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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 단종의 슬픔 간직한 영월 장릉

까까마까 2012. 9. 6. 19:17

 

 

 

 

      비운의 왕

단종의 슬픔 간직한 영월 장릉 

 

                                                                                                                    

강원도 '영월'을 생각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비운의 왕 단종을 떠올릴 것 같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단종의 기억이 서린

청령포, 영월 객사, 장릉 등 단종과 관련있는 유적지가 이곳 영월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17세 어린 나이에 한양을 떠나 외로운 육신을 뉘었던 청령포를 떠나

영월읍내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릉으로 향하였다.

청령포 관련 포스트 : 가슴 시린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영월 청령포에 서다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장릉.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충신들의 계획이 밝혀져

영월 청령포로 쫒겨나 유배생활을 하다가 사사당하고 이곳 장릉에 묻히게 된다.

매표소를 지나 입구로 들어서니 단종과 장릉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전시된 단종역사관이 먼저 나타난다.

단종역사관에서는 단종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단종의 시대, 승하, 복권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어

세자 즉위부터 단종대왕으로 복권되기까지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지하에는 단종과 정비였던 정순왕후에 대한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역사관 옆으로는 재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9명의 수호군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 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 등 사용기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재실을 지나자 비각이 하나 나타난다.

무슨 비각인가 해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충신 엄홍도를 기리는 정려각이다.

단종은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하여 차디찬 동강에 그 시신이 버려졌지만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두려워 아무도 선뜻 나서 시신을 거두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 호장 엄홍도가 충절을 지켜 눈 내리는 밤에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으로 가다보니 노루 앉은 자리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을 보고

기이하다 여겨 그 자리에 관을 갖추고 단종을 장사지낸 후 그 사실을 숨겼다.

충신 엄홍도에게는 고종 16년에 이르러서야 충의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고 한다.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엄홍도 정려각.

영월의 '충절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장릉의 서쪽에는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과 우물인 영천, 배식단 등이 자리잡고 있는데

홍살문 아래부터는 신도라고 해서 일반인들의 보행을 삼가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는 일반적으로 일자형으로 조성되는데

장릉은 ㄱ자로 꺾여 있는게 특이한 점이다.

능침은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잘 정돈된 왕릉이 있고 언덕 아래로는 정자각, 배식단, 영천, 신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는 조심스럽게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묘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선조 때에 이르러 김성일, 정철 등의 장계로 영역을 수축하고 돌을 세워 표를 하였다.

이후 숙종 7년인 1681년에 이르러 대군(大君)으로 추봉하였고,

숙종 24년인 1698년에 추복하여 묘호를 단종이라 하여 종묘에 부묘하고 왕으로 봉하여 장릉이라 하였다.

단종은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승하한지 241년만에야 다시 왕의 칭호를 되찾게 된 것이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는데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며 사각지붕형의 등인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하였는데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며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봉분 아래에는 정령송이라 불리우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데

정령송은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릉인 사릉에서 이식해 온 것으로

정순왕후가 소나무가 되어 단종의 곁을 언제나 묵묵히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영월 군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장릉.

'참배를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지만

청령포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 누워있는 한많은 어린 왕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경관과 세계문화유산의 자랑스러움도 도리어 애처로움이 되어 여행자의 가슴에 되돌아왔다.

  

 

 

 

 

 

 

 

 

 

 

 

 

                                                                                                                               

강원도 영월

 

 

 

 

단종과 관련된 역사의 땅이라 기억되고

나는 늘 어린 단종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익히 역사를 통해 배우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슴 시리고 아픈 역사가 자리하는 곳

영월 청령포를 다녀왔습니다

청령포를 다녀오면서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은 슬프지만

슬픈 역사의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그 역사 속,

오래전으로 돌아가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유배지 청령포를 소개하자면

영월의 서강 건너에 있으며,

서쪽은 험준한 기암절벽이 솟아있고

그 주위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이 청령포는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아니,

정말 천연감옥이었습니다...

이런 청령포에서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유배된 곳입니다

조선 6대 임금 단종:

문종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문종이 조선 5대 임금으로

즉위한지 2년 4개월만에 눈을 감게 되자

12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단종,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물러나길 강요하는 세조에게 1455년 수양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억울해도 억울하다 말할 수 없는...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이듬해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그 어린 나이에 단종임금의 편을 드는 자는

모조리 수양대군의 적이 되고 피를 흘리게 되죠..

그 어린 단종의 자리를 빼앗고도 성이 안찬 수양은

1457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여

이곳 영월로 유배를 보낸곳이 청령포입니다

단종은 여름 홍수로 청령포에 머물지 못하고

영월부의 객사 광풍헌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다

그해 10월 24일 세조가 보낸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사사된 비운의 임금입니다..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

나룻배를 타러 가는데...

저 청령포로 들어가면

그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머릿속에는 단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어린 나이에 청령포로 유배 된 단종은 늘 슬펐을 거란 생각...

