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1 전체적으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삽화 추가, 동영상 계정 변경)
줄거리는 군데군데 단어 바꾼 정도구요, 리뷰 끝에 덧붙였던 내용을 본문에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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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먼저 읽어놔서 '꼬제뜨'같은 말이 더 입에 맞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 한국어 예고편>
대문호 빅토르위고의 원작(1862년 간행)은
한국으로 치면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 급 분량인데다
인상적인 등장인물과 사건들도 많고, 작가의 시대 담론도 중요한 비중으로 서술됩니다.
그래서 처음 뮤지컬화 할 때 우려가 컸다고 하는데요,(1985년 초연)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이나 영화나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서는 "레미제라블 서문 / 원작소설 줄거리 / 연표 / 소설과 뮤지컬의 설정 비교
/ 영화 리뷰 / 영화에 보태는 이야기 / 맺음 / 기타 정보" 순 입니다.
각 내용은 표시로 구분했습니다.

사회에는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은 처벌이 존재하여
그것(그 처벌)이 문명 속에 인위적으로 지옥을 만들어내어
신성한 운명을 불행으로 뒤얽히게 하는 한,
그리고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
프롤레타리아 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어떤 지역에서 사회의 질식상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한,
다시 말해
좀 더 넓게 보아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 한,
이러한 책들이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1862년 1월 1일 오뜨빌 하우스

디뉴의 주교인 미리엘은 원래 법관가문 출신으로,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집안은 몰락하고 자신은 신학을 공부해 주교가 된다.
그는 자신에게 지급되는 연금과 공관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주고,
자신을 따르는 독신의 여동생과 하녀와 함께 최소의 비용으로 궁핍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와 사제의 집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단 생각에 집의 자물쇠를 모두 떼어내는 등,
주교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도둑떼를 감화시키는 일화를 비롯한 주교의 인상적인 행적들과,
죽음을 앞둔 전 국민의회 의원 G와의 설전이 소개된다)

부모를 여읜 20대의 장발장은 가지 치는 일을 해가며
혼자된 누나와 일곱 조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었다.
겨울이 오고 일거리가 없어 온 가족이 굶어가던 차, 그는 빵집 유리창을 깨고 빵 하나를 훔친다.
곧바로 체포된 장발장은(1796년 25세) 5년형에 처하고 뚤롱 감옥에 수감된다.
(뚤롱감옥에는 자베르라는 간수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노역 중에, 무너지는 기둥을 떠받치는 장발장의 완력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의 탈옥시도는 수감 4년째 되던 해에 시작된다.
고향이 아닌 빠리 빈민가에서
누나가 조카 여섯은 행방불명된 채 막내 하나만 데리고 산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가족의 목격담은 이것이 마지막이 된다)
그때부터 시작된 연이은 탈옥시도로 처음의 5년형이 19년으로 늘어난 장발장.
그는 이 사회가 자신과 가족들을 절망 속에 떨어뜨렸다는 분노를 품은 채
19년째인 1815년 10월에 가석방된다.
(가석방기간이라 죄수신분이라는 노란 통행증을 갖고 다녀야 함)
자유의 기쁨도 잠시, 통행증을 보고 그의 신분을 알게 된 모든 사람이 그를 거부한다.
지붕을 찾아 들어간 개집에서마저 개에게 쫓겨나는 장발장.
결국, 그는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지나가던 부인(주교 여동생의 친구)이 주교의 집을 안내한다.

주교는 위험한 죄수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음에도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나 내놓는 은촛대와 은접시를 꺼내놓고 그를 진심으로 환대한다.
주교의 편견 없는 선의에 의아해하다가 잠자리에든 장발장은
불현듯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을 떠올리고 한밤을 틈타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다.

