률은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푸른다리 근처
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 1968년 안양역 모습
↑ 60년대의 부산 자갈치시장.
↑ 60년대 자갈치 아지매들의 화사한 모습.
↑ 2.28당시 경북고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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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주한미군 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신발 안에는 KOREA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는 글씨와 함께 두루마기의
남자와 한복을 입고 춤을추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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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직후에 갑곶나루에서 거행된 강화도 육로개설 기공식에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하여 치사를 하고 있다.
이 강화대교는 오랜 난공사 끝에 1970년 준공된다.
60년대의 여자아이
60년대의 신발장수
60년대의 시장의 사기전
60년대 서울 도봉동의 소달구지
60년대 서울 종로거리
60년대의 서울 공동수도
X 박기...먼지 저두 멀러..
60년대의 찹쌀떡
60년대의 제주 모슬포 빨래터
60년대의 대구 거리
60년대의 서울역앞
1950년대 전쟁 직후
우산고치는 아저씨
헌책방
곡마단 선전
뻥튀기
굴뚝청소부
60년대 부산광복동 거리
60년대 대구서문시장
60년대의 시발택시의 행렬[서울역]
60년대의 창경원
60년대 서울역앞의 전차
60년대 명동성당
60년대의 명동거리
60년대의 남대문로
추억의 딸기밭
약장수
무료극장
60년대의 아동만화
김정호 사진
김인순
교련발표회
통키타 여행
서수남 하청일
임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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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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