자신을 낳고 3일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집현전 학자들에게 어린단종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요절한 아버지 문종,

누나 경혜공주와의 각별한 남매 사랑..

왕위 회복을 위해 충정을 바친 사육신의 죽음 등..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의 그리움도,

그를 슬프게 하는 이유였을 겁니다.

 

서강 건너로 보이는 청령포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마치 섬 같았습니다

슬픈 역사를 지닌 서강변에 서서

청령포를 바라보는데

그 풍경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요...

그 어린 단종의 여린마음과 눈물이 떠오르고...

말없이 흐르는 저 강물은 너무나 평온 한데...

나는 왠지 강원도 영월 하면

첩첩산중이 먼저 떠오른 지 모르겠습니다

청령포로 가는 길이 그런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 오래전에 이곳은 더 첩첩산중이 아니었을까

그 어린 단종을 이곳에 가두고

자신의 탐욕에 의해 혈연도 없었던 세조의 인간성까지 잃게 한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싶어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는 편안하게 나룻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습니다..

단종은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지금 맘껏 드나들 수 있는데 말이죠...

수시로 여행자가 오면 실어 나르더군요...

나룻배 삯은 200원이며

청령포 입장료는 2,000원입니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 강물을 바라보니 어찌나 맑던지요..

나룻배를 내리면

온통 자갈이 깔린 강가를 걸어가야 청령포 입구가 보입니다

그 수많은 돌을 밟고 지나는 여행자에게

청령포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줍니다

청령포를 향해 자갈을 밟고 지나면서

문득 올려다본 저 소나무 숲이..

마치 어린 단종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그리하여 조금은 위안이 되는듯한....

청령포 입구에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 숲에 보이는 어소,

저곳이 단종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의 이곳 소나무는 보시는 것처럼

어소를 향해 기울어 있습니다..

섬 같은 이곳에 갇힌 어린 폐왕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불안한 마음과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에 대한 그리움,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청령포는 오랜 역사가 흐른 만큼

소나무 숲이 울창하답니다

청령포로 들어서면 거대한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어린 단종의 슬픈 이야기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이 숙연하고 차분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이곳 청렴포에서는 사진을 많이 담아왔습니다.

그냥 천천히 걸으며 만나본 그곳 풍경은

어디를 둘러봐도 마음이 애잔해지는 ...

사진이라도 많이 담아가자 싶어... 담아왔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지금 청령포에는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우리가 쉽게 가볼 수 있고

느껴볼 수 있는 곳이지만

돌아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짠하여 울컥하더군요.

비가 와서 인지 더 마음 차분한 느낌이 들고

비가 내리는 분위기가 조성하는 슬프지 않은 사람도

괜스레 슬퍼지는데...

이곳에서 어린 단종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며

돌아보는 시간은 가슴이 계속 먹먹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 보여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수많은 소나무가 유일한 어린 단종의 친구였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더 마음이 갔습니다..

 

 

 

 

 

 

 

 

 

 

 

 

 

 

 

 

 

 

 

 

 

 

 

 

 

 

 

어소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들어서는 입구를 바라보니 또 짠한 마음이 생기고

그 왕권이 탐이 나서

어린 단종을 여기에 가두고 편히 발 뻗고 잠든 그 인간성은 무엇이었을까?

궁궐에서 생활하다 이곳에 유배되어 조그만 어소 한 채와 초가 행랑채가 전부인

이곳에서 목숨의 위태로움을 매일 느끼며

지냈을 텐데...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이런 담장밑 장독대도 쓸쓸해 보이고....

어린 단종은 이곳에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상한 할아버지 세종에 대한 기억...

유난히 단종을 예뻐하여 등에 업어주셨던 할아버지..

인자한 아버지 문종의 죽음..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눈물도,,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이런 생각을 할 뿐..

단종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수양대군(세조)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이곳 영월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서슬 퍼런 숙부 수양대군의 기세는

단종이 넘보기에 너무 높고 강하여

어린 단종을 체념하게 하였을 테니까요..

어소가 있는 마당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소를 빼고 주변은 소나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명승지라고 찾고 있는 곳은

슬픈 역사가 담겨있지만

그 풍경만큼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이곳 단종어소 주변의 소나무들은 모두 단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어소를 둘러싸고 있답니다

저기 소나무는 아예 담을 넘어 단종어소를 향해 엎드려 있는 모습이

마음을 더 애잔하게 하였습니다

불쌍한 어린 임금에게 충정을 다하는 사육신의 한이 깃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죠..

단종어소:

단종 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답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랍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어린 단종이 밀랍인형으로 앉아 있는데

왜 가슴이 그렇게 울렁이던지...

그 어린 꽃다운 나이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저버린

단종이 저기 앉아 있다 싶어..

마음이 정말 울컥해지더군요...