<左 은촛대와 은식기를 꺼내 가석방수를 대접하는 주교.
얼마 못 가 경찰의 검문에 걸린 장발장의 꾸러미에서 은식기가 발견된다.
장발장은 주교가 준 거라고 둘러대지만,
이를 믿지 않은 경찰은 그를 연행해 주교의 집으로 간다.
(이때까지 장발장은 주교의 살림이 너무 허름해서 그가 하급 사제인 줄 알고 있었는데,
경찰과 함께 주교를 보고서야 그의 직급을 알게 된다)
그들을 맞이한 주교는 오히려 '함께 준 은촛대는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앙심만 가득했던 장발장의 마음에 충격을 준다.
경찰을 돌려보낸 주교는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쥐여주며
'당신의 영혼은 내가 샀으니 앞으로 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左 경찰에게 연행되어 주교의 집으로 압송된 장발장.
그날 오후 장발장은 덤불 그늘에 앉아
자신을 용서해준 주교에게 정체 모를 분노를 느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던 굴뚝 청소부 소년(쁘띠 제르베)이 갖고 놀던 동전을 떨어뜨린다.
무의식 속에서 본능적으로 그 동전을 밟은 장발장.
소년은 돈을 돌려달라고 울며 애원하지만, 장발장은 소년을 무섭게 쫓아낸다.
도망가는 소년과 뒤늦게 발견한 발밑의 동전.
장발장은 한참 소년을 찾아보지만 아이는 이미 멀리 사라진 뒤였다.
(후에 소년은 경찰에 이를 신고해, 장발장은 가석방기간중의 범죄로 가중기소된다)
비로소 위대한 주교와 끔찍하게 타락한 자신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된 장발장은
그날 밤 인적없는 주교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주교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한다.

<左 굴뚝 청소부 소년 쁘띠 제르베를 무섭게 쫓아버린 장발장은
<뮤지컬 25주년 콘서트 中 장발장과 미리엘 주교의 만남 후에 이어지는 인트로>
그해 말 1815년 12월경,
장발장은 마들렌느라는 이름으로 몽트뢰이유 쉬르 메르라는 도시에 나타난다.
죄악과의 단절을 위해 과거를 지우기로 결심하고 신분을 위장한 것.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공장을 세워 엄청난 부자가 되고,
마을 전체의 경제까지 부흥시킨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는 기부와 선행으로 명망이 높아지던 1820년,
드디어 정부는 몇 번을 고사해온 그에게 시장직을 맡긴다.
(다음 해인 1821년,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부음을 전해 듣고 상복을 입는다)

몇 년 전으로 돌아가 1817년의 빠리,
젊은 대학생 4명은 또래의 여직공 4명을 꼬여내어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계절이 끝나갈 때쯤,
대학생들은 여직공들을 비겁한 방법으로 따돌리고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 직공 중 하나였던 팡띤느는 뱃속에 아이까지 가진 상태였다.
(아이 아버지 똘로미에스는 후에 잘나가는 거물급 변호사가 됐는데,
여전히 쾌락주의자였다고 잠깐 소개됨)

팡띤느가 여자아이를 출산한 후인 1818년.
갓난아기를 데리고 일을 할 수 없었던 팡띤느는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길에서 본 떼나르디에 부인이 자기 자식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곧 그녀는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양육비를 매달 부치는 조건으로
갓난아이 꼬제뜨를 그들 부부에게 맡긴다.


하지만 떼나르디에 부부는 천박하고 비열한 사람들이었다.
남편 떼나르디에는 1815년 워털루전쟁 당시 군부대를 따라다니면서
전사한 군인들의 귀중품을 훔쳐내 그걸 밑천으로 여관을 연 사람이었고,
('마리우스'의 아버지 '조르즈'대령은 워털루 전투 후 기절해있었는데,
떼나르디에가 몸을 뒤지고 있을 때 깨어나 그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떼나르디에 부인은 남편과 두 딸에게만 애정을 쏟고 세상의 나머지는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이들 부부는 끊임없이 꼬제뜨의 양육비를 허위로 부풀려간다.
팡띤느는 그 부부가 꼬제뜨를 잘 키워주리라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 마들렌느(장발장)의 공장에 취직해
얼마간 양육비도 꼬박꼬박 보내며 앞날에 희망을 품는다.
한편, 공장운영에 윤리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마들렌느(장발장)는
생각이 강직한 노파 여직공에게 공장의 운영을 맡긴 상태였는데,
그 노파가 팡띤느의 뒤를 캐, 그녀에게 사생아(꼬제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미혼모가 공장에 있다는 걸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던 그 노파는
사장에겐 보고하지 않은 채 (팡띤느에겐 마들렌느가 시켰다며) 그녀를 쫓아낸다.
앤 해서웨이-I Dreamed a Dream
수입이 없어진 팡띤느는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처를 더 허름한 곳으로 옮기고 세간을 내다 팔기 시작하지만
보내야 할 돈은 점점 밀려만 간다.
결국,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앞니까지 뽑아 팔며 굴욕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팡띤느는
몇 년 사이에 건강도 잃고, 몸을 팔러 거리로 나가는 창부 신세가 된다.

