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햐여/예수님의 향기

가시고기의 새끼 사랑

까까마까 2014. 4. 13. 17:27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여기 올리고자하는 가시고기는 그냥 물고기로 치부하여 올리기가 너무 아까워
좀더 깊이있는 내용으로 생각하게하는 포스팅으로 남기고자 하여,
소설을 여기서 다 읽을 수는 없기에, 
어느독자의 독후감으로 짧으나마 대신하고자 합니다.
혹시 미흡하다 생각되시면 책을 구입하여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전 세계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어집니다.

 

제일밑에 "가시고기"에 대한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유명한,기막힌 음악 동영상도 한 번 보세요.

음악은 안 끄시고 "가시고기"동영상을 보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가시고기의 새끼 사랑

 

 

 

'가시고기'라는 물고기는 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에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가시고기는 모두 3종류로 큰가시고기, 가시고기, 잔가시고기가 있는데,

이중에서 부성애가 강한 고기는 '큰가시고기'이다.

큰가시고기는 바다에서 살다가 해마다 이른 봄이면 산란을 위해 하천으로 올라온다.

암수 무리 지어 올라온 큰가시고기는 약 일주일간의 민물적응기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산란준비에 들어간다.

 

 

 

좋은 아버지란 무엇일까? 아버지란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 같다.
그 동안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 그려져 왔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은 늘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실제로 가정에서의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러했듯이......

 

 

어머니였으면 상투적이었을 희생이
아버지였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지는 것은
가정 안에서 남성의 힘이 점점 약화 되어가고
아버지의 자리도 퇴색해 가는 이즈음이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무능력했다! 아버지는 종이었다!
아버지는 건달이었다! 아버지는 ***였다! 고 외쳤던
이 땅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되어 있는 오늘,
주인공 '정호연'을 그 모두가 꿈꾸었던 또한 꿈꾸어야 할
영원한 아버지상(像)으로 보여주고 싶다.

 

 

 

 

 

 

 

산란준비는 온전히 수컷의 몫인데, 먼저 새끼를 키울 둥지부터 짓는다.

수컷이 둥지를 만드는 동안 암컷은 주변에서 둥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둥지가 완성되면 암컷은 그곳에 알을 낳는다.

암컷은 알을 낳으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린다.

그러면, 그 때부터 수컷의 알 지키기가 시작된다.

알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수많은 침입자들을 물리치고 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앞 지느러미를 이용해 부채질하며 끊임없이 둥지 안에 새 물을 넣어준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둥지 안의 알을 지키고 키워내는 데만 전념한다.

마침내 알이 부화해 새끼들이 탄생하지만 수컷은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갓 부화한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면 새끼들을 물어다 안으로 집어넣는다.

아직 나올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화한지 한 5일 정도가 지나면

새끼들은 제법 자라 둥지를 떠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새끼들을 모두 안전하게 떠나보낸 수컷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삶의 최후를 맞이한다. 둥지 짓기부터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내기까지 약 15일간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수컷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주둥이는 다 헐었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없이 변하고,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던 둥지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며칠 후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은 죽은 수컷 주위로 모여든다.

 

아직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어린 새끼 가시고기들을 위해

기꺼이 돌틈에 자신의 머리를 쳐박고 죽는다.
 

그 새끼들이 모인 것은 자기를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슬퍼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비의 살을 파먹고 위함이다.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주는 것이

바로 '가시고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가시고기'를 이 땅에 사는 생물 중에 부성애가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의 부화후 떠날때 까지

    목숨 까지 내주는 부성애

 

 

 

 

가시고기에 대해 소개하자면,

한국(북부)․사할린섬․쿠릴열도․일본(북부)등지에 분포하는 가시고기는 몸길이는 5~6 cm에 달하고,

생활 적온은 9-22℃이다. 아가미뚜껑의 뒤에서 꼬리자루까지 연결되어 있고,

입은 주둥이 끝에 있고 눈은 크며 머리의 옆면 중앙보다 앞쪽에 있고 아래턱보다 길다.

배지느러미는 가시가 1개, 살은 1-2개, 등지느러미가시는 6-10개, 살은 9-10개,  

뒷지느러미는 1개이며 살은 10개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몸의 바탕은 회록색, 등 쪽은 암녹색, 배 쪽은 은백색이고 등지느러미가시의 부착막은 무색투명하다.

보통 관상용으로 사육되기도 한다. 산란기는 4~7월이고, 수컷은 물풀 따위로 구형의 집을 지으며,

암컷을 유인하여 산란하게 한다. 새끼가 부화한 집에서 헤엄쳐 나올 때까지

알과 새끼를 보호하는 습성이 있으며,

맑은 냇물이나 못에서 산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새끼는 이미 등지느러미가 형성되어 있고,

전장 20mm내외가 되면 비늘판이 꼬리자루의 뒤쪽 끝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점차 앞쪽으로 형성되어 가며,

27mm내외가 되면 거의 모든 형질을 갖추게 되고, 44mm가 되면 형질이 완성된다.

