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험준한 차마고도-호도협곡-2부- 옥룡설산
2부
아주 따끈따끈한 금방나온 군밤을 3회에 걸쳐 드리겠습니다
지난 달에 찍은 유명한 신문기자 작품이라 이틀을 졸라서 겨우겨우
허락받고 올리는 직품이라 저적권이 있습니다.
물론 음악은 제가 밑에 특이한 나시족이 즐겨 부르는 니시고악 이라는 동영상을 올렸으니
다 보신 후에 재생해서 다시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징 험준한 차마고도
호도협곡
황토빛 금사강 물결이 회오리치고 있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운남역관에서 출발한 차마고도는 헙준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호도협곡을 통과한다.
이 험난한 낭떠러지 길을 지나야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갈 수 있다.
아찔한 협곡길이지만 티베트로 가야만 하는 마방들은 생명을 걸고 협곡을 건넜다.
굽이치는 황토빛 금사강과 함께 날카로운 협곡의 모습은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호랑이가 건너다녔다고 호도협이라 불린 협곡은 호랑이가 건널만큼 강폭이 좁지 않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옥룡설산과 합바설산 사이를 통과하는 협곡에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장강(양쯔강)이 흐른다. 장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강이기도하다.
호도협곡을 지나는 장강을 금사강이라 부르는데, 황토빛 강물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16km에 달하는 협곡을 굽이쳐 흐른다. 급류가 심한 협곡에서는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귀를 멍하게 만든다.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170m인만큼 급류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굽이친다.
실제의 차마고도 옛길 아래 새로 만든 길에는 인력거가 운행돼
노약자도 협곡과 장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차마고도는 대략 8개의 길이 있다. 윈난성에서 시작되는 차마고도 호도협 구간은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릴만큼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길이다.
마방의 후예들은 관광객들에게 말을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산증이 없는 사람들은 직접 걸어서 호도협 구간을 통과한다.
협곡의 계단식 논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쉼터인 객잔도 나온다.
중도객잔은 세계 제일의 풍경을 자랑하는 화장실도 있다.
스물여덟 개의 협곡이 이어져 '28밴드'라 불리는 호도협 마지막 구비는 2,670m의 가파른 길이다.
마방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걷던 길을 걸으면 당시 '차'와 '말'의 가치에 대한 상념에 젖어든다.
8월 차마고도 호도협
차마고도 vol.4
차마고도에 등장한 손오공
운산평에서 바라본 옥룡설산이 구름에 갇혀 있다.
윈난성 운남역관에서 시작한 차마고도 탐방은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은 만년설산인 옥룡설산에 이르렀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이자 북반구에서 제일 남단에 있는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으며
해발 5,596미터에 달한다. 은빛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해서 옥룡설산이란 불린다.
운산평을 가던 중 소들이 길을 막고 있다.
옥룡설산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벌을 받아 갇혀 있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나시족도 옥룡설산을 거룩한 성산으로 여기며 등반을 금기시하고 있다.
빼어난 풍광의 옥룡설산은 중국 정부가 국가풍경구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한다.
국가풍경구는 한국의 국립공원같은 개념으로 옥룡설산은 중국 국가풍경구 최상등급은 ‘5A’에 해당한다.
실제로 옥룡설산 정상은 사람의 정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등반가라도 옥룡설산을 정복할 수 없었다.
쉽게 부숴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기 때문이다.
운산평 사원 앞에서 야크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차와 말을 교역하던 마방들은 더 이상 옥룡설산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마방의 후예들이 차와 말 대신 여행자들을 말로 실어 나르며 생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옥룡설산은 차마고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도협곡 중 일부 구간이다.
호도협곡은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레일과
페루 맞추픽추의 잉카트레일과 함께 세계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정상 정복이 금지된 옥룡설산은
중국의 위륭쉐산 주식회사와 한국의 한 여행사가 트래킹 코스로 개발했다.
해발 4천600m의 설련대협곡 구간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다.
운산평 사원의 승려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옥룡설산 구간 차마고도에서는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해발고도 3,300미터의 운산평은
일반인들도 쉽게 옥룡설산을 감상할 수 있는 고원지대다.
나시족, 이족, 장족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옥룡설산 주변에 살고 있다.
한때 호전적인 기질의 이족들과 장족들이 큰 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운산평으로 유입돼는 관광객이 많아지자 그 이권을 서로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다.
더 이상 유목민이거나 마방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비애다.
옥룡설산 아랫 마을의 천진난만한 어린이
차마고도 옥룡설산
차마고도의 시장통에 머물다
차마고도 vol.3.- 사계진
옥룡설산 야외무대에서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 공연.
현지 주민들이 옛 마방들을 연기하고 있다.
“신농(神農)이 수백가지 풀을 먹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었다.
그 때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다. 신농이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졌다.”
B.C 2500년경에 존재했다는 중국 농업의 신 신농(神農).
중국 사람들은 신농의 이야기를 꺼내들고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 주장한다.
차를 의미하는 말은 서양에서는 'tea', 동양에서는 말그대로 'cha'라고 부른다.
'tea'와 'cha'는 모두 중국 방언이다. 굳이 증명할 수 없는 신농의 존재를 논하지 않더라도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사계진 동쪽에 삼중 누각으로 세워진 고희대.
유목민 티베트인들의 주식은 야크의 젖과 고기다.
먹을거리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채소류 섭취도 어렵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를 전해준 것은 당나라 문성공주라는 견해가 있다.
7세기 경 '손챈감포'는 칭짱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했다.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통일 왕국을 탄생시킨 손챈캄포는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위해
당 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는 불상과 함께 가져온 것이 바로 차였다.
티베트인들은 차에 빠져들었다.
사계진 상점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물건을 구입하는 현지인들.
윈난성 지엔촨현의 남부에 자리한 사계진은 북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중원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마방들이 이곳에 머물자 시장통이 번성했다.
남과 북의 물품들이 모이자 사계진은 경제와 문화가 번성하게 됐다.
사계진은 차마고도 옛 장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관광지 분위기기 너무 짙은 리장과 달리
사계진 시장통에서는 현재도 여러 소수민족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있다.
백족이 살던 민가의 전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차마고도의 오성급 마방'이라 불리는
어우양(歐陽)씨 집안의 가옥도 잘 보존돼 있다.
사계진 전통 가옥에서 이발을 마친 이발사가 붓으로 머리카락을 떨어내고 있다.
사계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를 지나는 아낙네가 막대 사탕을 들고 있다.
장을 본 아낙네들이 남에서 북으로 가는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채문(東寨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불교사원 흥교사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흥교사는 명나라 영락제(1415년) 때 만들어졌고,
20여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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