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고궁을 찾아서

영주 부석사의 이런 풍경을 내 생에 몇 번이나 만나 볼 수 있을까...

까까마까 2012. 10. 26. 20:50

 

펌한 글과 설명이 너무 가슴에 오는 자료에 기막힌 언더그라운드 음악가

최지연의 노래를 붙여 올립니다.

 

 

 

 

 

 

영주 부석사의 이런 풍경을 내 생에 몇 번이나 만나 볼 수 있을까...

 

 

 

 

계속 내리는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봉화를 들러 영주로 향하는 길에도 어김없이 비는 내리고...

영주 부석사를 들려보기로 하였는데

어쩌면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가장 큰비를 만났던 곳이

이곳 영주 부석사에서였다.

정말 쏟아 부어대는 듯한 장대비 속에서

바라본 부석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듯하여

색다른 경험이었고..

다녀와 생각하니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부석사..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다녀온 부석사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날씨는 아니었다는

나만의 특별한 여행이었다.

내 생에 이런 풍경을 몇 번이나 만나 볼 수 있을까.....

-내 영혼이 아름다운 날에-

오늘은 영주 부석사를 소개합니다.

저는 부석사 일주문에서 무량수전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계단과 축대를 오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속세를 벗어나는 듯한

신선한 감동도 맛보게 되는듯하였습니다.

부석사가 정원처럼 끌어안고 있는 소백산맥의 장대한 풍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좋아

많은 사람이 부석사로 발길을 향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은 저와 같이 비가 내리는 부석사를 함께 거닐어 보시길 바랍니다.

맑은 날보다 색다른 느낌이 드셨으면 좋겠네요..

영주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흥교사라 불리웠다. 1916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 (1358)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유래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경내 설명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석조기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조사당(국보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조사당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소상이다.

무량수전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출처-

비는 끊임없이 내렸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절을 돌아보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부석사 입구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스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이 보여 담아보고...

부석사에서 들려오는 북소리...

그 소리를 들으러 일부러 찾는 이도 있다고 하더군요

해 질 무렵 들을 수 있는 북소리...

갑자기 제 귀에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환청처럼...

나는 북이 있는 범종각으로 올라섰습니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눈감고 들어봅니다.

환청이어도 좋았고

내 맘대로 들어보는 북소리였습니다...

언제고 다시 찾는다면

가을날 낙엽이 흩날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들려오는 북소리를 찾아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북을 치는 채가 범종각 한쪽에 놓여있더군요..

스님의 손때가 묻은 북채....

왜 가슴이 아련해지던지.....

오랫동안 북을 치는 스님의 마음이 엿보였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은 계단과 석축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크고 긴 석축을 쌓아올린 선조의 지혜를 보게 되더군요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바라보는 내내 마음도 편안해 짐을 느끼게 되더군요...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있는 풍경이

산이 에워싸고..그 품속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양루:

부석사의 주불전(主佛殿)인 무량수전의 바로 앞에 세운 2층 누각(樓閣) 건물로서,

2단으로 쌓은 높고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는데,

앞쪽 2줄의 기둥은 아랫기단 위 자연석 주춧돌에 놓여 있고, 뒷줄의 짧은 기둥은 윗기단에 놓이게 하였다.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한 일종의 누문(樓門)이다.

누 위의 기둥 배열은 아래층과 똑같이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기둥은 층단주(層斷柱)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위 아래층 모두 기둥 사이에 벽체를 가설하지 않고 개방하였다.

가구(架構)는 기둥 윗몸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두르고 그 위에 공포(?包)를 짜올렸다.

공포는 안팎으로 각각 삼출목, 이출목의 포작(包作)으로 짜맞추었는데,

외부의 살미첨차는 모두 쇠서[牛舌]형이고, 내부의 살미첨차는 다 메뚜기머리모양을 택하고 있다.

첨차의 조각 수법이 견실하여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첨차 끝부분을 호형(弧形)으로 처리하지 않고 경사지게 끊어낸 모양으로 다듬어서

부석사의 고려시대 건물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출처-

저 안양루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고 합니다.

안양루 밑 계단을 오르자 만나게 되는

고색창연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사찰,

무량수전과 석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비가 내리는데도 어찌나 눈부시던지요...

