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네 마을-아라리촌
양동마을은 여러번 올린 자료이나 양동마을을 다른각도로 찍어
다름을 보여주는 못 보던 풍경도 있어 올립니다.
밑의 동영상은 실재 주민들의 목소리를 넣었네요.
마을 구경도 하실겸 재생헤서 보시면 좋습니다.
051c02
마을로 구경 가보세"
조선후기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하고
동시에 관리들의 횡포를 풍자한 '양반전'이란 소설이 있다.
정선읍 애산리에는 이 소설을 토대로 한 작은 부락이 하나 있다.
정선의 옛 모습과 함께 양반전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 아라리촌이다.
거리 곳곳에는 물레방앗간, 통방아, 연자방아, 서낭당, 초정, 장승 등의
건물과 소품이 있어 실제 옛 거리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설 양반전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옛날 강원도 정선 땅에 가난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현명하고 정직한데다 책읽기를 즐겨해 신임 군수들조차 직접 찾을 만큼 인격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 능력이 떨어졌다. 관가의 곡식을 빌려 연명했는데
어느덧 그 환곡이
1000여 섬에 이를 지경이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소설 <양반전>의 첫대목이다.
정선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사는 고장이다.
물론 소설은 허구지만 양반전을 읽다보면 등장인물의 생김이나 복장,
내용에 나오는 건물, 소품, 거리 등이 상상되곤 한다.
'실제로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런 궁금함을 실물로 조성해
놓은 곳이 바로 아라리촌이다.
기와지붕에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양반이 머물렀던 전통와가를 시작으로
굴피집, 너와집, 저름집, 돌집, 귀틀집 등이
전시돼 있다.
아라리촌에 들어서면 오른쪽 한편으로 갓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은 황금빛 동상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서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이 전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상들은 <양반전>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당시 의복을 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한 부자가 자신의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자
그 앞에 넙죽 엎드린 가난한 양반의 모습이 애처롭다.
돈을 벌지 못해 자신의 마누라에게 구박받는 양반의 모습도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동상을 하나씩 둘러보다 보면 불쌍한 마음보다 웃음이 나올 때가 더 많다.
양반은 세수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 옷이 모두 젖었다는 얘기도
동상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자녀에게 소설을 먼저 읽게 한 후
동상을 하나씩 둘러보며 내용을 상기시켜 보는 것도 좋겠다.
표정과 손동작 하나까지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마치 단번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다.
표정과 손동작 하나까지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마치 단번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정선의 옛 마을에서 여유를 즐기다
우리네 선조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조성해 놓은 곳은 많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의 주요 촬영장이기도 한 용인의 민속촌을 시작으로
지방 여러 곳에 전통가옥과 거리를 재현해
당시의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아라리촌 역시 옛 선조들의 가옥과 당시의 거리, 소품 등을 전시해 놓았다.
조금 다른 면이라면 오직 강원도와 정선의 옛 생활모습만 서로 다른 가옥별로 조성해놨다는 것.
기와지붕에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양반이 머물렀던 전통와가를 시작으로
굴피(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은 굴피집,
200년 이상 된 소나무 널판으로 지붕을 얹은 너와집,
대마 껍질을 벗겨낸 줄기로 이엉을 엮은 저름집
등을 볼 수 있다.
아라리촌엔 강원도와 정선의 옛 가옥과 거리,
소품 등의 생활모습을 당시 모습 그대로 조성해 놨다.
이밖에도 2cm의 얇은 돌기와(판석)를 지붕으로 사용한 정선지방에만 있던 돌집과
목재가 풍부했던 강원도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살던 귀틀집 등도 볼거리다.
외관 뿐 아니라 집안도 옛 모습 그대로다. 눈이 많이 오는 산간지역에선
마당이 집 안으로 들어와 봉당이 됐다.
실제로 물을 퍼올릴 수 있도록 우물의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봉당과 부엌 사이에는 추운 겨울 불씨를 보관하던 화티가 재현돼 있다.
그 시절엔 시집온 새색시가 불씨를 관리했는데
혹시라도 불씨를 꺼트리면 소박맞는다는 말이 있었다.
부엌 한 편에 재현된 작은 공간이
그 시절
불씨를 관리하며 울고 웃었던 어머니들의 쉼터처럼 느껴진다.
가옥 안쪽으로 들어가면 내부도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해 놨다.
어린 시절 봤던 탈곡기와 방아가 인상적이다.
정선 지방의 전통 민가 중 하나인 저릅집이라고 한다.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를 짚 대신 이엉으로 이은집을 일컬으며
겨릅집이라고도 한다.
주로 정선과
삼척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속이 빈 저릅 대궁이
단열재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너와집...
백년 이상 자란 소나무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정선지방의 전통민가이다,
이곳에서는 이 모습도 참 자연스러워 보인다.
오히려 자동차와 앰프가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절구통도 보인다.
절구는 안장맷돌과 더불어 곡물을 빻는 최초의 수단이었다고 한다.
방아에 비해서는 원시적이지만 인력이 부족하거나
소규모의 곡물 생산을 하는 농가에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찾아온것 같은 풍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양반고을인 양동마을은
설창산 자락아래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정겨운데
높은 지대에 위치한 54호의 고와가를 중심으로
110여채의 초가지붕을 이은 가옥들이 들어서
500년 세월을 지켜온 유서깊은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국보283호로 지정된 통감속편을 비롯하여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을 보유한 보물같은 마을이다
양동마을 주차장에서 보면 왼쪽 언덕 고목뒤에 자리잡고 있는 관가정은
청백리로서 조선시대 우참찬을 지내고 경주 동강서원과 상주 속수서원에 제향된
우재 손중돈(1463-1529) 선생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으로
양동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관가정에서 마을 안쪽을 바라다보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향단은
화려한 지붕구조와 오밀조밀한 구조로 지어진 고건축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이
1543년경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성종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어 준 집이다.
양동마을 탐방코스중에 2코스 물봉골의 중심에 자리잡은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이번공이 살던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의 별당건물을 일컫는 말로
별당 이외에 안채, 별당채, 사당채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집안과 마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반촌 마을인 양동마을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제(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양동마을은 경주에 속하는 마을이지만 포항에 더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 명당자리로
일제시대 철도공사와 관련하여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곳이다.
@ 양동마을 탐방코스
1코스(하촌) :안락정→이향정→강학당→심수정(20분 소요)
2코스(물봉골) :무첨당→대성헌→물봉고개→물봉동산→영귀정→설천정사(1시간 소요)
3코스(수졸당) :경산서당→육위정→내곡동산→수졸당→양졸정(30분 소요)
4코스(내곡) :근암고택→상춘헌→사호당→서백당→낙선당→창은정사→내곡정(1시간 소요)
5코스(두곡) :두곡고택→영당→동호정(30분 소요)
6코스(향단) :정충비각→향단→관가정→수운정(1시간 소요)
편집=씨밀래
일부출처=Outdoor news,강경원의 여행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