동물의 모든 본능 행동은 여러 가지 부분 행동이 일정한 순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므로

반사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이 때 하나 하나의 부분 행동은 각기 독특하고 간단한 자극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게 되는데,

이와 같은 부분적인 본능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외적 자극을 신호 자극이라 한다.

신호 자극에 대해서는 가시고기의 구애 본능 행동에서 잘 조사되어 있다.

가시고기의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집을 짓는데, 이 때 다른 수컷이 접근하면

공격하여 쫓아버리며 암컷이 오면 구애를 한다.

이 경우, 다른 수컷에 대한 공격 본능의 신호 자극은 수컷의 배 쪽에 나타나는 붉은색의 혼인색이다.

가시고기의 수컷은 발정기가 되면 배 부분이 붉게 변하며,

이 색은 번식기에만 나타나므로 혼인색이라 부른다.

집을 지키는 수컷의 공격 본능의 신호 자극이 다른 수컷의 형태인지,

혼인색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형 실험을 해보았다.

그 결과 형태가 같아도 배 부분이 붉지 않으면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형태가 달라도 배 쪽이 붉으면 공격을 하였다.

 

 

 

 

  이 실험으로, 수컷 가시고기의 공격 본능은 다른 수컷의 배 부분에 나타나는 붉은 색을

  신호 자극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컷은 이렇게 집을 지키고 있다가 암컷이 나타나면 지그재그로 헤엄치면서 자기의 붉은 배를 보여

집 쪽으로 유인하여 암컷이 집 속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꽁무니 쪽을 입으로 접촉하는 자극을 주어 산란을 촉진하다.

산란 후 수컷은 집을 지키며 지느러미로 계속 집 속으로 물을 흘려 보내

산소가 부족하지 않도록 힘쓴다.

굳이 가시고기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소설의 소재로 쓰인

가시고기의 특성을 알면 소설이 더욱 흥미롭기 때문이다.

 

 

자기집에서만 정액을 사정하는 가시고기 숫컷

 

 

 

 

소설 "가시고기"에 대한 소고

 

 

 

 

 

 

 

 

  요약보기-소설속으로

 

[출처]

조창인 : <가시고기>|작성자 재봉틀

 

 

 

 

 

조창인님은 자신의 소설 ‘가시고기’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인공 정호연을 내세워

몰인정하고 부도덕한 부인 하애리의 편협된 사고와 이기적인 태도를 들추어냄으로서

허영과 비이성적인 삶을 동경하는 일부 여성들에게 자성을 촉구하고 금전만능주의에 젖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가정의 행복은 사랑으로 결속된 부부관계와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교훈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 많은 생을 살다간 정호연은 강원도의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막장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어머니가 가출한다.

아버지는 막연해진 생계를 위하여 광산관리사무소에 가서 흉기를 들고 생계보상을 요구하다가

철창신세를 지게되고 어린 정호연은 친척집을 전전한다.

 

출소한 아버지는 생계가 막연함을 느끼고 목발에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들 정호연을 데리고 허름한 여인숙으로 들어간다.

삶에 회의를 느낀 호연의 아버지는 자살을 하려고 준비한 쥐약을 아들과 나누어 들었다.

"아버지 이 약은 잠자는 약이 아니고 쥐약이잖아요. 나는 죽기 싫어요" 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눈시울 적셨던 아버지는 호연을 데리고 파출소 앞에 남겨둔 채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것은 혼자만의 자살을 의미하였다.

 

첨부이미지

 

"저 녀석은 양아치밖에 안될 거야" 라는 원장의 조소를 들으며

호연은 고아원을 거치고 야간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게 된다.

각별히 문학에 재능이 있던 그는 시를 잘 지었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대학 4학년에 복학한 어느 날 문학 동호인 중 누군가에 의해서

그의 시는 회화과에 재학중인 여대생이 그린 삽화와 함께 대학신문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 투고되었다.

삽화를 그려준 여대생은 아버지가 전직 도지사 출신인 명문가문의 외동딸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날로 가까워지고 여자의 집에서 반대하였지만 지독히 쓸쓸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지에서 친정과의 결별을 선언한 호연의 아내 하애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며,

월간 문예지 편집부에 근무하는 정호연의 알량한 월급으로

한 달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나 걱정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라고

불만을 털어놓는 아내 때문에

호연은 여성지 기자로 자리를 옮겼고 틈틈이 외부 원고를 쓰거나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어서 처의 불만을 줄이려 하였다.

호연은 시상을 떠올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이렇게 열심히 산 덕분에

그는 큰 아파트도 장만하고 그사이 아들 다움이를 얻게 되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던 호연은 행복을 맛보며 알찬 삶을 살아갔다.

 

아이가 세 돌이 지나고 호연의 아내는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그로 인하여

호연은 아이돌보기와 가정생활 꾸리기와 직장생활 등 3가지의 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6년의 세월이 지나던 어느 날 남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는

결국 아이를 남겨두고 친정으로 혼자 들어가면서 별거를 하게 되었다.