<뮤지컬 25주년 콘서트 中 팡띤느役 레아살롱가 - I Dreamed a Dream(full ver.)>
몇 년의 시간이 흐른 1823년 초 어느 겨울밤.
한 신사가 길에서 호객하던 팡띤느의 비참한 꼴을 보고 그녀를 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참을 놀려도 반응이 없자 심술이 난 남자는
팡띤느의 등덜미를 잡아채 눈 한 뭉치를 우악스럽게 집어넣는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팡띤느는 신사에게 대들며 난장을 피우다 결국 경찰에 체포되는데,
그때 그녀를 체포한 형사가 바로 과거 뚤롱의 간수보였던 자베르였다.


교도소에서 범죄자의 아들로 태어난 자베르는 출생부터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웃사이더로 밀려나 사회를 공격하는 대신,
죄악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회의 감시자가 된 인물이다.
자베르는 창녀 따위가 신사를 모독했다면서 그녀를 교도소로 보내려 한다.
팡띤느는 자기가 창녀가 된 건 사장이 자기를 공장에서 쫓아냈기 때문이고,
자기가 일을 해야 딸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며 자베르에게 선처를 애원한다.
그때 시장 마들렌느(장발장)가 조사실로 들어온다.
마들렌느는 신사가 팡띤느에게 시비를 걸 때부터 그녀를 지켜보았는데,
그녀가 체포되는 걸 보고 증언을 해주려고 뒤따라왔던 것.
마들렌느를 본 팡띤느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자신을 이 꼴로 만든 그의 비정함을 비난하는데,
문 뒤에서 그간의 사정을 듣게 된 시장은 그녀를 당장 석방하라고 자베르에게 명령한다.
자신을 불행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은 자기를 구원해 주려 하자
팡띤느는 그저 어리둥절해한다.

<左 자베르에게 애원하던 팡띤느는,
자베르의 격렬한 반대에도 마들렌느는 그녀를 데려가 자기 집에 누이고
의사와 쌩쁠리스 수녀를 불러와 간호하게 한다.
신사가 넣은 눈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건강이 나빠진 팡띤느.
마들렌느는 누워있는 팡띤느에게 용서를 빌며,
떼나르디에를 찾아가 밀린 양육비를 주고 꼬제뜨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자베르는 과거가 명확하지 않은 시장을 본능적으로 의심해왔는데,
얼마 전 시장이 마차에 깔린 포슐르방 노인을 구할 때 보여준 완력을 보고,
그를 장발장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팡띤느를 둘러싼 시장과의 다툼으로 마음을 굳힌 자베르는,
가석방기간중에 굴뚝청소부의 돈을 훔쳐 사라진 장발장이 바로 마들렌느 시장이라고
빠리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빠리의 답신은 '경찰이 이미 장발장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사과하나를 훔쳐 잡혀들어온 샹마띠외라는 노인을 조사한 끝에
그가 장발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뚤롱에 같이 있던 죄수들의 증언도 확보했으므로(검사가 회유함)
최종 재판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
자신이 엄청난 오해를 했다고 생각한 자베르는
남에게 단호한 원칙을 적용해왔던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그래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곧바로 시장을 찾아간다.
그리곤 내일이면 재판을 받을 샹마띠외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권위를 의심하고 상관을 무고한 자신을 해임해달라고 말한다.
자베르의 얘기를 들은 마들렌느(장발장)는 처절한 고민에 빠지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계속 부양해야 할 도시민들과 하루빨리 데려와야 할 꼬제뜨를 떠올리며
양심의 징표로 간직해온 과거의 흔적(작업복, 소년의 동전, 은촛대)을 태우고 녹여서
과거를 완전히 지우겠다고까지 생각한다.

