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김영랑 시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김영랑 시인을 만나고...
강진에 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김영랑 생가와
다산 정약용일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언제나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억하게 해주는
주옥같은 시를 먼저 떠오르게 하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저와 함께
김영랑 시인과의 만남을 가져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김영랑 생가 입구에 들어서면
시에도 등장했던 돌담처럼
시인의 집과 어울린 느낌을 주는
야트막한 돌담이 먼저 반겨줍니다
햇살이 너무 찬란하게 내리쬐던 여름날
김영랑 생가를 들어서는데
모란이 필 때쯤 들려보았던 때의
찬란한 햇빛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영랑 시인은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세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출처] 김영랑 | 두산백과
여기 김영랑 생가는 시인의 감성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인 김영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고
47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시는 모두 87편이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시가 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김영랑을 시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일제 강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그리고 삭발령을 거부하는등 '대조선인'으로서 의롭게 살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분의 시에서 표현했듯이
봄은 찬란한데 슬펐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여기 생가를 돌아보면
그분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많습니다
돌아보며 읽어보는 느낌은
그분의 시향에 푹 빠지게 만든답니다
사투리가 그대로 살아있어서 더욱 정감이 가기도 하지요...
알알이 여물어 가는 은행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내 눈엔 시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생가 본채 입니다
바라보는 마음에
왠지 감성을 자극합니다
주르르 시가 흐르는 느낌으로....
아늑한 고향집에 온것 처럼...
사랑채 옆면에서 바라보는 하늘빛이 곱습니다
사랑채 너머로 보이는 하늘빛은
그대로 시가 되어 보이더군요..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처럼...
아래 시비에 시같이....
▽
사랑채 앞에
화단엔 여름꽃이 만발하고
사랑채 마루에 앉아보면
더욱 그분의 시를 이해하게 됩니다
여기 사랑채에 앉아 보면
여기저기 시인의 시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보입니다
돌담,우물, 감나무,동백, 모란 등..
무척 오래된 돈나무 한그루 마당에 자리하고....
참고로 돈나무는 5월에 황백색 꽃이 피며
10월에 열매가 누렇게 익으면 3개로 갈라져
적색의 종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든든하게 자리하는 은행나무가 생가 주인처럼
버티고 서있더군요...
시인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심은 은행나무랍니다
주인은 없지만, 그가 남긴 시의 흔적과
우리 마음에 자라듯 기억되는 시처럼
푸르기만 하였습니다
베롱꽃과 어우러진 하늘빛이 고왔습니다..
▽
사랑채 방안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송악:
10월에 꽃이피며
이듬해 5월에 열매가 익는다. 소가 잘 먹는다고 하여 소밥나무라고도 부른답니다
마당 한쪽 화단에는
나무. 돌. 꽃. 그대로 잘 보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의 소재였을 거라는...
마당 한쪽에 있던 우물...
'마당 앞 새암물은 내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대로 느껴지던....
▽
마당 한쪽에 모란이 있습니다
봄마다 모란이 필 때쯤
그분을 기억하며 찾아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요.
꽃은 졌지만
바라보는 내 맘에는
모란이 피었다가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비치더군요...
내년 봄에도
소리 없이 모란꽃이 피겠지요..
모든 여행객은 기다릴 겁니다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릴 겁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바위를 감고 올라가 자라는 식물이
참 오래된것 같은데
그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본채 뒤로 대나무는
한여름을 춤추고 있더군요..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있는 뒤안길..
동백꽃이 필 때쯤이면
피었다 지는 붉은 꽃이 그분의 시처럼 쏟아진답니다
예로부터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하였습니다
나무에서 한번,
떨어져서 한번,
그리고 바라보는 그대 마음속에서 한번......
은행나무에도 시인의 햇살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봄을 기다렸을 시인의 모습이
그 자리에 있는 듯.....
한여름을 울어 재끼는 매미 소리가
시인의 생가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랬어요
계절은 소리와 함께 오는 것이라고...
매미 소리가 그치면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처럼 오겠지요.....
살구나무가 장독대 옆에 고목으로 서 있습니다
시인과 함께 자랐을 살구나무...
바라보니 더욱 정감이 가더군요...
방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그분이 계십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눈인사하고.....
한쪽에 모란이 그려진 병풍이
그분의 시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
생가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그분의 시향이 있었습니다
깊은 밤 저 창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의 처연함도 느껴지고....
한참 머물러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려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빛이
무척 고왔습니다
언제나 찾아와도 반가이 맞아줄
아름다운 시가 있어 좋은
김영랑 시인과의 만남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립문을 나서는데
시인의 생가에 속삭이는
여름 햇살이 기울고 있었습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여기 시인의 생가는
어디에나 햇살이 쏟아지더군요..
눈에 그 찬란한 햇살이 자꾸 보였습니다...
생가 앞 마을에 우물터가 있더군요
정감이 가는 느낌...
그래서 담아보았습니다..
마을 한 어귀 담에도 햇살은 쏟아지고....
영랑시인의 이력에는 3.1 운동 때 종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잡혀서 고문당하고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내일 광복절인데요
그분의 나라 사랑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영랑은 87편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 편이 광복전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거부를 하며
강진에서 생활하면서 쓰던 작품들이라죠..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생가를 돌아 나오는 등 뒤로
쏟아지는 여름 햇살...
덥지만은 않았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가 마음에 남아
가을이 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겄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와
누이는 놀란 듯이
쳐다보며
'오매 단풍 들겄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다리니
바람이 잦아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겄네.'
단풍이 들어 찬란한 가을...
우리 앞에 가을이 곧 오시겠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시 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