  

프랑스로 대학원의 은사인 박인석과 함께 떠났던 아내는 곧 아이의 양육 포기 각서와

이혼 서류를 보내왔고,

호연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들의 결혼은 그렇게 끝났지만

호연에게는 억제하지 못하는 울분과

엄마 잃고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어린 아들의 슬픈 눈망울이 남겨졌다.

호연은 생각했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다른 사내의 품속으로 떠나버린 아내의 모습은

어렸을 적에 한쪽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한없이 그리웠고 한없이 야속했던 그 어머니가 바로 자신의 아들 다움이의 어머니가 아닌가?   

다움이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고 말하던 아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정호연 그는 왜 그렇게 나약해 보였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정호연 그는 바로 알을 낳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어미 가시고기 대신

극진히 알을 보호하는 아빠 가시고기였다.

 

백혈병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다움이의 머리를 쳐다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여지는 슬픔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호연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어렵게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전세에서 500만원의 보증금에

월 30만원의 반 지하 달 셋방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다움이는 다시 백혈병이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게 되었고 매일 항암 치료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며

나날이 야위어 가는 아들의 희망 없는 삶을 지켜보는 호연은 차라리 자신에게 죽음의 병이 내리고

아들이 새 생명을 찾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꺼져 가는 어린 생명에게 곧 낳게될 거라고

거짓으로 희망을 안겨주지만 10살 박이 다움이는 옆 병상에서 귀찮게 굴었던 백혈병 어린이 성호가

끝내 죽었음을 성호 어머니가 자신을 껴안으며 흘렸던 눈물에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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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환자의 병실 유리창 너머로 벤치에 앉은 아버지가 연신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보였다.

다움이는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때 누군가 아버지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바램과 함께   

떠나버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보고싶었지만 야속하였다. 피어나는 담배연기는 아버지를 더욱 애처롭게 하였다.

호연은 아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끊었지만

소생 불가능한 아들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항암 치료에

매달리게 하는 것과 그간 밀린 병원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원무과 송계장의 병원비 독촉등으로 인한 고뇌의 시간이 엄습해왔기 때문에

연거푸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골수이식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주치의 민 과장의 안경 너머로

호연의 깊은 슬픔이 연민의 정으로 솟아나는 듯 서로는 한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호연은 아들을 완치되지도 못하는 항암 치료에 의존하다가

죽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외치며 퇴원을 요구한다.

 

밀린 3개월의 달세를 공제하고 남은 달세 보증금으로 병원비를 치르고

50만원에 산 봉고차에 몇 가지 짐을 챙겨 옮긴다.

이혼 전에 아내가 입었던 옷 몇 벌도 박스에 담았다.

행여 아내를 만나면 전해주려는 호연은 참으로 착한 남자였다.

 

훗날 아내를 만나서 옷을 전달하려다 망신을 당한다.

그렇다 유행이 지나버린 옷을 입을 아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아내의 옷가지를 챙겼던 것이다.

아들의 옷가지를 챙겼다.

지난해 사서 한번밖에 입지 안았던 겨울잠바를 만지며

아들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살아주기를 바랬다.

 

봉고차 생활을 했지만, 아들은 완쾌되어 퇴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빠와 함께 있다는 점에서

아픔보다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졌다. 학급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산 구슬 박힌 예쁜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동해안으로 떠난다.

한여름 낡은 봉고차안에서 카레를 끓여주던 아빠를 보며 남들이 거지취급을 하는데도

마냥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여져왔다.

 

어느 산골의 피 노인을 만나고 노인의 말에 감화되어 약초와 뱀을 다려서 아들에게 먹였다.

총 42권이라는 만화책 드래곤볼을 사서 하루 1권씩만 읽도록 했던 것은

아들이 42일 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생각했던 호연은

사락골 생활에서 아들이 즐거워하고

나날이 건강을 되찾는 듯 살이 찌고 원기도 회복하여 피 노인의 말처럼 완치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 폐교에 내려와서는 철봉도하고 교실에서 호연은 선생님이 되고 아들은 학생이 되어

수학문제를 풀기도하는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아들은 교실 벽에다 정다움이라는 자기의 이름을 적었다.

훗날 호연은 간암으로 죽어가기 직전에 이곳에 와서 아들이 적어둔 이름을 확인하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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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사락골 생활도 어느 날 고열과 함께 혼수상태로 빠져든 아들로 인하여 나고

지긋지긋했던 병원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잡지사 후배인 여진희를 통하여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내는 항상 20년 내외의 연상이며 대학원 은사라는 남편 박인석을 대동하고 있었다.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쏘아 부치며 이제부터 자기가 아들을 돌보겠다고 했다.

일본 여성으로부터 골수를 제공받기로 되었고 이식비용이 4천여 만원이나 들기 때문에

거지와 다를 바 없는 호연에게 더 이상은 아들을 맡길 수 없다고 하였다.

