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햐여/예수님의 향기

소록도를 떠난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

까까마까 2012. 2. 25. 12:09

                                                              

 

 

약간 왼쪽으로 조정하시고 보시면 더 잘 보입니다


         소록도를 떠난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님이 남긴 편지 전문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저에게 아주 어렵게 썼습니다.

 

한편은 사랑의 편지이지만은 한편은 헤어지는 섭섭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는 것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한다고 해도 헤어지는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각 사람에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되겠지만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마가렛은 1959년 12월에 한국에 도착했고 마리안나는 1962년 2월에 와서 거의 반세기를 살았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간호로 제일 오랫동안 일하고 살았습니다.(천막을 쳤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70이 넘은 나이입니다. 소록도 국립병원 공무원들은(직원) 58세~60세 나이에 퇴직합니다.
 
퇴직할 때는 소록도에서 떠나야 되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이 될지 몰라 이곳을 비워주고 다른 곳에 가서 사는 것은 저희들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우리 나이가 은퇴를 지나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복지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우리는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없어도 환자들에게 잘 도와주는 간호사들이 계셔서 마음놓고 갑니다.

 

 

 
옛날에는 약과 치료품들이 많이 필요 했을 때 고향에서 도움을 받아 도와 드릴 수 있었습니다

 

.

현재 소록도는 여러 면에서 발전되어 환자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어서 우리들은

 

아주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가끔 저희가 충고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써 큰사랑과 존경을 받아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저희에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을 이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큽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을 할 수 없어 하느님께서 우리대신 감사해 주실 겁니다.
 
항상 기도안에서 만납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나 올림

 

마가렛 올림

 

 
소록도 2005년 11월 22일
 
 
 
Marianne Stoger
Zieglstadl 34
A-6143 Matrei / Brenner
Austria Europe
 
Heimatadresse
Margreth Pissarek
Brandjochstrasse Nr.9
A-6020 Innsbruck
Austria Europe
 
 

                                                                                                          

프로필 사진

소록도 앞 바다 전경.
 
 

 




 43년간 소록도봉사  외국인 수녀 2명,


~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나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
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
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왼쪽)와 마리안 수녀(오른쪽에서 두 번째).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배품이
참 배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 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씩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는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록도의 두 분 성녀님  | 동화  

 


 

 

 

 

 

아이빛 인물 그림책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첫번째 시리즈 까만 나라 노란 추장도 강무홍 작가님이 쓰셨고 이 책도 강작가님이 쓰셨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기획의 '천사들의 행진'도 웅진주니어 책이던가? 싶어서 찾아보니 양철북 책이다. 그 책도 강작가님이 쓰셨다. 위인전 쓰기에 심혈을 기울이시나 보다.
이 책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두 분 수녀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푸른 눈을 가졌던 두 분 수녀님이 무려 40년 동안이나 소록도에서 헌신하셨던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신 장호 작가님은 선명하기보다 조금 눌린 듯한 느낌의 그림을 선호하시는 듯도 한데 이 책에는 오히려 그 편이 더 효과적인 울림을 준 듯하다. 선착장에서 육지를 바라보며 오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하염없는 그리움과 갈망, 설움이 그림 밖으로 충분히 느껴진다.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던 섬의 의사들과 달리 두 분 수녀님은 맨손으로 성치 않은 손과 발을 만져 주고 고름을 짜주시고 주사를 놓아주셨다. 살면서 받아보지 못했던 그 따듯한 손길에 환자들은 오히려 당황하기부터 했다.
가족조차도 창피하다고 나몰라라 했던 시간을 견뎌온 그들에게 수녀님들의 헌신과 사랑과 봉사는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등뼈에 날개가 솟지 않았나 의심부터 하지 않았을까.
 

 

 

 

 

 

두 분이 40년 세월을 지내는 동안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 닥쳐왔을 때 그들은 무릎 꿇어 신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물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에 말이다.
진심은, 그리고 진실은 분명 사람을 움직이고 또 기적을 일으켰을 것이다.
소록도에 불러 일으킨 그 가없는 사랑은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화로 작용할 것이다.

 

 

 

 

두 분 수녀님은 이제 늙어 기운이 부족해졌을 때 섬 사람들에게 아픈 이별의 순간을 주지 않고 조용히 섬을 떠나셨다. 도착하셨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섬에는 수녀님들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등장한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님 말고 '마리아' 수녀님의 이름도 새겨 있던데 그 분은 어찌 되신 건지 잘 모르겠다.
사진은 아이들이 환자들과 격리되어 지내다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길 양 옆으로 서로 갈라선 채 얼굴만 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하여, '탄식과 시름이 서린 곳'이란 뜻에서 '수탄장'으로 불렸다 한다.
이 사진을 보고 나니 '당신들의 천국'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짙어진다.