<左 시장을 찾아와 용서를 비는 자베르.
하지만 무고한 노인이 자기 대신 누명을 쓰게 놔두는 것은
이유가 어찌 됐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닫는 마들렌느.
그는 즉시 빠리로 말을 달려가 법정 한가운데서 스스로 장발장임을 밝히고,
도망가지 않고 몽트뢰이유 쉬르메르로 돌아가 있을 테니 자신을 체포해달라고 한다.
(팡띤느에게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左 자기가 왜 장발장으로 오해받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샹 마띠외.
마들렌느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돌아온 걸 알게 된 팡띤느.
그녀는 그동안 시장이 자기 딸을 데리러 간 거라 확신하고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마들렌느가 병실로 들어오자 어서 딸을 만나게 해달라며 애원하는데,
이때 자베르가 들어와 팡띤느의 오해를 비웃으며 장발장을 체포하려 한다.
이를 지켜보던 팡띤느는 절망에 찬 비명을 지르다가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지고,
장발장은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꼭 딸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한다.
(장발장이 체포된 후 그가 부흥시킨 도시는 경제적으로 몰락해간다)

순순히 자베르에게 연행된 장발장은 재판 전에 잠시 탈옥하는데,
시장 시절 예금했던 거액을 인출해 은촛대와 함께 인적없는 숲에 숨긴다.
(이 돈은 그가 정직하게 벌어 대부분을 기부하고 남겨뒀던 것)
곧바로 다시 체포된 장발장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해(1823년) 11월, 항구에서 노역하던 장발장은 돛대에 매달린 사람을 구해주게 되는데,
동시에 자신은 물에 빠져 죽은 걸로 위장해 탈출한다.
마들렌느 고발 건으로 빠리 시경에 전근해온 자베르는
신문을 통해 장발장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장발장은 죽음으로 위장하자마자 꼬제뜨가 있는 몽페르메이유로 향한다.
(마들렌느가 있던 도시는 '몽트뢰이유 쉬르메르', 여관이 있는 곳은 '몽페르메이유')
팡띤느의 사망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부부는 꼬제뜨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얘기한 상황.
갓난아기 때 헤어져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꼬제뜨는
유일한 장난감인 헝겊을 입힌 작은 칼에게 작은 소리로 노래한다.
"엄마가 죽었대"

<左 떼나르디에의 여관에서 하녀처럼 일하는 꼬제뜨.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한밤중,
물을 길어오라는 떼나르디에부인의 명령으로 숲 속 연못에 갔다 오던 꼬제뜨는
자신을 찾아온 장발장과 마주친다.

<左 물을 길으러 나간 거리에서, 진열된 인형에 넋을 뺏긴 꼬제뜨.
장발장과 꼬제뜨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 장발장은 그 아이가 팡띤느의 딸임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내놓지 않으려는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팡띤느의 서명을 보여줌으로써 소녀를 구해낸다.

곧 꼬제뜨와 함께 빠리의 혼잡함에 숨어들어 간 장발장은 아이에게 검은 상복을 사 입히고,
시 외곽에 있는 고르보 주택에 세들어 살기 시작한다(1823년 말)
이때부터 꼬제뜨는 장발장을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장발장은 오로지 꼬제뜨를 위해 살게 된다.
숨어 살던 와중에도 성당 앞의 거지에게 적선을 계속하는 장발장.
그 소문을 들은 자베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지로 분장해 성당 앞에 앉아있다가
자신에게 적선하려는 장발장과 눈이 마주친다.
자베르를 눈치챈 장발장은 꼬제뜨와 함께 즉시 집에서 나와
그를 추격해온 자베르를 힘겹게 따돌리고 근처 수녀원에 담을 넘어들어간다.(1824년 초)


그곳에서 과거 마차에 깔린 걸 구해줬던 포슐르방노인과 마주친 장발장 부녀.
노인은 그 수녀원 정원지기로 있었는데,
자기 생명의 은인인 장발장과 그가 데려온 아이를 숨겨주기로 한다.
그런데 그들이 수녀원에서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려면
부녀 모두 수녀원에 적법하게 들어오게 해서 수녀원장의 인가를 받게 해야 했다.
마침 수녀원에서는,
법에 따라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하는 한 수녀의 시신을
생전 그녀의 바람대로 성당에 안치하고 싶어했는데,
그들은 그걸 이용해 바깥으로 나가기로 한다.