아내의 행동은 이기적이었다. 병실로 면회를 함께 온 박인석은

아들이 사락골 생활에서 조각한 목각인형을 발견했고

아들의 조각 솜씨에 경탄하여 아내에게 아들을 자기들이 맡아서

천재적인 조각가로 만들고자했던 야심에서

아들을 호연에게서 빼앗아가려는 속셈이었다.

 

호연은 아내 없이는 살아도 아들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언제는 양육포기각서를 보내고

이제는 아들마저 내놓으라는 아내가 한없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생활비 마져도 절박한 그는 자기가 골수 이식비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4천여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찾았지만 모두들 딴전을 피워댔고

대학 동창 이국성의 권유로 호연의 자존심으로는 쓸 수 없는 소녀들의 취향에 맞는

시집을 내어 받기로 했던

천만 원은 뒤늦게 받았지만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골수 제공자가 있어도 수술비가 부족하여

수술하지 못하고 아들은 점점 사경으로 빠져드는 어느 날 원무과의 송계장과 대화 중

호연이 해병대 선배임을 알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선배를 돕지 않고 누구를 돕겠느냐고 하면서   

권하는 말이 신장을 밀매하면 아들의 골수이식 비용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신장을 밀매한다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을 살리려는 살신 성인의 정신과

뜨거운 부정(父情)이 움직여 신장을 밀매하기로 결심하고 조직검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들의 병실에서

열심히 원고를 찍던 노트북을 팔아야 했다.

노트북은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아들과 함께 있어주는

친구였기에 정이 많이 들었었다. 호연에게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조직검사결과 그는 악성 간암환자로 판명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해지고 눈시울을 적시던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눈을 적시고 말았다. 신장을 팔아서 자식을 살리려는 아버지에게

간암선고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병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임을 강조하는 송계장의 또 다른 제안은 자식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망막을 밀매하라고 권유하였고 밀매비용의 10%는 소개비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잔악한 면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울분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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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아들에게 지방출장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망막 이식수술을 하였다.

망막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 눈에 붕대를 하고 한쪽 눈으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호연에게

나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소리 없이 울었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하는 생각에

나의 뜨거운 눈물은 가슴까지도 적셨다. 너무나 슬펐다.

아버지의 망막 밀매로 받은 돈은 아들의 골수 이식에 쓰였고

주치의 민 과장은 수술이 잘되었다고 하였고

아들의 건강은 나날이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은 반면에 호연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몰핀을 처방하겠다는 민 과장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이 겪었던 고통은

자신이 겪는 통증보다 훨씬 컸을 거라고 생각하며 참아낸다.

  

아내가 그의 남편 박인석과 함께 병실을 찾았고 아내는 다시 아들을 자기에게 맡길 것을 강요하였다.

호연은 생각했다. 자기가 죽은 후 고아로 자라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결국 아내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서 살려낸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빠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울부짖는 아들에게 냉정함으로 일관하여

아들이 가진 아버지의 정을 없애달라던

아내의 말대로 호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야속하리만큼 냉정하게 대했다. 그리고는 못내 뒤돌아 울었다.

10살 박이 다움이도 아버지의 냉정함에 울었다. 아버지가 냉정하게 할수록 어머니가 미웠다.

프랑스로 내일 떠난다던 아내는 갑자기 오늘 저녁에 떠난다고 하였다.

호연은 암 통증보다도 더 큰 슬픔을 느꼈다.

떠나기 전에 더 냉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달라던 아내의 요구로 그

는 어둠이 내린 저녁 병원의 벤치에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저만치 그토록 보고싶었던 아들 다움이가 오고 있다. 다움아! 부르며 달려가서 앉아주고 싶었다.

복수가 차고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들에게 그 자리에 서라고 말한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아들이 울면서 아버지의 귀를 만져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 늦겠다고 재촉하는 아내에게 이끌려서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까지 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던 호연은 그를 사랑한 여진희의 부축을 받고 사락골로 향한다.

폐교의 벽에 적힌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는 울었다. 그날 밤 첫 눈이 내렸고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눈물로 책장을 적시고 가슴으로 읽었던 조창인님의 가시고기는 우리 모두에게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었다.

  

 

 

  

독후감 정리

 

 

 

  <가시고기>의 지은이 조창인님은 그간 많은 책들을 만들어 냈으며,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많이 발표하였다.

이 <가시고기>도 오랜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한다.

지은이는 마지막까지 애절한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자 쓴 소설이어서 그런지 무척 애절한 내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제1장 하늘부터 하지, 산길, 낮달, 저녁놀 그리고 제6장 가시고기라는 소제목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움이 아버지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을 접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했다.

하지만 다움이의 탄생소식을 통해 그는 어린 시절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광부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실족한 이후 떠났던 어머니처럼

그의 아내 역시 다움이의 임파구성 백혈병이 발생하기 얼마 전

다움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며 다움이 아빠 정호연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하루에 열 번 이상은 하늘을 쳐다보자. 열 번 이상 하늘을 보지 못한 하루라면,

 그 하루는 헛되게 산 날이다"라는

대학 시절의 다짐과는 달리 재발한 다움이의 병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다움이 아버지는

 그 다짐을 지키지 못 한다는 내용이 제1장 하늘이다.

