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끼사건>
판문점에서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쯤 초소 시야를 가리는
미류나무 가지 제거작업을 하던 미군 병사들이 북한군의 도끼 만행
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76년 8월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장교 2명과 한국군 장교 1명을 포함,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 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20여명의 북한군이 증원됐고 “죽여라”는 북한 장교의 고함과
함께 북한군은 곡괭이와 도끼 등을 유엔군에게 사정없이 휘둘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유엔군은 대항할 틈조차 없었다.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도 중경상을 입힌 북한군은
유엔군 초소까지 부수고는 황급히 북쪽으로 도주했다.
사건후 미국이 즉각 2개 전투비행단과 제7함대 기동부대를 한국으로 급파하자
위기감을 느낀 김일성이 각서로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북한군 8.18 판문점 난동 도끼만행사건 현장
판문점내에서 미루나무 절단작업중이던 미군을 도끼로 무장한 북측군이 습격,
보니파스 미군대위등 2명을 살해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 경비병들이 미군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쯤 초소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하던 유엔 경비병에게 북한군 30여명이 도끼와 곡괭이로 기습, 미군 장교 2명이
피살되고 카투사 5명, 미군4명 등 9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건 직후 미 국방성은 2개 전투비행대대와 제7함대를 한국에 긴급출동시켰다.
북괴병들의 도끼 살인사건은 20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회담
실무회의에서도 초점이 돼 한적측은 이를 신랄히 규탄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측이 한적대표단
1976년 8월 18일 북한의 도끼만행 사건으로 인해 19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로 갈려 사상 첫 옥외회의를 하고있는 경비장교회의는 북한의 생떼로 17분만
에 끝이 났다.
1976년 8월19일 오후4시. 5시간이나 지연된 끝에 열린 군사정전위회의 제3백79차
본회의에서는 북한이8월18일 도끼만행사건의 사태의 중대성을 외면하며 딴전으로
1시간40분만에 실없이 끝났다.
사진은 본회의에서 유엔군측이 북한만행의 현장사진을 제시하며 항의하고 있는걸
오른쪽 북한대표 한주경등이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