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바오로 대성전-Basilica di S. Paolo
모든 이들에게 진실만을 알리는 "사도 바울"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바오로 성당을 지난번에 올리긴 했으나
너무 초라한 것 같아 이렇게 웅장한 것을 다시 올립니다.
돌매도 맞아 가면서 쓰러져 가면서 그래도 굽힘없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릴려고 했던 사도바울의 마음을 읽을수 있는 것 같아 감동이 옵니다.
몇 번의 지진으로 거의 건물들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형태와 구조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가게들의 바닥, 모자이크가 그때의 것이라니 감개무량 합니다.
사진이 중복되는 것도 있으니 양해를 바라며 밑으로 내려갈 수록 사진과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보이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자료입니다.
그리고 밑에 동영상은 사진으로 또는 설명으로 부족한 부분을
실상으로 보여드리니 재생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연주자는 SHLOMO MINTZ의 연주같은데
나와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성 바울로 대성당
성바오로 대성당
(Basilica di S. Paolo)
성바오로 대성당은 로마의 황제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사도 베드로와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64년에서 67년 사이에 로마에서 순교한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 외곽지역 트레폰타네(tre fontane, 세개의 샘)에서 순교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시민권자이기에 노예나 이방인처럼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칼로 목을 자르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를 하였다.
사도의 목을 치자 목이 땅에서 세번을 튀었는데 그곳에서 샘물이 솟았다 한다.
대성당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의 '중앙통로(Central Nave)' 사이로
양 옆으로 늘어선 80개의 열주 기둥들과 화려한 지붕 장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사도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를 시작으로 한 교황들의 모자이크 초상화가
이 곳이 교황좌 성당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도의 유해는 처형직후 사도를 따르던
루치아라는 부인의 소유였던 현장소에 묻히게 된다.
현재 바오로 대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당시 교황이었던
성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베드로 대성당과 같은 날 축성 되었다고 한다.
(324년 11월18일) 현재 성당의 모습은 386년 데오도시우스 로마 황제와
그의 아들 아르카디우스가 로마 총독이었던 살루스타우스에게 성당을 확장하도록 명하였다.
총독은 건축 설계자였던 치리아데에게 성당을 맡긴다.
공사는 즉시 거행되어 390년 교황 시리치우스에 의해 축성 되었으며
성당 내부장식은 395년 호노리우스 황제 때 완성 되었다.
성 바오로 대성당은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많은 수난과 시련을 겪게 되는데
461년 벼락으로 , 739년에는 롬바르드족의 침입과 약탈을 당했다.
그후 복구를 하였으나 847년 사라센족의 침입 때 성베드로 대성당과 함께
약탈을 당하게 되자 교황 요한 바오로 3세는 주위에 성을 쌓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23년 7월15일의 화재로 성당은 잿더미로 변하고 만다.
이에 비오 7세를 이어 레오12세는 교황에 즉위하자 성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전 세계 교회에 요청하게 되고 벨리 플레티, 베스피나니, 갈데리니 등의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도를 복원하고 1854년 교황 비오9세의 축성으로 재건되었다.
대성당은 길이 132미터, 폭 30미터로 성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크다.
성 바울로 대성당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대성당 외부의 회랑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사도 바오로의 석상은
조각가 피에뜨로 카노리카가 1893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카라라산 대리석으로 그 무게만도 400톤에 달한다는 석상은
한손에는 성서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으며 받침대에는
[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 만을 연설하는 이] 라는 라틴어가 쓰여져 있다.