 

 

 

   

 

그가 예전에 다니었던 직장 후배 여진희는 그의 상황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다움이로 인해 삶의 여유가 없는 그에게 조심스레

"안데스 산맥 어딘가에 발데미르라는 산이 있어요.

하짓날에는 인근에 살고 있는 부족의 남녀들이 발데미르산 정상에 올라간대요.

황혼이 저물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 황혼을 행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이라나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랑이란 의외로 간단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선배?"라는 얘기를 통해 사랑 고백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로지 아들 다움이의 건강에 대한 걱정 뿐,

다른 어떤 생각을 할 만한 여유가 없기에 그 사랑 고백을 모른 채 한다.

아이와 그 모두가 내년 하지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복선을 통해

그의 죽음을 예고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제2장까지이다.

 

 

 

 

 

  병이 더욱 악화되어 더 이상의 약물 치료가 병로 호전을 기대가 어렵게 되자

그는 생활고와 아들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약물에 지친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하루라도 즐겁게 웃으며 살게 해주자는 다짐을 하고

퇴원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아내의 작품전시회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그는 아내를 찾아가 아들을 만나볼 것을 권해 보지만 아내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런 아내를 뒤로 한 채 퇴원한 아들을 잠시나마 기쁘게 해주려고 여행을 떠나는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겨울옷만은 챙기지 않는다.

이 역시 작가가 은연중에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짧은 여행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사락골이다.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 것은 피노인이 여기서 불치병을 다스렸기에

다움이의 건강 역시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산에서 나는 음식들을 먹으며 다움이는 점차 병이 호전되는 듯 했지만

병은 그들의 희망을 외면한 채 재발한다.

병원에 재 입원하면서 어린 아이가 엄마 얼굴도 모르면서 엄마, 엄마하고

운다는 다움이의 노트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움이와 엄마와의 만남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여기까지가 제3장 산길이다.

 

 

 

 

 

  제4장 낮달의 내용은 이렇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모자의 정은 천륜이기에 끊을 수 없다는 듯

다움이 엄마는 골수 이식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다움이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다움이의 태도는 엄마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찌 자신을 버리고 간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인정 할 수 있으랴.

가을 하늘과 낮달이 이뤄내는 그 어설픈 부조화…….

 

다시 서울의 소아 백혈병 전문 병원을 찾은 다움이 가족은 다시 백혈병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예전과는 달리 완치의 희망을 안고서…….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다움이를 치료하고픈 그에겐 골수 이식 수술에 대한 비용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자신의 해병대 후배인 병원 측 직원으로부터

음성적 장기 거래 얘기를 듣게되어

수술비 마련의 목적으로 신장을 팔기로 작심한다.

신장 검사를 위해 종합 검진을 받다가 간암 말기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죽음을 알리려 애썼던 그간의 복선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작가의 의지일까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놀을 바라보며 사랑 고백하는 여진희는 그의 병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제5장도 마무리지어진다.

 

 

 

 

자신의 간암으로 인해 신장을 팔 수 없기에 그는 각막을 팔게 되고 눈에 안대를 한 뒤

다움이가 골수 이식 수술을 받기 전날 아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아~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일까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아들을 위해 헌신한 그인데 어찌 그가 간암 말기라니

 

이런 운명의 장난이 있을 수 있을까 작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6개월도 살지 못하는 시한부이기에

이식수술이 성공한 직후 다움이를 엄마에게 맡기기로 결심한 그는 다움이 엄마에게 뜻을 전한다.

흔쾌히 받아들인 다움이 엄마의 조건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움이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라니…….

만약에 다움이가 나중에라도 이 각서를 보게 된다면 아버지에 대해 조금은 실망하리라.

죽음이 임박한 그에게, 그의 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지만 너무한 처사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그는 각서를 쓰게 되지만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다움이는

아버지를 꼭 한번이라도 만나기 전에는 가지 안겠노라 때를 쓴다.

결국 다시 만난 아버지와 다움이……. 아버지는 다움이를 차갑게 대하며

마지막 만남의 시간을 그렇게 흘려 보낸다.

다움이는 그렇게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갔다. 이젠 다움이가 아빠에게 힘이 되어 줄 차례인데…….

쓸쓸히 죽어 가는 다움이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은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는…….

 

 

 

 

이 소설의 구성은 가시고기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말 애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만큼 가시고기라는 소재의 특성을 잘 이용해 작품에 대입시킨 결과물이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전개와 아들인 다움이가 생각하는 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조창인님의 <가시고기>는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에 관한 상황들의 묘사가 주를 이룬다.

 

다움이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부자간의 이런 상황 묘사들은 감동을 주는 기술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두 인물간의 순수한 사랑이 항상 서로에 대해서 교감하는 것이다.