어느 미술사학자가 말했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한

예찬을 소개하자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직선의 목재로 빚은 곡선의 미학이며

밖에는 안허리곡(曲) 배흘림 귀솟음등

절묘한 건축으로 착시방지를 하였고

안에는 불상 왼쪽 끝 배치로 공간확보로 장엄미를 더해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 년을 살아 숨 쉬는 균형과 절제가 깃든 건물이다" 라고 말했답니다.

저도 바라보면서 공감하게 되더군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혜곡 최순우 선생의 유작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이곳 무량수전앞에 서면 배흘림기둥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잠시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전통건축과 공예 」편 중에서 "부석사 무량수전" 내용입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중략....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

저도 무량수전 앞에 서서

비는 내리지만 배흘림기둥을 바라보니

마치 내가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이곳 무량수전에서 예능 프로 1박 2일이 방영되면서

출연자들이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죠..

-사진 KBS 출처-

멀리서 클로즈업해본 불상...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외부에 그치지 않는답니다

보통의 불전은 내부 정면에 불상이 놓여있지만

무량수전의 불상은 왼쪽 끝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특이하게 배치한 까닭이 있답니다

정면에 배치하면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공간감각을 확보할 수 없기에

왼쪽 끝에 불상을 배치하여 먼 거리 공간감각을 만들어 낸 것이랍니다

또한 그 불상 앞에 늘어선 기둥과 겹쳐짐으로써 보통 불전에서 느낄 수 없는

장엄함까지 더해주는...

고려인의 탁월한 미적 감각이 깃들어 있답니다.

무량수전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눈에 들어와 담았는데

무슨 동물 모양 같다는....

기도하는 분들의 간절함이 보여 담아보고....

어느 쪽에서 바라봐도 아름다운 무량수전...

많은 이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사찰 뜰에는 상사화도 비에 젖고...

바라보는 나도 젖어보고....

기도를 마치고 나온 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한참을 바라보고..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 마음이 보였습니다....

무량수전 뒤쪽에 작은 법당은 저 홀로 비를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듯하여 담아보고....

나는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빗소리와 풍경소리가 어울려 들려주는

청아하고 가냘프게 들려오던 풍경소리는...

아픈 마음 같은....슬픈곡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왠지 마음이 그랬습니다....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 사이를 걷는 여행객의 모습이

한 편의 가을 詩를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을 사랑 /윤영초

지난 계절을 덮어 두고
보낸 시간을 묻어 두고
다시 돌아보며
지금 느낌을 모두 모으면
어떤 서러움이 밀려올까


그리움이 공존하는 가을날
명치끝이 아리도록 차오르는
이런 비루[悲淚]가 그리움일까


오래된 기억이
내 것이 아닌 듯
남의 옷을 입은듯한 어설픔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어느 날 그 버림이
담담한 얼굴로 후회가 남아도
지금 버린 것은 흔적
지나가는 바람 같은 쉬운 흔적이리라


접어둔다고 잊힌 건 아니겠지만
돌아보면 가슴이 시려
오랜 기억을 닫아 둬야지
지금 열린 기억으로 충분한 사랑
너와 가을 사랑 하나면 된다.

비가 내려도 아름다운 석탑의 자태는 잘 보였습니다...

무량수전 마당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석등..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

부석사라 이름 하게 된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떠 있답니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자세하게 떠있는 걸 확인하지 못하고 사진에만 담아왔네요...

부석사 삼성각 앞을 지나는데

간절히 기도하는 어느 여인의 뒷모습과

초연하게 타오르는 촛불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워 담아보고....

삼성각 옆으로 난 길을 걸어보고..

낮은 담과 어울린 길...

비가 내려서 더욱 운치를 느끼게 되던 길....

어느 여인이 기도를 마치고 절을 나서는 뒷모습을 따라 내려오며

부석사에 오길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보는 마음도 알게 되고

북소리도 가슴에 담아보는 시간이어서 좋았고...

비가 내려서 인지

더 차분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치지 않는 비는 종일 저를 따라다니더군요...

그래도 동행이 있어서 행복했던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