곧 장발장은 그 수녀 대신 관에 들어가 수녀원을 나가고,
미리 포슐르방의 망태기에 숨어 밖으로 나가 있던 꼬제뜨와 함께 정식으로 수녀원에 돌아온다.
(장발장은 계획이 틀어져 생매장당할뻔하지만, 포슐르방의 기지로 위기를 넘김)

<左 포슐르방의 망태기에 숨어 밖으로 나가는 꼬제뜨.
그 후 장발장은 포슐르방의 동생자격으로 노인과 함께 수녀원의 정원을 돌보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장발장은 포슐르방의 성을 쓰게 된다)
그의 딸로 소개된 꼬제뜨는
후에 수녀가 되는 조건으로 수녀원 내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1829년 말까지 약 5년간,
장발장은 수녀원의 안전한 보호 속에서 꼬제뜨를 사랑으로 키운다

과거 워털루 전쟁(1815년 6월) 때,
떼나르디에가 얼결에 시쳇더미에서 꺼내준 '조르즈 뽕메르씨'대령은
귀족 집안 부인과의 사이에 5살 정도의 마리우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전쟁 직후 부인이 죽자, 아이의 외할아버지이자 확고한 왕당파인 질노르망 노인이
어린 마리우스를 막무가내로 데려가서 애지중지 키우기 시작했는데,
(황제를 위해 싸운 사위를 받아들이지 못함)
손자 마리우스에게는 아버지가 그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한다.
(※왕당파는 혁명 이전의 왕정을 지지하는 부류-주로 귀족,
황제파는 혁명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부류-마리우스의 아버지도 포함,
공화파는 프랑스대혁명과 공화정을 지지하는 부류.)
1827년.
17살이 된 마리우스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도착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에 마지못해 찾아간 마리우스는
'생명을 빚진 떼나르디에란 사람을 찾아 은혜를 갚아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장과 함께
아버지가 사실은 자신을 늘 그리워하며 슬퍼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아버지를 지켜봐 왔던 마뵈프노인이 얘기해준 것)
마리우스는 외할아버지가 자기를 속여온 것에 분노하고, 집으로 돌아가 따져 묻는다.
질노르망은 손자를 둘도 없이 아꼈음에도 그에게 모진 소리를 한다.
집을 뛰쳐나온 마리우스는
이후 친구 집과 여관에서 지내면서 번역일을 통해 생활비를 해결하는데,
이는 그 생전 처음 겪는 궁핍함이었다.

<左 마리우스가 성당에 오는 날마다 몰래 아들을 지켜봤던 조르즈 뽕메르씨.
한편 외조부에 대한 마리우스의 분노는 왕당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나폴레옹에게 작위까지 받은 아버지의 행적을 좇으며 황제파의 견해를 갖게 되는데,
이후 왕정복고에 반감을 갖고 있던 또래 학생들과 어울리며 공화정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그가 만난 앙졸라와 꽁브페르를 비롯한 학생들은 'ABC의 벗들'이란 단체를 만들어
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키워가고 있었다.(ABC/아베쎄/비천하다는 뜻)
번역과 교정 등의 일을 이어가며 궁핍한 생활 속에도 돈을 모은 마리우스는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하고,
마침내 여관을 나와 예전 장발장 부녀가 잠깐 살았던 고르보 주택의 한 방에 세를 든다.
한편 마리우스의 옆방에는 여관이 파산한 후 빠리로 흘러들어온 떼나르디에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두 딸 외에도 가브로슈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위의 딸들만을 편애했던 떼나르디에 부인은 그 아들을 방치했고
(장발장이 꼬제뜨를 데려갈 때 3살이었음)
출생과 동시에 소외된 가브로슈는 아주 가끔 집에 들를 뿐,
지금까지 거리의 유쾌한 부랑아로 지내고 있었다.