소재와 기술적인 요소간의 맞물림이 적절한 이 소설은,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은 형태의

기초가 밑바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기술들과 예술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진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같다.

 

첨부이미지

 

가시고기는 수컷의 새끼들에 대한 사랑이 유달라 부성애의 상징이 되곤 한다.

가시고기는 새끼들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고 한다.

<가시고기>는 감동적으로 읽힐 수 있는 소설이지만

TV드라마처럼 통속적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부성애란 주제를 빛내기 위해 인물이나 상황이 빈틈없이 짜여져 있어

스스로 발전할 생각도 못한 채 정해진 결말로만 치닫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가시고기는 이상한 물고기입니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엔

어디론가 달아나 버려요. 알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요.

아빠 가시고기가 혼자 남아서 알들을 돌보죠.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알들을 보호해요.

알들이 깨어나고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나랍니다.

그리고 새끼가시고기들은 아빠 가시고기를 버리고 제 갈 길로 가버리죠.

새끼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버려요.

아빠 가시고기가 왜 죽어버리는 걸까요. 그 이유가 책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뻔한 거 아니겠어요? 가시고기는 언제나 아빠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가시고기가 있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슬픔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요. 아, 가시고기 우리 아빠." 라는 가시고기의 일화처럼

아버지의 몸을 다 바쳐서 백혈병에 걸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아들을 살려내고

아버지는 병에 걸려 죽는다는 이야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윈,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추억도, 그리움도 희미한 주인공 정호연은

자신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최선을 다하기로 했던 사람이다.

 

아들을 몸 바쳐 사랑한 아버지. 그 사랑을, 어리지만 가슴 깊숙이 간직하는 다움이.

이 부자지간의 사랑은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그러한 사랑이었지만

아들의 행복을 위해, 마지막까지 그 아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가시고기
 

 

<가시고기>의 지은이 조창인님은 그간 많은 책들을 만들어 냈으며,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많이 발표하였다.

이 <가시고기>도 오랜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한다.

지은이는 마지막까지 애절한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자 쓴 소설이어서 그런지 무척 애절한 내용의 소설이다.

 

     

     

     


     

     

     

    < 4 부 >에 있는 내용 살짝 보기



    ▲아내 영주(박지영 분) 서울로 날아오는 동안 호연은

    일반병실(1 인실)로 옮겨진 다움이에게 걷기를 연습시킨다.

    호연은 아이에게 "앞으로는 엄마하고 살아라."
     


    ▲그리고 영주가 왔다. 영주는 일주일 후 다움이를 데리고 떠난다며

    호연에게 이식수술에 든 비용을 내민다.
     


    ▲그 사이 호연의 병은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체중이 10킬로나 줄었고 복수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호연은 막출간 된 시집의 첫장에 아들에게 전해줄 말을 쓴다.

    통증 때문에 삐뚤삐뚤한 글씨다."다움이를 사랑하는 아빠가 "

     

    ▲영주는 일정이 바뀌어 오늘 떠나게 되었다며 아이가 아빠를 만나지 않고는

    가지 않겠다고 우니 딱 한번만 아이를 만나 달라고 말한다.

    호연은 민과장을 만나 모르핀을 맞는다. 발병한 이후로

    그토록 거부했던 처음으로 맞아보는 모르핀이었다.
     


    ▲늦가을 저녁 일곱시. 그는 병원 벤취에 가로등을 등지고 꼿꼿하게 앉아있다.

    다움이의 병이 재발되어 골수 검사를 할 때 차마 그 고통을 지켜 볼 수 없어

    도망 나와 비를 맞고 앉아있던 그 벤취였다.

    그때는 절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희망뿐이다. 아들은 완치되었다.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 누가 알았던가. 아이가 뛰어온다.

    "아빠-" 라고 부르며.

    호연은 "거기서라 !"고 말한다.

     
    아이는 주머니에서 꽃핀을 꺼내 진희고모를 주라고 한다.

    호연은 벤취 끝에 놓아둔 봉투를 아이에게 가져가라고 한다.


    "노트는 엄마를 주고 책은 너 갖거라."

    "아빠! 아빠 귀를 한 번만 만져 보고 싶어요!"

    그러나 호연은 고개를 젓는다.

    "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 턱을 들고 어깨를 펴! 됐어! 앞으로는 그렇게 사내답게


    씩씩하게 당당한 걸어라. 다시는 아프지 말고......." 아이가 울면서 떠난 후

    호연은 아이가 놓고 간, 아이의 얼굴이 새겨진 조각을 집어든다.



    ▲ 호연은 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폐교에 들른다.

    다운이의 낙서와 학습판에는 찢겨진 가시고기 그림이 붙어있다.


    책상위에 빙긋이 미소 띄고 죽어있는 호연 -

     

    ▲일년 후 프랑스 파리 -


    다움이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아빠 보고 싶다" 라고..

     

     

 

 

 

 

가시고기 아버지

 


 

시웅 | 수습위원 | komun@kom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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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라는 책을 기억한다.