성당 정면의 황금색 모자이크는 대화재 때 소실된 것을 교황 요한 23세가
카발리니에게 의뢰해서 복원한 것으로 제일 위쪽 중앙에는 그리스도,
그 좌우에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그리고 그 밑에는 어린양 그리스도가
양쪽에는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양들이 그려져 있으며,
제일 아랫단에는 네명의 복음사가가 있다
중앙 제대 밑에는 사도 바오로의 무덤이 있다
아래 분수가 있는 곳은 그 유명한 트레비분수
"그리스도교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한
'사도 바울로(St Paulo the Apostlel)'의 돌무덤이 들여다 보이는
중앙 '제단(Alter)'까지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성당의 '중앙통로(Central Nave)'
단순하면서도 힘찬 구조가 마치
'사도 바울로(St Paulo the Apostlel)'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대성전은 1개의 중앙통로(Central Nave)'에
4개의 '중간통로(Aisles)'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중앙통로(Central Nave)'와 4개의 '중간통로(Aisles)' 사이에는
80개의 화강암 기둥들이 늘어서 있다. 세로 길이가 131.66 m 이고.
가로 길이가 65 m이고 높이는 29.70 m에 달한다.
이는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다음으로 큰 성당이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1833년에서 1854년 사이에,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Basilica Papale di San Francesco d' Assisi)'의 지하성당
'크립타(Cripta)'를 건설한 '파스쿠알레 벨리(Pasquale Belli)'와
그의 조수 '보시오아 캄포네세(Bosioa Camponese)'가 대화재 이후
대성당 재건이라는 막중한 중책을 맡는다.
그나마 약간 남아있던 부분들도 완진히 없애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이 시작하였다.
석회로 장식을 만들어 그 위에 금박을 입혀 장식한'스투코(Stucco)' 천장 장식,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1833년 공사 총감독이었던 '벨리(Belli)'가 죽자,
공사 책임자로 '루이지 폴레티(Luigi Poletti)'가 새로 임명된다.
그는 전임자와 달리 파괴되기 전 원래의 대성당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주력하였다.
그러나 이 천정은 그의 전임자였던 '파스쿠알리 벨리(Pasquale Belli)'가 설계한 그대로 만들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80개의 화강암 기둥들이 서있는데 이는 지붕장식과 함께 19세기에 조성되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창문사이에는 40개의 '바베노(Baveno)'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창문장식 기둥들로 꾸며져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
대리석을 얇게 잘라 채광이 들게 만든 장식으로 이 기술은
'바티칸(Vatican)'의 등록된 특허기술이라 한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이 아치에 장식되어있는 모자이크는
5세기 '교황 성 레오.Pope St Leo,440-461)' 때 만들어졌다.
'호노리우스 황제(Emperor Honorius)'의 여동생
'갈라 플라치디아(Aelia Galla Placidia,392 ? 450.11.27)'가 후원하여
'피에트로 카발리니(Pietro Cavallini)'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서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이 모자이크를 '갈라 프라치다(Galla Placidia)'라 부른다.
'성 레오 대 교황(Pope St Great Leo) 때에 조성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8세기와 9세기 사이에 전반적으로 대수리를 하였다.
현재는 여러 차례의 복구로 인해 많이 손상되었다.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모자이크 가운데 방패 모양의 원 안에는 후광에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왼손에 십자가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강복을 주는 모습이 담겨져있다.
그 양 옆에는 두 천사들이 있으며, 위편 좌우로 4대 복음사가,
오른쪽으로 부터 요한, 마르코, 마태오, 루가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그려져있다.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아래 쪽에는 요한 묵시록 4장 4절에 나오는 "옥좌 둘레에는
또 높은 좌석이 스물네개 있었으며, 거기에는 흰 옷을 입고 앉아있었습니다"에서 언급한
24명의 원로들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사도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 동상과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의 동상이 있다.
후광에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왼손에 십자가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강복을 주고있다.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원래의 이 모자이크화도 1823년의 화재 때 대부분이 유실되었다.