<左 파산 후 빠리 빈민가로 흘러들어온 떼나르디에 부부.
1831년 봄.
마리우스는 1년 전부터 근처 공원에 산책하러 가곤 했었는데,
그곳엔 늘 노신사와 그의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와있었다.
매일 먼 발치에 앉아 있는 그 여자아이가 눈에 익숙해질 때쯤,
마리우스는 1년 새 부쩍 자라 아름다워진 그녀에게 어느새 반해버리고
짝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다.
마리우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녀는 꼬제뜨였는데,
장발장 부녀는 이미 1년 전 수녀원을 나와 밖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
장발장 부녀는 수녀원에서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평생 안심하고 살 수도 있었지만,
(포슐르방 노인은 중간에 사망)
꼬제뜨를 수녀로 만드는 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도망자인 자기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장발장이
1829년 10월 수녀원을 나와 새로 거처를 마련했던 것.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마리우스는 노신사와 소녀의 집을 미행하기에 이른다.
자기와 꼬제뜨를 늘 주시하던 청년이 자신들을 미행한 걸 알게 된 장발장은
그날 이후 거처를 옮기고 공원에 나가지 않게 되는데,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그녀를 볼 수 없게 된 마리우스는 낙심하고,
꼬제뜨는 한동안 왠지 우울해한다.

<左 꼬제뜨 役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해 초겨울, 마리우스는 자신의 방에 구걸하러 온 에뽀닌느와 만난다.
어릴 때의 귀여운 외모는 가난으로 모두 사라진 에뽀닌느는
아버지의 구걸심부름이나 다니는 신세였는데,
마리우스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에뽀닌느가 돌아간 후, 옆방에 사는 가족에게 호기심이 생겨
벽 틈으로 옆 방을 살펴보기 시작하는 마리우스.
그때, 장발장과 꼬제뜨가 적선을 하기 위해 떼나르디에를 찾아온다.
(떼나르디에는 가명으로 부자들에게 기부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편지를 받은 장발장이 찾아온 것)
장발장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떼나르디에는 과거 꼬제뜨를 데려갔던 장발장의 얼굴을 알아차린다.
그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저녁때 더 가져와 주십사 부녀를 돌려보낸 후,
장발장이 돌아오면 강도무리와 함께 그를 덮칠 계획을 세운다.
벽 틈으로 이 상황을 보면서 그의 성이 떼나르디에라는걸 알게 된 마리우스는
아버지의 은인이 강도란 사실에 절망하는 한편,
다신 못 볼 줄 알았던 소녀를 다시 보게 됐단 사실에 기뻐한다.
마리우스는 자기 방에 온 에뽀닌느에게 신사의 집을 알아내 달라고 부탁한 후,
떼나르디에의 계획을 경찰에 알린다.(그 경찰이 자베르)
마리우스의 청을 들은 에뽀닌느는
노신사와 함께 온 소녀가 이미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를 기쁘게 하고 싶단 생각에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얘기한다.
저녁이 되고,
돈을 갖고 혼자 찾아온 장발장은 떼나르디에 무리에게 제압당하지만,
몰래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리우스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때 자베르를 비롯한 경찰이 급습해 떼나르디부부와 강도 무리를 체포하는데
장발장은 그 혼란을 틈타 도망친다.
자베르는 강도를 당할 뻔한 피해자가 도망간 것에 의아해한다.

<左 기부를 위해 빈민가를 찾아온 장발장 부녀
이 사건 후 마리우스는 고르보 주택을 나와 다른 방에 세를 든다.
이어진 수사로, 떼나르디에 부부가 관련된 범죄가 드러난다.
떼나르디에 부부는 몇 년 전에 가브로슈밑으로 두 아들을 더 낳았는데,
질노르망의 첩에게 그 아기들을 넘겨 사생아로 위장하게 한 후,
노인으로부터 지금까지 생활비를 뜯어내 왔던 것.
이 수사로 그 첩도 체포됐는데,
그녀의 두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왔을 땐
엄마라고 여기던 여자는 이미 체포되어 사라진 뒤였다.
너무 나이가 어려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곧 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다음 해인 1832년, 풀리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초봄.
이발소에서 구걸하다 무참히 쫓겨난 두 아이와 그 앞을 지나던 가브로슈가 우연히 만난다.
헤어질 땐 너무 어려서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했던 아이들.
가브로슈는 아이들과 빵을 사서 나눠 먹고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가 하룻밤 안전하게 재워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여전히 서로가 형제인지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길로 헤어진다.



