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의 초대/영화음악

Titanic호의 바이올린과 빙하

까까마까 2013. 11. 16. 04:51

 

 

 

밑의 동영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연주곡과 상황을 올렸습니다.

기억을 더듬으시려면

다 읽으신 후 재생해서 보세요

 

 

 

Titanic호의 바이올린과 빙하

 

 

 

     

 

 

 

 

 

 

   

 

Titanic호의 바이올린과 빙하

   

 

 

 

 

1997년도에 상영된 제임스 카메룬(James Cameron)감독의 영화 "타이태닉"(Titanic)을

아니 보신 동문들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또 관람하신 많은 분들은 뱃머리에서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와

윈슬렛(Kate Winslet)이 펼친 멋있는 장면을 기억하실텐데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두 배우가 모두22세의 신인급 배우였었다.

기울어져 가는 여객선 갑판위에서 구명보트를 타기보다는

다른 승객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안심을 시켜주기 위하여

찬송가"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Nearer my God to Thee)을

연주하던 여객선의 실내악단의 모습은 기억에 없을지도 모른다.

 

 

밴드매스터Wallace Hartley役을 맡은 배우는 Jonathan Evans-Jones이다.

 

 

 

여덟 명으로 구성되었던 악단은

바이얼리니스트Wallace Hartely(1878-1912)를 단장으로

실제로 탑승을 했었고 영화에서 처럼

갑판에서 계속 연주를 하다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였다고

생존자들이 증언을 하여서 그 후로 그들은

"타이태닉의 영웅적인 악사들"(The Heroic Musicians of Titanic)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하틀리의 바이얼린이 그와 함께 발견된 경위를 보면

마지막 순간 배가 침몰할 때까지 연주를 하고 있었던것은 아닌듯 하다.

그가 바이얼린을 넣은 가죽가방을 목에 걸고있는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나 그들이 구명보트를 타지않고

계속 연주를 하고 있었던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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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오후 영국에서 하틀리가 타이태닉號에서 연주했던 이 바이얼린이

경매에서90만 파운드에 팔렸다는 뉴스가있었다.
소리통의 윗 부분은 두 군데나 갈라지고 줄도 두 개만 남은건데.

AFP통신사의 뉴스에 따르면 입찰은 50파운드로 시작을 했으나

몇분내에20만 파운드를 넘었고

90만 파운드로 낙찰이 되기까지 1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구입을 한 사람은 영국의 수집가라고 한다.

수수료, 컴미션등을 포함한 실제 구매가격은 1,050,030 파운드 였고

전화를 통한 세계 여러나라의 응찰자들이 심한 경쟁을 했다고 보고를 했다.

경매를 주관한 회사는 약30만 파운드를 낙찰가로 예상했다고 했는데.

 

 

 

 

90십만 파운드, 들어왔습니다.

다른 분 안 계십니까?

두번?? 세번??? 90만 파운드에 낙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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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號의 밴드매스터 하틀리(Wallace Hartley)의
바이얼린이 경매에 부쳐진 얘기를 찾아본다.

 

 

Wallace Hartley의 바이얼린과 그의 이니셜(W.H.H.)이 찍혀있는 가죽가방.
타이태닉이 침몰하고 10일 후 그의 시신이 인양되었을때
그는 목에 이 가방을 걸고 있었는데 그 안에 바이얼린과 함께
그의 소지품들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from Youtube)

 

 


이 가죽가방도 경매에 나온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가죽 가방과 바이얼린의 부력으로

그의 시신이 수면으로 떴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틀리의 이 유품들은 윌트셔(Wiltshire,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00마일)의

Henry Aldridge & Son이라는 타이태닉號에 관련된

물품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Henry Aldrige社는 2006년에 하틀리의 유품을

소유주로 부터 감정의뢰를 받았고 지난7년간

치밀한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친 후2013년 3월에야

이 바이얼린이 타이태닉號에서 하틀리가 연주하던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 것은

바이얼린의 꼬리부분에 붙어있는

"For WALLACE on the occasion of our ENGAGEMENT from MARIA"

"월러스에게, 우리의 약혼을 기념하며, 마리아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은장식.

마리아는 바로 그의 약혼녀Maria Robinson(1880-1939)이었다.

 

 

그녀는 평생을 미혼으로 지내다가193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가 평생 제일 소중하게 간직했던 하틀리의 바이얼린과

기타 유품이 들어있던 가죽가방은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던

언니(Magret)가 발견하여 후에 그 지역의 구세군에게 주었고

구세군의 책임자는 음악선생님이자 바이얼리니스트인 멤버에게 주었고

그는 이것을 후에 Eve라는 여인에게 주었고

Eve의 아들(현재의 소유자)이 어머니의 집 다락에서 발견하여

경매회사인 Henry Aldridge社에 감정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틀리의 아버님은 감리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이셨으며

하틀리 자신도 아주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고

개인적으로 찬송가 "Nearer my God to Thee" 를 매우 좋아해서

자신의 장례식때도 이 찬송가가 연주되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For WALLACE on the occasion of our ENGAGEMENT from MARIA”

네 귀퉁이의 못은 바닷물에 의하여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경매회사의 앤드루 앨드릿지(Andrew Aldridge)

바이얼린의MRI스캔검사를 실시한 BMI Ridgway Hospital 앞에서

바이얼린을 보여주고 있다.

