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L'Abbazia delle Tre Fontane-세분수교회
제일밑에 2개의 동영상을 올렸는데
가는 길과 주위환경 그리고 탐방자들의 모습을 담은
세분수교회를 둘러보시라구 올렸습니다.
자세히 보여주는 교회내부와 주위환경을 첫 번째 동영상이 자세히 보여주는데
여기 올린 친구 사진이 너무너무 잘 나와 실제의 모습과 좀 다르니
첫 번째 동영상을 더 자세히 보시길 권합니다.
보다가 대리석 길 같은 숙연함이 스며있는 곳을
안 가보신 분 들은 여기서나마 순례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단 자료가 많지를 않아 여기저기 해매다
몇 개 외국 잡지에서 뽑은자료에
약간의 설명을 넣었습니다. 이태리말도 잘 모르면서리...
로마의 세 분수 교회와
천국계단교회
L'Abbazia delle Tre Fontane:
Acque Salvie avenue towards the Tre Fontane Abbey
새분수교회 가는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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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of martyrdom of Saint Paul (interior)
바울 순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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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file (4,200 × 2,800 pixels, file size: 3.41 MB, MIME type: image/jpeg)
천국 계단교회(오른쪽 건물)
The square in the front of two churches:
Santa Maria Scala Coeli (right) and Santi Anastasio e Vincenzo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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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file (4,200 × 2,800 pixels, file size: 3.22 MB, MIME type: image/jpeg)
Church of the Santa Maria Scala Coeli (interior)
천국계단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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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file (2,800 × 4,200 pixels, file size: 3.6 MB, MIME type: image/jpeg)
church of st.paul Avenue towards the Church of Saint Paul
세분수교회 들어가는 앞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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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file (4,200 × 2,800 pixels, file size: 4.47 MB, MIME type: image/jpeg)
dal martirio di San Paolo alle apparizioni della Madonna
바울이 순교한 그곳에 세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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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575 Antoine Lafréry drew a map showing Sette Chiese
the seven basilicas of Rome which were visited by pilgrims;
the print shows the pilgrims moving from one basilica to the other,
but it shows that a trickle of them (the most pious ones or those in greater need of gaining indulgences), after having reached S. Paolo fuori le Mura,
instead of directly reaching S. Sebastiano fuori le Mura,
lengthened their journey by visiting also S. Paolo alle Tre Fontane,
the church built on the site of the execution of St. Paul, and la Annunziatella.
In the description below the plate Vasi made referenc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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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te at the entrance is called Arco di Carlo Mag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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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age used as background for this page sh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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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Pius IX in order to celebrate the 1867 victory against Garibaldi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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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nctuary became extremely popular in 1944 when Pope Pius XII entrusted
세분수교회
기독교의 역사가 있는곳
로마의 세분수교회와 천국계단교회
바울이 최후를 맞이한곳 - 로마의 세분수 교회
ABBAZIA DELLE TRE FONTANE(세분수의 수도원)
로마에 오면 항상 세분수교회를 방문하게 된다.
콜롯세움이나 진실의입, 스페인광장, 베드로성당, 포로로마노 베드로성당 등등
가야할곳이 많고 역사적 관점에서 꼭 가야하는 폼페이나 낭만을 찾는여행자들에겐
필수코스나 마찬가지인 피렌체, 밀라노-
이런곳들을 선호하지만 기독교인들게 가장 중요한 성지는
뭐니해도 바울이 참수 당한 세분수교회일것이다.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내어줌으로 기독교가 번성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바울이라는 위대한 전도자가 있었기때문이다.
바울의 참수터교회(세분수교회)-
이곳에 처음부터 바울의 시신이 안치되었었으나
후에 세바스티아누스 카타콤베에 이장되었다가
루치나라고 하는 상류계층의 부인이 기증한 토지 위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이 곳으로 바울의 시신이 옮겨올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나클레투스 교황 시절인 103년 기도원 형태로 건축되었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4년에 아름다운 교회로 바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자 감당하기 어려워
385~386년에 이를 허물고 재건축하였다.
바울의 죽음
바울은 로마 군인들에게 집힌 후 로마에서 2년동안을 머문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전도를 한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사후의 전도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바울의 죽음은 로마 시민의 자격을 갖고있기에 참수형으로 행해졌고
로마에서 5km정도 떨어진 마메르띠노 감옥에 있다가 이곳으로 와서
천국의계단교회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고 세분수 교회가 있는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하게된다. 끝이 둥근 대리석에 목이 놓이고 참수형을 당한 그의 고통은
순간적으로 죽음을 맞게되는 혜택이었던것같다.