<左 구조물 안의 아지트에서, 두 동생은 형 가브로슈를 의지해 안심하고 잠을 잔다
거리의 아이들이 우연히 만난 그날 밤, 떼나르디에 무리는 탈옥에 성공한다.
(떼나르디에 부인은 감옥에서 이미 숨진 후였음)
그 무리 중의 하나였던 브뤼종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쁠뤼메 거리의 외진 주택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수감 중에 에뽀닌느에게 연락을 해서 그 집을 염탐하라고 지시했는데,
그곳이 바로 마리우스가 좋아하는 소녀의 집이란걸 알게 된 에뽀닌느는
(마리우스를 위해 장발장 부녀를 보호하고자)
'가능성이 없다/혹은 돈 될 게 없다'는 보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탈옥에 성공한 아버지와 도둑 무리는 그 보고를 무시한 채 그 집 앞에 들이닥치고,
그곳을 서성이다 그들과 마주친 에뽀닌느는 소리를 지르겠다고 위협해 그들을 쫓아낸다.
자신을 사랑할 리 없는 마리우스를 위해 다시 한번 장발장 부녀를 보호한 에뽀닌느.

한편 마리우스는 그를 찾아온 에뽀닌느를 통해 꼬제뜨의 거처를 알게 된다.
몰래 그 집에 찾아가 며칠 동안 꼬제뜨를 바라보던 1832년 4월의 어느 밤,
마침내 그의 존재를 알아챈 꼬제뜨와 해후한다.
마리우스가 공원에서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부터
꼬제뜨도 마리우스를 몰래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두 사람.

정원에서 그 두 사람이 만난 흔적을 발견한 장발장은
딸이 사랑에 빠져 자길 영원히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프랑스의 생활을 접고 영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오로지 꼬제뜨를 보호하며 살아온 그에게는
딸이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상황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그날 꼬제뜨는 이민 계획을 마리우스에게 전하고, 두 사람은 슬픔에 빠진다.
이때 마리우스는, 외할아버지에게 비용을 지원받아 결혼을 강행하면
포슐르방씨(수녀원 이후로 사용한 장발장의 성)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온 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도움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손자를 그리워하던 질노르망 노인은 마리우스의 사랑을 폄하하고,
마리우스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단 생각에 괴로워하며 꼬제뜨에게 되돌아간다.
그런데 마리우스가 꼬제뜨의 집에 돌아갔을 땐 사람이 살던 흔적이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마리우스와 꼬제뜨가 헤어지길 바란 에뽀닌느가 몰래 장발장에게 '이사 가라'를 쪽지를 던졌고,
위기를 느낀 장발장이 곧바로 거처를 옮겨버린 것.
급작스런 생이별에 절망한 마리우스는 거리를 배회하는데,
그때 누군가 바리케이드에서 친구들이 찾는다며 그에게 소리치고
마리우스는 다만 죽겠다는 심정으로 그날의 폭동 속으로 들어간다.
1832년 6월 5일, 민중의 지지를 받던 라마르끄 장군의 장례행렬이 도화선이 되어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을 실시하자는 폭동이 빠리 시내에 일어난다.
시내 곳곳에 시위대에 의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군대와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중심으로 대치한다.
궁핍함 속에 막다른 길로 내몰리다 결국 삶의 희망을 잃은 마뵈프노인도 그 시위에 참가한다.
바리케이드 중앙에 꽂혀있던 혁명기의 깃대가 군대의 총격에 부러져 떨어지는데,
이를 다시 매달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올라간 마뵈프 노인이 군대의 총에 맞고
그곳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곧 앙졸라는 혁명기 대신 마뵈프 노인의 윗옷을 내걸고 투쟁을 시작한다.
한편, 민간인으로 위장해 바리케이드에 잠입해있던 자베르가
그를 알아본 가브로슈의 제보로 인질로 붙잡힌다.

