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전설이 담겨진화진포, 이승만별장과 이화장
이승만 별장
요줌같이 쌀쌀한 겨울날엔 동해로 떠나보자,
겨울에는 웬지 모루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 할때가 있다,
가고싶고 찾고싶은 곳은 많으나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니 갈만한곳도 못가는겨울철,,,
고성지역은 갈만한 곳이 너무나 많은 지역으로 감성적인 바다와 역사의 흔적들이
그곳에 모두 있었다,
고성 화진포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
우리나라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관광지가 동해을 택한다,
새해을 맞이하여 해돋이 보러,여름엔 시원한 해수욕장을 찾아,겨울엔 겨울 바다가 생각나서,
많은 이유로 찾는곳이 동해바다, 올해도 내년에도 또다시 찾는곳이 동해바다 이다,
특히 고성 화진포는 서울에서 3시간40여 분이면 도착하는 편리한 접근성과 함께 해수욕장과 호수가
어우러진 곳에는 오랫동안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좋은곳 으로 곽광을 받아 왔다,
화진포 호수을 중심으로 별장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이승만 별장을 소개한다,
간혹 화진포 호수을 찾는 분들이라면 한번쭘 다녀간 이승만 별장,
바다가 춤추고 해송이 우거진 화진포는 밑물과 바닷물이 함께 할수있는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라 생각 했다,
20년전 까지만 하여도 일반인들은 특별한 경우에만 출입하던 이승만 별장은
이제는 온 국민들에게 개방되여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수 있게 되였다,
화진포 주변으론 그옛날 내노라 하는 분들의 별장들이 세개나 있다,
이승만별장, 김일성별장, 이기붕별장,들이다,
그만큼 화진포는 경관이 수려하다 볼수 있는곳이다,
이승만 별장은 옛모습으로 남아있던 건물이 페허에 가까와진 건물을 1999년에 군과고성군에서
복원사업으로 완공하여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모습이 였다,
건물앞에는 데스크을 설치하고 건물벽에는 돌을 사용한 곳에는 현대식 샷시로
앞 유리로 마감 되 있었다,
이승만 별장 앞으로 펼처진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호수을 경계로 6.25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던 김일성 별장이 자리한 곳이 지척이다,
이승만별장 과 김일성별장 화진포 호수을 경계로 들어설 만큼 풍경이 좋은 곳이다,
건물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건물안쪽에는 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계신다,
관광지마다 해설사들이 상주하고 있어 편안하고 알락한 관광을 할수 있어 좋왔다,
별장이라 하면 우아하고 멋진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데 의외로 단촐하다,
거실에는 쇼파와 작은 탁자가 눈에 보였다,쇼파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함깨
한복을 즐겨입고 계시던 프란체스카 여사을 볼수있었다,
오스트리아 사업가의 딸로 태여나 33세때 어머니와 여행중에 제네바에서 58세의 이승만을 만나게되
사랑에 빠저 여느 한국 여성처럼 헌신적인 아내이다,
탁자위에 측음기가 돌고있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거실벽면 한쪽에는 당시을 재조명 할수있는 음향기기들이 있었다,
위외로 별장은 단촐했다,
거실과 침실 그리고 직무실로 구분 되 있었다,
우아하지도 안으면서 조용한 곳으로 보여진다,
별장 옆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계단은 나무로 되여있어 올라가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곳이였다,
오래된 노송들 가지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있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다,
계단위에는 건물이 한채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다,
별장에있던 유품들과 이화장 등지에서 기증한 역사적인 자료들과 가족들이 기증한
유품들이 전시된 기념관은 2007년에 개관 된 곳이다,
전시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육성이 울러퍼진다,
한시대의 독립운동을 하면서 건국이래 초대대통령 일대기을
한눈에 볼수 있는곳이다,
주위풍경은 노송들이 있어 아름다웠다,
매표소 입구의 모습은 화진포 역사 안보 전시관 이라 되여 있었다,
아래로 넒은 공원을 따라 호수 옆으로는 화진포 설화의 전설이 있는 화진포 호수가 펼처진다,
이승만 별장 아래 호수가에는 여인내의 동상이 호수을 향해 서있었다.
여인의 모습은 화진포 호수와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하게 되였다,
여인내의 전설을 알아보자,,,,,
화진포 설화 이야기,,,,,,,,
옛날 이 마을에 "이화진"이란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했다,
어느날 스님이 시주을 왔는데 곡식대신 소똥을 퍼주었고,
스님은 소똥을 들고 말없이 돌아서 나가게 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시아버지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을 받으며
"나을 따라오면서 무순소리가 나더라도 절대로 뒤을 돌아 보지 말라"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을 돌아보게 되였다,
돌아보니 이화진이 살던 집과논밭이 모두 물에잠겨 호수가 되여 있었다,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 돌이 되여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정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 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
"화진포"는 이화진의 이름 "화진"에서 유래되였다,
지금도 청청한 화진포 중앙에 잠겨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춘다 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며느리의 전설이 전해지는 화진포,,,설화
이화진의 욕심이 화을 불러온 곳이라 전해지는 화진포,,
아름다운 풍경속 이승만 별장을 둘러보게 되였다,
이승만 별장에서,,,,,,,,,
청간정
정자 안쪽에는 많은 글귀들이 걸려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친필도 있었고............
이화장 [梨花莊]은 고 이승만박사의 사택으로 한국방송대학뒤
낙산공원가는길을 가다 보면 밖에서 보면 높은 담장에 나무들이 우거져있는 집을 하나 볼수있다.
현재는 서울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단체로 관람 예약을 해야지만 들어가볼수 있다.
유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관으로 되어있다.
일부출처=시골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