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틀집 흙벽치기
'저릅집'.
한참을 돌다보니 특이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저릅집'.
저릅집은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를 짚대신
이엉으로 이은 집을 일컬으며 '겨릅집'이라고도 한다.
속이 빈 저릅대궁이 단열재로써 기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한다.
문이골 강봉문씨의 너와집( 강원도 도계읍 신리 3반. 중요 민속자료 33호)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보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랍이 살았던 듯합니다.
정선군 동면 백전리 물레방아 방아간의 지붕은 흔히 알기 쉬운 볏집이 아니라 억새와 같은 풀을 이용한 것으로 초가집이 아니라 일종의 겨릅집입니다. 볏집보다 훌씬 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레방아 바로 앞 개울을 경계로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와 경계를 이룹니다. |
귀틀집 흙벽치기
질척이는 흙반죽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흙반죽을 벽에 넣기 전에, 충분히 손으로 반죽을 해줍니다.
공기도 빼주고, 더 찰지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손아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귀틀집을 지어 본 적이 있는 아랫마을 다래아빠가 흙벽치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손으로 찰지게 주물러 있는 힘껏 처 넣는 거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야구공 던지듯이 흙을 던져 짝짝 달라 붙도록 하라고....
처음은 이렇게 거칠게 흙을 메웁니다.
다음에 다시 흙을 덧칠할 때 흙끼리 잘 붙으려면 거칠게 해 놓아야 한다네요.
안쪽에 합판을 대 놓고, 힘껏 흙을 처 넣었습니다.
안쪽은 쫄대가 가려질 정도로 흙을 처 바릅니다.
특히 서까래 아래쪽은 꼼꼼하게 밀어 넣습니다.
이렇게 벽을 마감하면 한옥집의 심벽치기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쫄대 위에 트라이비트라는 철망을 고정시킵니다.
벽 길이 만큼 가위로 잘라 벽에 대고 타카로 쫄대에 쏘거나 흙에 바로 쏘아도 고정이 됩니다.
트라이비트 위에 다시 흙을 덮씌웁니다.
이때 미장 칼을 전체적으로 힘을 주어 밀어 넣듯이 고르게 펴서 발라 주는 겁니다.
남자들이 칠해주고 나가면, 저는 모서리나 틈이 있는 곳에 꼼꼼하게 흙을 채웠습니다.
같이 흙일을 한 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저희들이야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함께 해준 분들은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흙벽칠 때 중요한 것은 때를 잘 잡아 하는 것입니다.
장마철이 끼어 있어서 비가 많이 올 경우, 벽이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필 수 있거든요.
그리고 또 안쪽 벽부터 흙을 쳐 나오는 것입니다.
안쪽이 느리게 마르기 때문에 내부 벽 먼저 치고, 그 다음 바깥벽을 치고.....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흙벽치기.
마당 한켠에 언덕을 이루었던 흙반죽이 집 벽체 메우는 데 다 들어갔답니다.
귀틀집
▲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체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지은 귀틀집 | |
ⓒ 조정숙 |
양끝을 우묵하게 쪼아 낸 자리에 나무를 얹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진흙을 발라 막는다.
벽체가 완성되면 느리개(서가래 위에 걸치는 지붕 널)를 놓고 이에 산자를 깐 뒤에
흙을 발라 천장을 삼은 후 이 위에 지붕틀을 덧씌운다.
따라서 귀틀집의 지붕은 맞배지붕을 이루며
기둥은 천장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동자기둥 하나를 세울 뿐이다.
지붕틀과 천장 사이의 합각은 수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서너 칸의 집을 모두 귀틀로 만드나
우리나라에서는 두 칸 방만을 귀틀로 하고, 부엌이나 마구 등의 공간은
일반 가옥처럼 널벽을 쳐서 벽을 삼고 나머지 공간은
기둥, 도리, 들보 등을 짜맞추는 가구식으로 꾸민다.
고구려에서는 부경이라 하여 창고를 귀틀로 짜서 만들었으며
최근까지 강원도와 경남에서 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귀틀집에 대해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변진조’에는
“나무를 옆으로 뉘어 쌓아 올려서 마치 감옥처럼 짓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귀틀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미국의 록키산맥,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에도 퍼져 있었다.
초가집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체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짓는 '귀틀집'도 눈에 띄었다.
많은 적설량에도 견딜 수 있고 온도 유지가 용이할 뿐 아니라
간편하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산간지대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고.
▲ 화암동굴안에 있는 종유석 | |
ⓒ 조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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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화암동굴을
여행하고 정선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화암동굴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으로
금광 굴진 중 천연 종유동굴이
발견됨으로써 그 신비로운 모습이 세상에 알려졌다.
석회 동굴의 특성을 보여주는 천연 종유굴과 수많은 광부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삶의 현장인
금광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가는 곳마다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의 현장 체험 학습장으로
부족함 없이 개발된 곳인 듯했다.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이란 언제나 마음 가득 풍성한 행복을 담고 돌아온다는 사실을 느꼈고
그것이 곳간에 쌓아둔 양식보다 몇 배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영화배우 양급석의 노래 -정선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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