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천황의 고백-나는 한국의 후손이다
‘일본천황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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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후손이다.
‘일본천황의 고백’
=2001 년 12월 일본천황궁에서 아키히토(明仁)
"나 자신, 간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그 동안 일본인들은 만세일계 (萬 世一系)라고 주장하며 천황가를 신성시해왔다. 만세일 계, 즉 대륙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일본인들만의 혈통이 대대로 이 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따 라서, 일본사회에서는 천황의혈통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언 급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 다. 그런데 최초로 일황자신이 일황가의 뿌리가 한국인과 관련이 있다고 공개석상 에서 밝힌 것이다.
*가야귀 족 일본 상륙 2 세기경 한국남부의 가야(伽倻)귀족 일부는 바다를 거쳐 가 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일 본열도의 구주 북부에 도착, 영 농과 금속기 기술을 전달하고 그 들의 야 요이문화(彌生文化)가 일어나도록 했다. (이때의 일본은 거의 원시시대)
김해김씨 족보에 수로왕의 왕자 10명 중 7명이 하동 칠불사에서 수도한 후 구름을 타 고떠났다는 기록이 있으며 남 규슈 가고시마 유적에 일본 최초의 궁궐 터가 남아있다. 이곳에서 세력을 강화한 가야인 후손이 일본 중심지역인 천황 신무천황이 되 었다고 전한다.
같은 시기인 2세기경 남규슈 가고시마 유적에 시치구마 라는 지명이 있으며 지 금 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7명의 지배자가 웅거했다는 유적이 있다. 가야신을 모시는 7개소의 신사도 있고 7왕자를 주신으로 모신다.
인근에는 가라구니우즈미네신사 등 ‘가라’명칭을 붙인 신사들이 많으며 일본왕가 의 사학자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는 "일본신화는 가야신화와 흡사하며 연고가 깊다"면서 가야인이 천황 가문의 일본 사학자도있다.
*백 제귀족 일본 상륙
396 년~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 남부를 원정, 백 제 왕족과 귀족일원 그리고 백성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 주하게 되고 가 야세력과 경쟁 끝에 백 제계가 대신 일본을 제패(制覇)하게된다. 이때 백제의 문화와 기술, 신 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815년, 간 무천황의 왕자가 편찬한 책으로, 고 대 일본의 황족과 귀족의 계 보가 적혀 있다. 그 중 황족의 계보에는 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기록되어 있다. 바 로 이 것, “민 달천황(敏達 天皇)의 손자인 백제왕(百濟王)”이라는 글귀다. 간무천황 때 처음으로 제기된 한일동족 론(韓日同族論)은 그 후 에도시대와 명치시대, 일제강점 기, 그 리고 현재까지도 계속 주장되어 온 이야기다.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이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는 이 한일동족론은, 그 뜻은 하나이지만, 그 동안 여러 개의 얼굴 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교류와 협력차원에서, 때로는 침략의 명분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일본학자도 인정
(1)이에 광복 후 일본의 역사학계는 활기에 넘쳐 사실(史實)의 진실 학 계의 원로인 동 경대학의 교수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에 의하여 주장된‘ 기 마민족국가설’이다. 그에 의하면, “3세기 경 북아시아에서 활동하던 기마민이 부여· 북구주로 이동 하였다. 그 뒤 다시 기나이(畿內,교토부 나라현) 지방으로 진출하여 장차 이 때가 4세기 말엽으로 일본의 천황족(天皇族)이란 가야 출신이며, 천 손강림(天孫降臨)이란 가 야에서 북 구주로 옮겨온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는 동북아시아와 가야·야마토 지방에서 출토되는 무기·마구(馬具) 등 일 본의 건국신화가 부 여·고구려·금관국(金官國)의 그것과 유사한 점으로 보거나, 5 세기경의 중 국문헌 등을 참고 로 할 때 실증 된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인들의 DNA까지도 서로 가깝다.
(2)일본신화 에 천손이 내려온 곳이 구시후루다케(久志布多氣)라는 또, 그 천손은 신성한 이불(眞床追衾)에 싸여 내려왔다고 하는데, 구 지 봉우리라는 말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신 화에서 천손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천 강)과 그 산이 소호리산 혹은 구시후루 봉우리라고 명기되어 있는 일 본의 최고의 역사서 일본서기(720)에는 일 본의 선조 니니기노니코토가 내려온 지역을 구 지후루다케 (후루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구지마을이라는 뜻이다. 다 케는 봉오리라는 뜻)라고 기 록하고 있는데 다 시말하면 구지마을 봉오리라는 뜻이다. 바로 가야의 건국신화가 시작된 김해지역의 구지봉과 일치함을 알수있다. 또한 제사를 모시는 신관도 9명이라는 점도 삼국유사에 보면 또,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법구조가 유사하여 가장 친연성이 있는
*일본서기는 삼류소설
가야계에 서 백제계로 전환한 이민단은 백제가 완전 멸망함에따라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중국 학자들은 일본서기를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열도 진출을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조작,
한국이 일본의 뿌리이자 선조임은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일본은 온갖 침략과 역사왜곡과 망언으로 자기네들의 열등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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