하여 1853년 모자이크를 다시 복원하며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는
14m 높이의 '몬토르파노(Montorfano)' 산 화강암 기둥 위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승리의 아치(Triumphal Arch)'의 뒷면 벽에는,
이전 대성당 정면을 장식했던 모자이크 일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중앙 제대(High Later)' 뒤 '에프스(Apse)'라 부르는
'후진'의 모자이크 옆에 끼워졌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천국의 열쇠를 쥐고있는 '사도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또 나는 네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
천국의 열쇠를 쥐고있는 '사도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령의 칼을 집고 서있는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령의 칼을 집고 서있는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령의 칼을 집고 서있는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 '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 통로(Nave)' 양 옆으로 그려져있는 벽화들과
그 아래에는 모자이크 되어 있는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교황들의 초상화가 이 곳에 모자이크 되어었는 것은
'대 레오 교황(Pope Great Leo, 440-461)' 때인 5세기 경 부터였다.
대화재 이후 대성당 내부의 벽화를 재현하기 위하여
당시 최고의 유적 복원 전문가였던 '피에트로 카발리니(Pietro Cavallini)'를 불렀다.
'카발리니(Cavallini)'는 남아있던 벽화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거의 원화에 가깝도록 복원시켰다.
'중앙 통로(Nave)' 양 옆으로 그려져있는 벽화들과 그 아래에는
모자이크 되어 있는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벽화의 내용은 주로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내용과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의 생애로 되어있고
그 아래쪽의 둥근 판에는 제 1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St Peter the Apostle)'에서 부터
현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가 모자이크 되어 있다.
'중앙 통로(Nave)' 양 옆으로 그려져있는 벽화들과 그 아래에는
모자이크 되어 있는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대화재 때에 손실되어 오늘날의 모자이크는 복원 당시에 다시 만들었다.
다행히 바티칸 문서관리국에 5세기 이후 이 곳에 있던
초상화들의 복사품 일부인 41폭의 초상화,
'바티카노 라티노 사본 4407(Vaticano Latino) 이 보관되어 있어
새로 복원하는데 큰 도음이 되었다 한다.
현재 이 사본들은 이 대성당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중앙 통로(Nave)' 양 옆으로 그려져있는 벽화들과
그 아래에는 모자이크 되어 있는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1847년 5월 '비오 9세(Pope Pius IX)'는 옛 초상화들을 대치할
새로운 초상화 장식의 시작을 교령으로 공포하였다.
바티칸 모자이크 연구소장인 '필립보 아그리콜라(Philppus Agricola)'에게
교황들의 초상에 대한 묘사가 맡겨졌고,
이 작업을 위하여 여러 명의 화가들이 일하였다.
그들 가운데 '봄피아니(Bompiani)', 칸테라니(Cantelano),
'데 로시(De Rossi)', '소씨(Sossi) 등은 초상화에 이어
‘성 바오로의 생애’를 일련의 '프레스코(Fresco)'화로 그렸다.
왼쪽으로 부터 '교황 스테파노 3세(Pope Stephanus III)',
스테파노 2세(Pope Stephanus II)',
그리고 '교황 파울루스(Pope Paulus)',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 베드로 모자이크 공장에 보존되어 있는 유화 모형들의 제작은
이어지는 2년 동안에 진행되었는데,
그 반면에 모자이크화 작업은 1876년까지 지연되었다.
이 초상화 시리즈는 새로운 교황의 초상이 걸릴 때마다 증보되어 왔다.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가톨릭 교회에서 성주간 토요일 밤 미사 전에 행하는
'빛의 예식(Celemony of Light)'은 10세기 부터 교회 예식에서 정례화되기 시작했다.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빛의 예식(Celemony of Light)'은 부활의 생명으로 이끄는 과정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예식이다.
교회에서의 빛은 그리스도 부활의 가장 큰 상징이며 표징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은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날이기 떄문이다.
하여 교회는 '빛의 예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빛과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이 예식은 '부활 대축일 전날 밤(Easter Saturday)' 시작되어
날이 밝기 전에 마치게되는데 이는 빛을 보고 빛을 받아들이며,
빛의 능력 곧 생명의 능력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그래서 이 '빛의 예식(Celemony of Light)'은 '에 사용되는 부활초를 꽂아 놓기 위해
11세기부터는 촛대 제작이 유행했다.