바이얼린 자체는1880년경 독일에서 만들어진

평범한 것으로 소리통의 윗부분에 두 곳이 갈라져 있다.

지난7년간 앨드릿지社는 많은 경비를 드려

진품 여부를 가리기 위한 연구조사와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영국 내무부 법의학 감식센터에서도

다른 유품들과 비교하여 바닷물에 의한 부식상태가

거의 유사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올해4월 같은 회사에서 경매되었던 하틀리가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15만 달라에 낙찰된 적이 있다고 한다.

“Just a line to say we have got away all right.

It’s been a bit of a rush but I am just getting a little settled. This is a fine ship.”

이제까지 팔린 타이태닉에 관련된 물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약2년 전 앨드리지社의 경매에서

35만 달러에 팔린 32피트 길이의 타이태닉號의 설계도면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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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號는 어떤 여객선이었을까?

당시에 건조된 세계 최대의 여객선으로

총 배수톤수: 52310 ton 최고 속력: 24 놋(knot)
길이: 883 피트 (269 미터)

최고 승선 인원: 승객 2,435명 승무원: 892명 총 3,327명

titanic-39.jpg

불행하게도 첫번째 처녀항해때 북대서양 上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였고 승무원/승객 1,514명이 사망하고

710명이 구조되어

전쟁 상황이 아닌 평화시에 일어난 최대의 비극적인 해난사고로 기록되었다.

 

 

처녀항해를 미국의 뉴욕항으로 떠나는 타이태닉號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Southhampton港.

 

 

4월 11일 아일랜드의 Queenstown(현재는 Cobh)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뉴욕으로.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경 빙산과 충돌한 후 15일 오전 2시 20분경 침몰함.

 


타이태닉의 항로와 사고지점

 

타이태닉號를 집어삼킨 빙산 (iceberg) 은?

구조된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배가 침몰한 후

주변에는 수많은 빙산과 얼음덩어리들이 있었다고 하고

큰 것은150~200피트 씩 되는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빙산의 일각"(tip of iceberg)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유는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실제 체적의 약1/9 정도 만이

바다 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Tip of Iceberg

 

 

 

타이태닉이 침몰한날 아침 침몰지점에서 몇마일 떨어진 곳에서

독일여객선S.S. Prinz Adalbert의 승무원이 타이태닉의 침몰을 모른 상태에서

아랫부분에 붉은페인트가 묻어있는 빙산을

이상하게 여겨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칼러사진이 아니라

어느부분에

붉은페인트가 있는지 구별할수가 없다.

 

 

타이태닉이 빙산과 충돌하기2일 전에

에토니안號(S.S. Etonian)의선장 W. F. Wood가 촬영한

빙산의 우측이 타원형으로 파인 빙산.


구조된 승객이나 승무원의 진술에 따르면
타이태닉號와 충돌한 빙산은 우측 상단부분이
타원형으로 파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의 두 그림은 타이태닉의 승무원과 승객이 그린 것으로

빙산을 제일먼저 발견한 타이태닉의 승무원(Scarrott)이 스켓치한 것과

승객(Cooper)이 스켓치한 것이다.

 

 

승무원 스캐롯(Joseph Scarrott)의 그림

 

 

 

승객 쿠퍼(Colin Campbell Cooper)의 그림

그는 화가였었다고 한다.

 

 

 

독일의 여객선 브레멘(S.S. Bremen)에 승선했던 Stephan Rehorek이

4월 20일(침몰한 지 5일 후) 사고지역 근해를 지나며

수많은 타이태닉의 파편들과 시신들을 목격했으며

이 빙산의 사진을 찍었고 뉴욕에 도착한 후 그의 부모님께

엽서를 보내며 같이 보낸 사진과 빙산을 확대한 사진.

우측에 날카롭게 깨어진 부분이 타이태닉이 부딪친 부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빙산의 모양들이 상기한 두 사람의 스켓치畵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빙산 양쪽의 봉우리와 타원형으로 파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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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의 잔해는1985년 9월 미국과 프랑스의

심해탐험팀에 의해 발견이 되었는데

배는 두동강으로 잘라져12,000피트(약 3700미터) 깊이에

서로 약1/2마일 떨어져 누워 있었다고 한다.

타이태닉號앞부분의잔해

 


타이태닉號의 뱃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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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음악=씨밀래

출처=스폐샬로토.즐거움이 항상있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