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일생
제일 밑에있는 두번째 동영상은 가장좋은 것을 모아논 거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일생*****
Lifetime of Elizabeth Taylor
현존하는 최고의 미녀로 불리던 미국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국 CNN 등 외신들은 23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지병인 심부전증으로 LA에서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1943년 영화 <귀로(There's one Born Every Minute)>로 데뷔했으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로 제 3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완벽한 미모로 세기를 풍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모만큼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화제를 낳았다. 일생 동안 무려 8번의 결혼을 한 테일러는 동료 배우 리처드 버튼과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뇌종양 제거 수술, 2009년 심장판막 수술을 받으며 오랜 투병 생활을 해온 테일러는 <자이언트>와 <클레오파트라> 등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고인이 된 테일러의 유가족으로는 네 명의 자녀와 열 명의 손자, 네 명의 증손자가 있다.
* 아래의 글은 외지에서 찾아낸 것.
‘미인 배우’의 대명사 엘리자베스(애칭 리즈) 테일러는 할리우드에서 자라난 전통적인 스타이면서 전형적인 존재였다. 그곳에서 다져진 미모에 저널리즘이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스캔들은 그녀를 팬들이 잊을 만하면 다시금 화제의 대상이 되게 했다.
1932년생인 리즈는 1942년부터 아역배우로 은막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1943년에 출연한 <귀로>에서 그녀는 이미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해 이후 그녀의 삶의 무대는 병으로 은막을 떠나기 전까지는 촬영장이었다. 활동 기간이 1942년부터 2001년 <디즈 올드 브로드>까지 이어졌으니 배우로서의 생명력도 엄청 길었다.
스캔들이 많은 점도 스타로서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그것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5세 때 <여우 무용전>에서 공연한 피터 로포드와 염문을 뿌렸을 만큼 조숙했던 그녀는 결혼 8번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운다.
몇 사람과 더 사랑의 편력을 한 후에 18세 나이에 첫 번째 결혼을 한 사람이 호텔 재벌의 아들 콘래드 힐튼 2세였다. 6개월 만에 금방 사랑이 식었는지 신진 감독이었던 스탠리 도넨과 가출 소동을 일으켰지만 두 번째 결혼은 20년 연상인 마이클 와일딩이었다. 두 자녀를 두었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1956년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와의 세 번째 결혼식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행해졌다. 성실한 남편을 성에 안 찬다고 뻥 차버린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손가락질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였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영화계 은퇴 의사를 비치던 그녀는 2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고 만다.
비탄에 잠긴 리즈를 위로해준 가수 에디 피셔와 1959년에 결혼했는데 이번에는 더 큰 비난이 쏟아진다. 리즈와 제일 친한 친구였던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 에디 피셔를 이혼하게 하여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비난 여론에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평생 혼자자란 말이야!” 라며 대응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에디 피셔는 알고 보니 건달. 파티에 돈을 흥청망청 써 두 사람은 결국 별거에 들어간다.
1962년에 <클레오파트라>에서 함께 공연하면서 만난 리처드 버튼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리즈. 친구 시빌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리즈와 리처드는 각자 엄청난 위자료를 지불하면서까지 1964년에 다섯 번째 결혼에 골인한다. 리처드 버튼이 선물한 보석이 워낙 고가여서 더욱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결혼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도 안 되는 발표와 함께 리즈는 결혼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했던 리처드와도 이혼한다.
불과 두 달 뒤인 1976년 12월에 리즈는 상원의원 존 위너와 또 결혼한다. 이혼이 버릇이 된 탓인지 1년도 안 되어 이혼한다. 상원의원 부인으로서 행사해야 하는 ‘점잖음’이 힘겨웠던 것일까?
1975년 리즈는 리처드 버튼과 재결합한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교회 같은 데서 조용하게 했을 텐데 부끄러움이 없는 두 사람은 이 일곱 번째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한다. 이번에는 더 비싼 보석을 선물하는 리처드 버튼. 보석으로 환심을 사려 했으니 오래 갈 리가 없다.
꽤 오래 혼자 살던 리즈는 1991년, 60세의 나이로 공사장 노동자 래리 포텐스키와 여덟 번째 결혼을 해 세계를 경악시키더니 1996년 여덟 번째 이혼을 해 전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금 혀를 차게 만든다.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는 늙어가는 그녀를 괴롭히는 최고의 적수였다. 늙어감이 싫어 30번의 크고 작은 성형수술을 했다. 게다가 수면제 과다 복용, 극심한 다이어트 스트레스와 약물 중독, 노인성 비만으로 예전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급격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런 사생활은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치고, 배우로서의 그녀를 비웃을 수는 없다.
제17회(1960)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 <지난 여름 갑자기> 제33회(1961)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 <버터필드 8> 제31회(1966) 뉴욕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제39회(1967)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제20회(1967) 영국아카데미 여우주연상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제42회(1985) 골든글로브 세실 B. 데밀 상
1951년 작 <젊은이의 양지>라는 작품이 있다. 부호 집 딸 역이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분장한 가난한 청년이 셜리 윈터스가 분장한 공장 여직공에게 임신을 시키지만 부잣집 딸, 활짝 피어난 꽃송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가난한 청년은 외면할 수 없었다. 몽고메리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을 보고는 전 애인을 살해하고서라도 그녀를 품고 싶다고 염원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1956년 작 <자이언트>에서의 아름다움은 또 어떠했는가. 제임스 딘이 분장한 비뚤어진 성격의 젊은 목동도 남의 아내가 되고 만 그녀에 대한 연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석유 매장지를 우연히 발견하여 벼락부자가 된 후에도 리즈가 분장한 이 여인의 사랑을 얻지 못함으로써 마음의 공허함을 메울 길이 없었다.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그만큼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매력이 그녀에겐 있었지만, 그것은 선천적으로 그녀에게 갖추어져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할리우드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인가?
<자이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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