중앙 '제대(Alter)' 오른쪽 회랑 입구에 놓여있는 이 '부활촛대(Paschal Candle)'는,
1170년 대리석 조각에서 당대의 명인들이었던 니콜로 디 안젤로(Nicolo di Angelo)'와
'피에트로 바실레토(Pietro Vassalletto)'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부활이 중심 내용으로 조각되었다. 전체 높이는 5m 60cm에 이른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이 '부활촛대(Paschal Candle)'는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당시 유행하던
조각의 흐름이 잘 표현된 대단히 아름답고 특이한 형태로,
촛대의 받침대는 몸은 사자와 양의 모습이고 얼굴은 사람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양과 사자는 성서의 상징적 동물로, 양은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며,
사자는 내세로 들어가는 데 주저하지 말고 사자와 같이 용감하게 들어감을 의미한다.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조각 밑에는 니콜라 안젤로(Nicolo di Angelo)와
'피에트로 바살레토(Pietro Vassalletto)'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조각은 여러 해 동안 로마의 조각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부활 촛대(Paschal Candle)',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대성당은 13세기에서 14세기 초에 이르러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맞게된다.
부활 촛대'부활촛대(Paschal Candle)'가 만들어지고
또한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 때에는 '중앙제대(Central Alter)' 뒤
'에프스(Aeps)'의 모자이크화가 드려지고, 내부 회랑이 만들어졌다.
또한 '피에트로 카발리니가 '중앙통로(Nave)'에 벽화들을 그려넣었는데,
이 벽화는 훗날 19세기의 성당 재건 때 사라졌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감실(Tabernacle,龕室)을 만든것도 이 무렵이며,
1325년에는 성당 전면의 황금색으로 빛나는 저 유명한 모자이크가 완성되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 제대(Central Alter)',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위에는
13세기에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제작한
화려한 고딕 양식의 '감실(Tabernacle,龕室)'로 둘러싸인 '중앙 제대(Central Alter)'가 있다.
이 '제대(Alter)'는 또한 '교황 제대(Papal Alter)'라 부르는 것은 여기서는 교황 만이,
그리고 아주 드물게 간혹 대성당의 대수도원장인
'아빠스(Abbas)'가, 미사를 집전하기 때문이다.
'중앙 제대(Central Alter)'는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의 무덤 위에 세워져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 제대(Central Alter)',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 제대(Central Alter)',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 제대(Central Alter)' 는
'클레멘스 8세( Pope Clemente VIII,1592-1605)'에 의해,
높이가 좀 더 높여지는데 '호노리오 롱기((Honorius Rongi)'가
'성녀 브리짓다 제대(St Brigida's Alter)'와
이 중앙제대(Central Alter)를 만들었다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사도 바울로(St Paul the Apostle)'의 석관과 무덤이 보관되어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Great Emperor Constaniuns)'가 첫번째로
사도의 무덤위에 제대를 세웠으며, 지금까지 숫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사도 바울(St Paul the Apostle)'의 유품인 9개의 고리로 연결된 쇠사슬.
전승에 의하면, 이 쇠사슬은 '사도 바울(St Paul the Apostle)'이
AD. 61년에서 6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간수인 로마군인과
서로 연결했던 쇠사슬이라 한다.
원래 이 사슬은 다른 사도의 유물과 함께
'베네딕트 수도원 예배당(Chaple of Benedict Abbey)'에 황금과 수정으로 장식된
'성합(Ciborium)'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슬의 상징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수난과 순교’의 거룩한 생애를 보냈음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대성당의 대수도원장,
'아빠스(Abbas)'인 '추기경 안드레아 디 몬테쩨몰로(Cardinal Andrea di Montezemolo)'가 '
사도 바울(St Paul the Apostle)' 탄생 이천년을 기념하는
2005년 '사도 바올로의 해(Pauline Year)'에 취임하는
제265대 교황 '베데딕트 16세(Benedikt XVI)'의 2005년 6월 28일 취임식에 맞추어
대성당 중앙제대(Central Alter)'앞에 세워놓았다.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9개의 체인은 '사도 바울(St Paul the Apostle)'을
"로마 대화재 방화 공모와 사교 그리스도교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수감하고
마침내 참수형에 처한 '네로 황제(Emperor Nero)'가 그려져있는 로마의 동전을
확대한 장식의 양 끝에 걸려져있다.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이 진열상자는 '추기경 안드레아 디 몬테쩨몰로(Cardinal Andrea di Montezemolo)'의 의뢰로 '사도 바올(St Paul the Apostle)' 탄생 이천년을 축하하는 '바티칸(Batican)'의 '사도 바울의 해 기념문(Pauline Door)'과 기념주화, 기념메달들을 만든 이탈리아 조각가 '귀도 베로이(Guido Veroi)'가 만들었다.