사실 이 책보다, 소록도를 다녀오시고 나서 가슴을 울리는 후기를 남겨주신 순오기님의 기행 후기를 더 추천한다.

 

 

 

 


 
 

 

“소록도 천사 수녀… 그녀들은 백로였지”

前병원장 조창원씨가 그리는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환자 썩은살 맨손 만지며 45년 봉사하다 훌쩍 떠나
기념관에 걸 그림 직접 그려… 다시 이 땅에 그런분 오실까


      
 
“그이들은 백로디, 백로. 인간이 아니야.”
 

    머리 하얗게 센 조창원(趙昌源·80) 할아버지는

        요즘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마다 어김없이 백로 두 마리가 등장한다.

백로는 수녀다. 45년 동안 소록도병원에서 봉사를 하다 지난해 11월 21일 고향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를 백로로 그리고 있다.

고향인 평양 사투리가 짙게 남아 있는 할아버지는

8년 동안 소록도병원장이었다.

육군 대령 군의관이었던 그는 5·16 군사정변 후 1961년 9월 소록도로 갔다.

이청준(李淸俊)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간척사업을 무섭게 몰아붙이던

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수녀들의 인연은 특별하다. “내가 가보니까 가장 필요한 것이 영아원과

보육소더란 말이디.

아기들이 태어난 다음에 엄마랑 바로 떨어지면 한센병이 전염되지 않거든.

” 할아버지는 시설이 없어 아이들이 ‘천형(天刑)’을 물려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소록도 가던 그해 광주 대교구의 미국인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 조창원 할아버지는 마리안느?마가렛 두 수녀를 사람으로 그릴 수 없었다고 했다.

 

머리가 센‘할매’로 그리기엔 너무 천사같았기 때문이란다.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수녀들이 섬에 들어온 첫날 깜짝 놀랐단다. “마리안느 수녀님은 키가 나만했어. 내가 1m78㎝인데

덩치도 좋았지.

마가렛 수녀님은 호리호리했고. 스물예닐곱 살 금발 수녀 두 명이 소록도에 오니까 섬이 난리가 났다. 

생전 외국인을 본 적이 없었거든.” 수녀들이 소록도에 온 것이 지난 1962년 2월. 할아버지

그림 속에선

소록도 파란 하늘 무지개 너머로 백로 두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표현됐다.


 

소록도 사람들이 정작 더 놀란 것은 수녀들의 외모가 아니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환자들의

썩어가고 문드러진 팔과 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것도 맨손으로.

“나도 명색이 의사(醫師)인데 너무 부끄러웠디. 그전까지 우리 병원 사람들은 마스크에

고무장갑 끼고,

고무장화 신고 완전 무장하고 나서야 환자들을 치료하곤 했거든….” 할아버지는 수녀들이

맨손으로 치료하는 것을

본 다음에도 병원 사람들의 치료방법은 바뀌지 않았다며 또 부끄러워했다. 할아버지

그림 속 백로 두 마리는

부리에 핀셋을 물고 문드러진 발가락에 약을 바른다. “그 건장한 마리안느 수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2000년에는 장암에 걸려서 오스트리아에 가서 장을 1m20이나 잘라 냈다는 거야.

6개월 동안 수술받고 나서는 소록도로 다시 돌아왔더란 말이디. 그게 어디 사람인가.”
 

지난해 11월 22일 수녀들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 할아버지에게 타이핑된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가끔 저희가 충고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느 올림. 마가렛 올림.’

수녀들이 한국을 떠난 직후 할아버지는 그이들을 기리는 유화 22점을 그려 왔다.

그림은 소록도에 조성될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기념관’에 놓이게 된다.
 

기념관은 올해 5월 17일 소록도병원이 만들어진 지 90주년이 되는 날에 맞춰 문을 열 예정이다.

“소록도 역사가 90년인데, 그이들이 45년을 봉사했으니 섬 역사의 반을 보고 간 거거든.

다시 우리 땅에 그런 분들이 오실지 싶어.” 그림을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이 계속 파르르 떨렸다.
 

 

 

 

 

 

 

 

 

 

 

 

 

 

 

 

 

언니야~~ 그냥 갈꼬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