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천채의 변화-은하수

푸른하늘 은하수-별 헤는 밤

까까마까 2014. 9. 6. 13:18

 


 도심에서 보기힘든 별과 은하수를 찍다보니

자연히 "윤동주" 시인의 싯구들이 머리에 맴돌아

좀 장황하게 편집이 됬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거의 모든 시를 넣어서 엮었습니다.

 

어렵게 고생헤서 찍은 사진이라 쉽게 다루고싶질 않아

좀 무게를 느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목을 정하기 어렵고 어수선하게 펼칠 수가 없어서

"별 헤는 밤"으로  정하고 편집을 해봅니다.

은하수를 찍는 것은 추위에 떨면서 찍는 고행이 뒤따르는 작업으로

시간을 갖고 인내를 배우며 하는 작업이기에

뒤로 갈수록 MILKY WAY가 엷어지는 사진을 보실 수가 있을겁니다.

밑으로 내려갈 수록 엷을 사진들은 보정하지 않은채로 올립니다.

밤 10시에 2250M 높이의 산에서 칠흑같은 밤에 얻어낸 사진이라

심한 바람때문에 삼각대의 흔들림이 심한 것도 있습니다.

사진기에서 얻어낸 같은 사진의 다른 색들도 그대로 올립니다.

밑에서 들리는 음악과 낭송은 밤의 은하수를 배경으로 넣은

동영상이 있어 다 보신 후엔 재생헤서 볼만합니다.

이번 기회에 윤동주 시인의 거의 모든 시를 접해보면 어떨까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1917-1945)의 시 Heaven, Wind, Star and Poem

 





그의 시는 소년다운 순결한 의식과

기독교적 참회의 정신을 시의식의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1948년 유고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모두 유서와 같습니다.
지독한 어둠 바람에 흔들리고 깎이고 쫓기며
목숨을 위협을 느끼며 쓴 시입니다.



그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불립니다.

1968년 시비가 모교 연세대학교 안에 세워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선비와도 같은 성품을 지녔고,

민족 문화를 지킴으로써

일제에 저항했던 윤동주의 이상과 희생정신을

이 시집 전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학교를 졸업하자 곧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 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갔습니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

정병욱에게 자필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한 부 주었는데,

그것이 정병욱의 집에 보관되어 오다,

광복 후 몇 편의 유고시를 보태어

시집으로 간행한 것입니다.(김성주 주) 





 

 



 

별 헤는 밤



창씨개명을 하고 유학 서류를 접수한 다음

윤동주는 자주 다니던 언덕에 올라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옛날에는 저 별 아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똑같은 별 아래서 모든 것,

히 자신의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자마저 빼앗기고 말았다는 모욕감에 젖어

이 시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김성수 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것은 윤동주의 <서시(序詩)>이다.

아마 이 시만큼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도 드물 것이다.

짧고 쉬우면서도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시이기 때문이다.


 한창 꿈 많고 낭만이 가득한 청소년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마치 자신의 마음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나도 이렇게 떳떳하고 순수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윤동주의 시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순수한 반면

어딘가 퍽 쓸쓸하고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윤동주가 일제 식민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무제(서시)



 

무제(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또 다른 고향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원래,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기념으로 출판하려고 했다가

시의 내용이 일제에 저항하는 것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8년,

해방 이후에 그의 친지들이 출판한 유고 시집이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돌아와 보는 밤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이제 창문(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는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눈 감고 간다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체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십자가


 

십자가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새벽이 올 때까지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실(寢室)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 게외다.


 

 



또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啓示)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罪)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태초의 아침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빠알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프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꽃과 함께.






눈 오는 지도



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무서운 시간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병원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 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 곳에 찾아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소년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슬픈 족속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새로운 길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자화상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의 호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담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 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간판 없는 거리

 


간판 없는 거리


 

정거장 플랫포옴에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붙는 문자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윤동주 님의 시, ‘’또 다른 고향’’ 해석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나는 이웃 어른들과 친구들을 찾아가 인사를 들였다.
그런데 나를 반기지 않았고, 오히려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고향에서 오래 전에 잊혀진, ‘’백골’’이 되었다.
나는 어둔 방에 누워 백골이 된 내 자신을 생각 해본다.







▶<자화상>(1939) : 자아의 내적 갈등을 표출한 시.


▶<서시>(1941) :

겸손한 의지와 신념으로 민족에 향한 광명,

불굴의 지조를 노래한, 시집 서두의 시


▶<별 헤는 밤>(1941) :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함.

 

▶<또 다른 고향>(1941) : 피압박 민족의 비애를 노래함.

 

▶<참회록42>(1942) : 욕된 삶의 참회와 광복에의 염원을 노래함.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민족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윤동주는

일제와 맞서 싸워 민족의 독립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듯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이 많다. 그

렇다고 시에서 노골적으로 ‘일제와 맞서 싸우자!’라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찾아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가 되어 쫓겨서 일본을 향해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 이라며, 유학을 가셨다.







 윤동주는 기독교 장로인 조부의 영향을 받고 성장,

평양 숭실 중학을 다니다가 용정(龍井) 광명중학 전학, 졸업(1938).

연희 전문 문과 졸업(1941) 후 일본 입교대(立敎大) 영문과 입학(1942),

동년 도오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전학 중 1943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 직전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어(1943)

2년 형을 받고(1944)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29세를 일기로 옥사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당숙인 윤영춘(尹永春)이 확인한 죄목은 ‘

사상 불온, 독립 운동, 비일본신민, 서구사상 농후’였다.

그의 유해는 그를 낳은 북간도 용정에 묻혀 있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지만,

그의 10주기가 되던 1955년,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그의 시비(詩碑)는

나라 잃은 지식인의 ‘원죄적인 부끄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 언덕에서
  •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일제에 의하여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아타까운 시인입니다.
    부끄러움의 미학... 오늘날의 우리들이 새겨야할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1945년 2월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후

    3년 뒤에 발간된 유고 시집이다.

    이 시집은 출간 과정까지 극적인 과정이 있었다.

    지면에 공식적으로 시를 발표한 적이 없었던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 시집을 내려고

    그동안 썼던 시를 모았다.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기로 하고 필사로 3부를 만들었으나

    시집 출판은 좌절되고 시인은 투옥됐다.

    당시 필사본 한 권이 기적적으로 남아 경향신문에 게재되면서

    31편을 실은 유고 시집이 발간된다.

    한국문학사에 윤동주라는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김성주 주) 









     이 시집은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자선시(自選詩)로 발간하려다 실패했고,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유학 중 사상 불온,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

    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하는 바람에 발간을 하지 못했다.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을 기초로 친구 정병욱(鄭炳昱),

    김삼불(金三不)과 동생 윤일주(尹一柱)가 주선하여 발행했다.







     


     






     이 시집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숱한 자연의 언어가 그러하듯

    그의 내면세계를 그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집 초판에는

    시인 정지용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는

    유명한 경탄을 넣어 서문을 붙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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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촬영과 편집=싸말래

    글의 일부출처=김성수,언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