"사도 바울의 쇠사슬(Apostle St Paul's Chain)",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그리고 그 밑에는 '사도 바울의 석관(St Paul's Sarcophagus)'이 자리잡고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사도 바울의 석관(St Paul's Sarcophagus)',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중앙제대(Central Alter)'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사도 바울의 무덤(St Pual's Tomb)',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2006년 12월 11일 교황청은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
지하에 안치됐다 발굴된 사도 바울의 석관(St Paul's Sarcophagus)'을
500년 만에 일반에 공개한다고 발표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대리석 석관(Sacophagus)'을 둘러싼 회반죽과 쇠창살 등을 제거하고
유리로 된 벽을 만들어 성당을 찾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밝힌다.
이전까지는 ‘순교자 사도 바울’이라는 라틴어 명문과 함께 설치된 대리석 판 아래 안치돼 있어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웠었다.
바울의 석관이 안치된 지하 묘소는 1545년에 폐쇄돼 일반인이 찾아볼 수 없게 돼 있었으나,
2000년 대희년 기간 중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을 찾은
신도들이 석관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냄에 따라,
교황청이 2002년부터 석관 공개를 위한 작업을 진행해 이해 12월에 완료했다.
서기 1세기 로마의 기독교 탄압 당시 참수된 것으로 전해오는
바울의 두개골은
로마의 '성 요한 라테란 성당(San Giovanni in Laterano)'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사도 바울의 무덤(St Pual's Tomb)',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교황 제대 위의 '감실(Tabernacle,龕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13세기 말엽 당시 이곳의 대수도원장,
'아빠스(Abbas)던 '바르톨로메오(1282-1297)'가 당시 최고의 조각가였던
'아르놀포 캄비오(1240-1302)'에게 의뢰하여 1285년에 만든 것이다.
고딕 양식으로 된 아름다운 4 개의 반암 기둥을 '중앙 제대(Hi Later)' 위로 올리고
그 위에 '감실(Tabernacle)'을 올렸으며,
'감실(Tabernacle)' 아래 부분 네 귀퉁이에는
성 베드로, 바오로, 디모테오와 베네딕투스회의 창립자
'성 베네딕투스(St Benedictus)' 상이 조각돠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감실(Tabernacle)' 옆부분에는 수도원장인 '바르톨로메오( Abbas Bartholomaeus)'가
사도 바울로에게 이 '감실(Tabernacle)'을 봉헌하는 모습과 카인과 아벨의 봉헌,
다윗왕과 솔로몬,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각각 부조되어있는
고딕 양식의 모습에 비잔틴 예술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배합시켰다.
그리고 그 위 네 귀퉁이에는 작은 뾰족탑들이 있으며,
중앙에는 십자가가 달린 큰 첨탑이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당은 완전 소실되었으나 제대 위의 이 감실 만은 유일하게 피해를 덜 입었다.
하여 대성당의 대부분이 새로 지어졌으나 이 '감실(Tabernacle)'만은 약간의 수리만 하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바오로(St Paul), 디모테오(St Thimoteo)와
'베네딕투스회(Benetican Order)의 창립자 '성 베네딕투스(St Benedictus)' 상.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성 바울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Via Ostiense, Italy
일부출처=페트릭,하늘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