IMF 이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밀려나 실직했고,

가족들에게 차마 실직했다고 말할 수 없었던 어떤 아버지들은 출근 복장으로

산에 오르거나 거리를 맴돌곤 했다.

당시 '가시고기'는 그러한 '고개 숙인 아버지'들을 위로했기 때문에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팔고,

그런 사실을 아들에게는 숨긴 채 결국 자신은 간암으로 죽는

'아버지'의 모습에 공감하지 않은 아버지들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때의 아버지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부정父情에 대한 보상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깊이 있는 탐구였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가시고기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이야기해 보고,

그로부터 행복한 가족을 위해 아버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밝혀볼 것이다.


 

 

무엇이 가정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하는가


 

아버지들은 때때로 쓴웃음을 섞어 '돈 벌어다 주는 기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족 내에서 그는 아내와 자식 모두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권위적이고, 무뚝뚝하고, 챙겨주지 않고, 가사노동을 떠넘기는 아버지는

결국 아내와 서로 할 말이 없어진다.

끝없는 애정이 함께하는 결혼 생활이 아니라 끝없는 지겨움과 무시가 함께하는 결혼 생활이다.

자식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단답형의 대화 속에서 이야기는 빙빙 돌 뿐이고

식사나 기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식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와 아내, 자식은 서로 상처를 주게 된다.

소통이 안 돼서 답답한 마음이 부정적인 계기-서로 화내거나, 모욕을 주거나,

비웃거나 하는식으로-를 통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서로 더욱 마음에 벽을 쌓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러한 가족 내 소외의 원인은 아버지들이 가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다.

그들은 아내와 자식을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보지 않고

그들을 지배하고 싶어하고 지배적 위치를 계속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 입장에서 그러한 지배와 감정 요구는 어이없는 억지에 불과하고

그들은 은근한 무시로 반항한다. 이것이 가족 내 소외의 작동방식이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남성들 자신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있다.

어린이날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특근이 잡혀있으면 어쩔 수 없다.

주·야간 교대 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가족이랑 같이 생활을 할 수가 없고,

낮에 집에서 잠만 자야 한다.

일찍 들어와서 같이 놀기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아내랑 술 한잔하고 싶어도

맨날 잔업이고 회식이다. 설령 정말 어쩌다가 일찍 퇴근해도

하루종일 혹사당한 몸과 마음으로는

가족들에게 낮에 마음먹은 만큼 잘 해주지 못하고 자꾸 짜증만 내고 후회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가족과 함께할 삶의 여유를 전부 사장에게 빼앗겨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박탈 상황이 가족내 소외의 구조적 원인이다.


 

이러한 상황마저도, 유지될 수만 있으면 그럭저럭 죽고 싶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차악의 상황마저 부러울 최악의 상황이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정리해고 혹은 자영업의 실패라는 상황이다.

 

 

 

 

 

 

김청하 수필가의 짧말한 글

 

 

 

   


가시고기를 아시는지요?
흔히들 가시고기를 부정(父情)의 상징으로 여기지요.

이 물고기는 효(孝) 정신이 희박해져 가는 오늘날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시고기의 생태를 통해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가시고기의 삶을 의인화한 소설 <가시고기>를 기억하시는지요?

책이 발간된 지 이미 여러 해가 흘렀지만 아직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자식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즉 모성애만 생각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저울로 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요.

가시고기는 우리의 이 편향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움직임은 느리지만 가슴지느러미를 회전하여 멈춤과 순간이동이 자유롭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빨간 물체만 보면 소처럼 돌진하는 용맹스런 습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굶어서 죽을지언정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집도 있습니다.


수컷은 암컷을 자기가 지은 집으로 유인하여 짝짓기 행동을 합니다.

수정을 마친 큰가시고기는 둥지를 잠시도 떠나지 않고 다른 물고기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수컷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산란을 위한 집을 짓는 동안

암컷은 주변에서 집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놀기만 합니다.

 

비로소 집이 완성되면 암컷은 그곳에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는 시간은 불과 3~4초,

그 짧은 시간에 산란을 마친 암컷은 미련 없이 집을 떠나갑니다.

알을 낳은 암컷 가시고기는 이내 둥지를 떠났지만,

새끼를 부화하고 키우는 건 오롯이 수컷 몫입니다.


수컷의 보살핌으로 제법 자라난 새끼들은 하나 둘 집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새끼들은 무리를 지어 집 주변의 수초 사이에서 먹이 찾기에 바쁩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물속의 곤충, 플랑크톤, 물고기 알, 어린 물고기 등을 잡아먹으며 살지요.


그러나 새끼들을 돌보느라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수컷은

마지막 힘을 다해 집 앞으로 다가와 숨을 거둡니다.

 

1년 전 자신을 낳아준 가시고기가 그랬듯이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서지요.

마지막 한 마리의 새끼까지 모두 안전하게 떠나보낸 수컷의 생명은 그렇게 끝납니다.