로마 시민권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죽음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되지만
바울은 로마시민권자로서 로마법의 의한 죽임을 당하게
죽음의 고통을 알기도 전에 죽게하는 형벌을 준 사례가 된 처형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사후에 대한 감추어진 사실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동요를 막고 더 넓은 세계로의 전도에 대한 갈망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더불어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묶여지는
중요한 시발점인것 만큼은 틀림없는것 같다.
Three Foundation
서기 60년 이태리 로마로부터 시작된 대화재로 인해 로마 시민들이 분노하자
황제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를 시작하였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하게된다 이방인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았으나
로마시민인 사도 바울은 참수형으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대리석 기둥 위에서 사도 바울의 목을 자르면서 잘려진 머리가 땅에 세번 튀며
튄 자리마다 샘물이 솟아났는데
이를 '트레폰타네', 세개의샘(Three Foundation)으로 불리며
아직도 샘이 솟아나고 있다
상공에서 바라다본 세분수교회 지역의 모습
수도원의 안쪽 뜰이 철창 사이로 보이고 있다.
앞에 보이는 교회 건축물이 천국의 계단교회다.
바울은 세분수 교회 아래에 있는 천국의 계단교회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집필했다고 알려져있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한가지 목적만을 위해
디모데후서를 집필한 바울의 노력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근거를 제시해준 역사적 사건이기도하다.
교회 출입구에 SCALA COELI-천국의 계단의 의미를 담은 글이 새겨져있다.
성 베르나르도가 이 성당 지하실에서 기도할 때
영혼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환영을 보았다 한다.
그 이후부터 이 교회를 천국의 계단(Scala coeli) 교회라 불리게 되었다한다..
바울은 1차 수감시엔 A.D.60년 3월, 아피아 가도를 따라 로마로 간 뒤 Mamertinum이라는
첫 번째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A.D.62년 3월에 석방되었다.
64 년에는 도시 로마의 대화재 직후로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는 시기였고
이로부터 몇년 후인 67 년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어 두번째로 '천국 계단 교회'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이름은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그들을 거대한 목욕시설을 짓기 위한 노동력으로 이용했고
로마에는 지금도 가장 큰 규모의 목욕탕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탕터가 일부 남아 있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론 10,00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노동자로 이용한 후 이들을 이곳에서 죽였다고한다.
그후에 베르나르도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순교한 영혼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환상을 보았는데
그때문에 이 영혼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이름을 '천국의 계단' 교회로 명명하기에 이른다..
천국의 계단교회 지하에는 바울이 수감되었던 감옥이 남아있다.
사도바울은 기독교에선 빠질 수 없는
천국계단교회
3세기말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도로 달하였을때에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85-305년까지 통치)가
로마 최대의 목욕장을 건축하면서 수천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을 동원하였는데
완성 후에는 다시 감옥에 수감하는 비용을 절약하려고
교인들을 생매장하였고 이후 베르나르도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땅속에 억울한 영혼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환영을 본 후로
순교지로 선포된 후 건축한 교회가 천국계단교회라 불리운다
베르나르도
지금도 남아있는 대리석 길은
바울이 천국의 계단 교회 지하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처형 당하기전 참수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던 길이다.
10m정도가 남아 있는데 기독교인들에겐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곳으로
엄숙한 분위기가 있다.
제단 앞에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 당하는 참혹한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순교의 댓가로 지금은 구원의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진실한 모습의 순례자들의 가슴속엔
어떠한 결단이 들어서 있는지 자문하게 만드는 단의 모습이다.
당시 바울을 참수할때 쓰였던 둥근 모양의 돌이
이곳에 보관되어있다.
이야기하기론 바울을 참수할 당시 둥근 대리석 위에 머리가 올려진 채
단번에 목을 베었는데 세번이나 땅위에서 머리가 튀며
머리가 튄 그곳에 지금도 분수처럼 물이 흐른다고 해서 세분수교회라 이름 불리운다.
신기하게도 바울의 머리가 잘렸다는 곳에 걸치를 해놓은 곳에서는
지금도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제단위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모습을 담아놓았다.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사람으로 가톨릭에서는
첫 교황인 성 베드로(Petrus)로 불리운다. 갈릴리에서 어부 요나의 아들로 태어나
어부생활을 하던 중예수의 제자가 되었는데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가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이름은 그의 강한 성격에도 어울리지만 예수그리스도가
반석이라는 말로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로 쓰게할 것임을 선언하였던 사람으로
전도중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임을 당하였다.
베드로의 사형(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채 사형을 집행)
바울의 참수형(둥근 돌 위에 머리를 올리고 칼로 쳐서 순식간에 사형을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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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음악=씨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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