어소를 한 바퀴 돌아보며 사진에 담아보고..

밀랍인형으로 앉아 있는 어린 단종을

만나 보고 왔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글이 눈에 들어올까요?

무슨 마음을 먹어야 안정이 되었을까요?

그때 이곳 섬 같은 곳에 갇혀

어린 단종의 심경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습니다...

밀랍인형이지만 바라보니

정말 마음 애잔해지던...

내 아이 17살에 어떤 모습이었나? 생각해보고

단종을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이 교차하고...

슬퍼지더군요...

편액으로 걸려있던 슬픔이 깃든 단종의 마음이 담긴 시가 걸려있더군요

가슴 짠함을 느껴보고....

어린 단종의 마음에 저런 느낌이 들었다는데.....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아래 안내문을 담아왔습니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어린 단종도 걸었으리라..

누구나 가보신 분은 느끼시겠지만

계속 단종의 안타까운 역사가 떠올라

바라보는 것 모두가 기쁘지는 않더라고요...

여기 관음송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답니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마음이 더 애잔하고...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답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적혀있더군요...


저 관음송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 하여

이름도 관음송이라니...

참... 생각할 수록 마음이 아픕니다...

 

 

 

 

 

 

 

 

 

관음송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망향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곳을 단종이 오르내리며

얼마나 가슴이 쓰렸을까.....

 

 

 

 

한양에 두고 온 왕후를 그리는 마음..

부부의 연을 맺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이별을 한 단종은

이곳을 매일 올라와 한양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했을 단종..

보고 싶은 마음을 돌을 쌓으며 달랬다고 생각하니 눈물 나더군요.

망향탑의 저 돌멩이 하나하나에

단종의 애절한 그리움이다 싶어

정말 애잔하고 눈앞이 흐려지는 .....

망향탑에서 바라보는 절벽 아래 강물은 유유히 흐릅니다

배를 타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는 곳에 갇혀버린

단종의 마음을 엿보는 곳 같아

더없이 슬퍼지던....

 

 

 

 

 

 

망향탑을 걸어 내려오며

안쓰러움에 울컥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감춰주기라도 하듯 비가 내렸다...

 

 

 

풍경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노산대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바위가 있는 곳이 노산대 랍니다..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 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어서

노산대라 부르고 있답니다..

어린 단종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고

그리운 아내.

그리운 누나 경혜공주를 부르며...

얼마나 애틋하였을까요...

아무리 이곳에서 한양 쪽을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단종의 심정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바라보니

첩첩산중과 유일하게 흐르는 강물이 전부더군요.

그러나.. 단종은 다르게 보였을 겁니다..

제가보는 여유로움과는 전혀다른.....

노산대를 내려와 다시 소나무 숲을 걸어봅니다

비가 내렸지만

걷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그 슬픈 역사 때문에....

금표비가 서있더군요...

아래 안내문 읽어보시면 도움 되실겁니다...

 

 

 

 

 

 

 

 

 

소나무 숲을 계속 걸어보았습니다...

문득 비가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소나무...

아픈 역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여

덮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청령포를 돌아보고

가슴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먹먹하고 슬픔이 고여있음을 느끼지만..

우리가 지금 바라본 역사보다

더 처참하고 아팠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덥고 지루한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에

다녀온 청령포 여행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힘든 일이 와도

저기 갇혀 의지를 접어버린 단종보다 낫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더욱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였습니다.

누가 이야기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피어 자유롭게 자라는 풀꽃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자유를 갈망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또다시 비가 후둑 거립니다..

단종의 슬픈 눈물 같은 비가 내려

청령포를 걸어 나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멀리 떠나는 어미 마음처럼.....

저 수많은 돌은 알고 있을까?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보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살아가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이곳 청령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느낌은

나도 소중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

그 충절을 다시 보게되고..

단종의 애달픈 그리움을 알게되고..

그래서 슬픔이 가시지 않은...느낌

우리가 아프지 않고

투명하고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청령포를 찾는 많은 여행자는 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지 싶습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는 흘러갔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그래서 훗날 후세가 바라봐도 아름답고 멋진 선조였다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나는 가끔 여행을 하면서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요즘 어느 드라마를 보면 다른 세상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 것처럼

나도 청령포에서는 다른 세상에 내가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청령포를 돌아보고 나와서

매표소 위에 전망대를 만들고 있더군요..

그곳에 잠시 올라가 다시 청령포를 바라보고

마음으로 어린 단종과 함께한 시간이

애잔하고 안쓰러웠지만

우리가 살면서 늘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에도 단종의 이야기가 있는

장릉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포스팅이 조금 늦었습니다

출근해서 잠시 정리하여 올려놓습니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군요...

점심 맛나게 드시길 바랍니다..

전 올림픽 방송을 보느라 요즘 밤을 새는거 같아요 ㅎ

제가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ㅎㅎ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시원하고 건강한 오후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