며칠 후, 집을 떠났던 새끼들이 죽은 수컷 주위로 모여들어 죽은 지아비의 살을 뜯어먹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우리는 큰가시고기의 삶을 통해 어버이의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효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점점 무디어져만 가는 이 세태 속에서

효야말로 가장 소중한 우리의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효의 실천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효의 실마리가 되고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힘닿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베풀면 훌륭한 효가 되지요.

 


요즘 사람들은 부모에게 물질로써 봉양함을 최고의 효도로 칩니다.

 

그러나 여기에 공경하는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효도라 할 수 없습니다.


‘가시고기’가 보여주는 애절하고 거룩한 자식 사랑이

 

우리네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길 바랍니다.
 

 

 

 김청하 수필가

 

 

 

가시고기-아버지 사랑

 

  



 

   연극으로 부활한 "가시고기"

 

 

 

 

아버지 사랑

 


 

 

 

 

300만부 팔린 소설"가시고기"



알을 낳은 후 엄마 가시고기는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아빠 가시고기는 알이 부화가 될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채 한시도 새끼 곁을 떠나지 않고 돌본다.

아빠 가시고기는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

새끼가 세상에 눈 뜨고 부화가 될 즈음 아빠 가시고기는 큰 결심을 한다.

아직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어린 새끼 가시고기들을 위해 기꺼이 돌틈에 자신의 머리를 쳐박고 죽는다.

자신의 몸뚱이마져 새끼들의 먹이로 내놓는 가이없는 사랑을 주고가는 희귀한 어종이다.




아빠 가시고기가 새끼들에게 말한다.

"아빠는 너희들을 하늘 만큼 땅만큼 사랑한단다."

"아빠! 우리들도 아빠를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해요. 뽀뽀"

"허허. 녀석들. 아빠가 기쁘구나."

"아빠! 배가 고파요. 엄마는 어디갔어요?"

아빠 가시고기는 밤 하늘을 보며 큰 결심을 한다.

"잘 있어 아이들아. 아빠의 기쁨은 너희들이야."

아빠 가시고기는 웃으며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아빠는 어디있어. 어, 이게 뭐지?"

새끼 가시고기들은 바위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빠를 몰라보고

 

죽어 있는 아빠 고기를 먹는다.



아빠 가시고시의 희생은 우리들의 아버지 같다.

아버지는 숨어서 눈물을 흐리고, 숨어서 기뻐한다.

아버지는 말 없이 새끼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말 없이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둔다.

아버지는 지갑 깊숙한 곳에 새끼 사진을 넣어놓고 숨어서 힐끔힐끔 웃는다.

아버지는 부들부들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식들을 담아두고 사는 철인이다.

아버지 사랑은 목숨건 희생으로 자식을 품는다.

 

 

 

  

 `가시고기` 연극으로 부활

 

▲ 연극 `가시고기`의 한 장면(사진=뉴데이픽처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연극 `가시고기`(연출 권호성, 각색 선욱현)는

지난 2000년 조창인의 동명 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소설 `가시고기`는 IMF 이후 어수선한 한국 사회에서 3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에 힘입어 TV 단막극으로도 방영됐다.

이후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헌신하다 결국 삶을 마무리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담은 `가시고기`덕에 익숙지 않았던 민물고기인 가시고기는

부성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지난 1일부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가시고기`는 소설의 뼈대를 그대로 살렸다.

다만 소설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웃음 코드를 간간히 집어넣어 쳐지는 분위기를 막았다.

주인공 정호연의 해병대 후배로 나오는 병원 원무과 계장과 투병을 위해 산속에 들어갔을 때

부자를 돌봐주는 할아버지 캐릭터가 극에 활력을 준다.

하지만 `가시고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절절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는 어린 아들을 지켜보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아버지의 자괴감이 극의 근간을 잡고 있어서다.

또한 오랜 투병 끝에 일찍 철든 어린 아들의 체념도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현실의 훗날을 꿈꾸기보다 사후의 미래를 말하는 다음이의 모습 때문에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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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아버지 정호연을 연기하는 배우 중 한 명이 탤런트 이광기다.

 

이광기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어린 아들을 잃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극 중 아들 다음이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연기와 실제의 경계선을 허문다.

관객이 극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무대에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다음이를 연기하는 아역 신기준의 울음은 마음의 일정부분을 무장해제시킨다.

눈물범벅이 된 다음이가 아빠와 헤어지면서 무대 뒤로 사라질 때 객석에서도 눈물의 강이 흐른다.
    


동화적인 무대 구성은 어린 관객들을 배려한 듯하다.

산골로 요양을 간 부자가 폐교의 교실에 앉아 부르는     

맹꽁이 노래도 부자지간의 애틋한 정을 더 도탑게 한다.

전형적인 전개와 일부 과장된 연기는 극의 약점이다.

연극 특유의 사색과 지적인 자극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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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안 끄셔도 될듯 합니다.

 

 

 

 

 

 

 

 

 음악과 편집=씨밀래

출처=재봉틀,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