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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한 마지막 연주-LOST GENIUS
까까마까
2012. 2. 7. 12:54
Erwin Nyiregyhazi, Piano /Recorded in San Francisco, March 1978
Critical reaction to the recordings was sharply divided, with some claiming to hear an authentic 19th Century pianist (Harold C. Schonberg wrote that "some critics wonder if Franz Liszt had been reincarnated"[14]). Others denounced Nyiregyhazi's "incredibly slipshod" technique, "ridiculously amateurish" fortissimo playing [15] "glacial tempos and total dissociation from contemporary performance styles. But Romantic revivalists were enthralled."[16] In 1978, he was offered return concerts at Carnegie Hall, but he declined. Recitals in Japan in 1980 and 1982 constituted his last public appearances.
Nyiregyházi was also a prolific composer, writing in a Romantic style reminiscent of Liszt. Nyiregyházi was often moved to compose by outside events, and his compositions included titles such as Goetz Versus the Punks, It’s Nice to be Soused, Shotgun Wedding, and Vanishing Hope. only a few of his compositions have ever been published or performed.[17]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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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지는 Forest Lawn Memorial Park in California에 있음.
Colon Cancer로 1987도에.
Erwin Nyiregyhazi, Piano /Recorded in San Francisco, March 1978
아내를위한 마지막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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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의 피아니스트 어빈 니레지하치는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놀라운 음악 신동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명성을 이용해 부자가 되려 했고,
매니저는 어머니보다 더한 흥행사로 돈벌이가 되면 어떤 무대라도 섭외했다.
하지만 그는 사기를 당해 지하철에서 노숙하며 연주 여행을 할 만큼 가난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생활에 지쳤는지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1978년 3월 6일,
그가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콘서트홀에 나타났다.
한때 음악 신동이라고 칭송받았지만 뉴욕 부두에서 하역 노동자로 일하다
노숙자로 전락한 그가 그토록 오랜 침묵을 깨고 피아노 앞에 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젊은 시절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엘시 스완이라는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연히 재회한 그녀는 79세의 노파가 되어 있었는데
돌봐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었다.
니레지하치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70세 노구를 이끌고 콘서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우연히 그 연주회에 들린 CBS레코드사의 테리 맥네일은
그의 신들린 연주에 넋을 잃고 허겁지겁 카세트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니레지하치의 실황 음반이자,
‘전설의 음반’으로 불리는 ‘두 개의 전설’이다.
그 이유는 니레지하치가 다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숨을 거두었고,
그는 더 이상 연주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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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엘시 스완" 뉴욕 빈민가에서 부두노동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던 어빈을 불쌍히 여긴 하숙집주인의 딸이었답니다. 그는 어빈을 식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빨래도 해주었으며 외로울 때면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답니다. 어빈은 그녀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꼈고 한편으론 애뜻한 연정을 품게 되었지만 그녀는 자그만치 10살이나 연상이었고, 지극히 내성적인 어빈은 끝내 아무런 말도 못해보고 헤어지게 되었으나 어빈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40년이 더 지났고 어빈은 70세의 노인이 되 버렸습니다.
그녀를 생전에 다시 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녀는 80세의 노파가 되어 있었고 돌봐 줄 사람도 모아둔 재산도 없었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빈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삶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였죠. 이윽고 둘은 주위 몇몇 사람들만 참석한 가운데, 70세 노인과 80세 할머니의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어빈은 결심합니다. 콘서트를 열기로, 그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마지막 콘서트였습니다.
Erwin Nyiregyhazi, Piano /Recorded in San Francisco, March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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