<左 시위에 참여한 가브로슈. 中 마뵈프 노인의 죽음
시가전이 계속되던 중,
이름 모를 남자의 손이 마리우스를 향한 군인의 총구를 막고, 다행히 총알은 빗겨나간다.
부상자들을 옮기던 마리우스는
에뽀닌느가 남장을 한 채 손에 구멍이 뚫려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마리우스의 품에 안긴 에뽀닌느.
그녀는 자기를 사랑할 리 없는 마리우스를 죽게 하려고
친구들이 찾는다고 외쳐 그를 바리케이드로 오게 했으며,
자기도 그와 함께 죽기 위해 남장을 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고백한다.
멀리서 들리는 가브로슈의 노랫소리.
에뽀닌느는 그 꼬마가 자기 동생이란 말과 함께
숨겨두었던 꼬제뜨의 편지를 마리우스에게 건네는데,
꼬제뜨가 거처를 옮기기 직전, 집 앞을 배회하던 처녀(에뽀닌느)를 발견하곤
옮겨가는 주소를 편지에 적어 우체통에 넣어달라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맡겼던 것.
마리우스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눈을 감겨준다.

< Valjean's Death & Finale >
꼬제뜨가 옮겨간 집의 주소를 알게 된 마리우스는
꼬제뜨에게 '사랑 없는 삶을 살 바엔 이곳에서 죽겠다'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가브로슈에게 그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편지를 전한 다음 돌아오지 말라고 덧붙인다.
(자신은 곧 죽게 되므로, 떼나르디에의 아들에게라도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가브로슈는 마리우스가 알려준 집을 찾아가, 마침 앞에 앉아있던 장발장에게 그 편지를 건넨다.
꼬제뜨를 향한 마리우스의 사랑을 절실히 느끼게 된 장발장은 그를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군대에 저지당하지 않기 위해)갖고있던 군복을 입고서 바리케이드로 향한다.
이미 전세가 기울고 있음을 느낀 바리케이드 안에서는 부양가족이 있는 다섯 명을 뽑아놓고,
그들을 위장해 탈출시키기 위해 군복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4벌밖에 못 만들어 곤란해하던 차,
바리케이드에 나타난 장발장이 자신의 군복을 벗어주어 다섯 모두 탈출시킬 수 있게 된다.
마리우스는 바리케이드로 들어온 그녀의 아버지-장발장을 보지만,
죽음을 결심한 그에게는 모든 게 희미하게 파악될 뿐이다.

바리케이드의 탄약이 다 떨어져 가던 다음날 새벽.
가브로슈는 마리우스의 바람과 달리 바리케이드로 돌아와 있었다.
소년은 새벽 안개를 틈타 군대의 탄약통을 집어오려고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갔는데
너무 앞으로 간 나머지 진압군에게 들키게 되고, 총격을 받고 숨진다.
(그 시각, 가브로슈의 두 동생은 어느 꼬마가 맛이 없다며 연못에 던져버린 빵을 건져 먹는데,
이것이 그 아이들의 마지막 언급이다)

바리케이드의 최후가 임박해오는 것을 느낀 앙졸라가 자베르의 처형을 지시하던 순간,
장발장이 그 일을 자신에게 맡겨달라며 자베르를 외진 곳으로 끌고 간다.
장발장의 얼굴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자베르는
어서 자기를 죽여 복수를 완성하고 영원히 숨어 살라며 장발장을 다그치는데,
그 얘기를 들은 장발장은 오히려 그를 묶었던 밧줄을 풀고 허공에다 총을 쏜다.
(마리우스는 그 총성을 듣고, 꼬제뜨의 아버지가 자베르를 처형했다고 생각함)
그리곤 집 주소를 알려주면서 자기가 살아나가게 되면 체포해달라고 말한다.
달아나는 자베르는 장발장의 선의에 충격을 받는다.

군대의 총공격이 시작되고 바리케이드는 무너진다.
프랑스 혁명과 제정, 왕정복고를 단시간에 격은 빠리는 혁명과 진보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도망치는 혁명군에게 시민들은 문을 닫아걸고,
앙졸라를 비롯한 30여 명의 혁명군은 근처 술집 건물로 집결해
마지막까지 격렬히 저항하다 모두 사망한다.
(앙졸라는 민중이 우리를 버리더라도 우리는 민중을 버리지 말자고 한다)
장발장은 바리케이드가 무너질 때 총상으로 기절한 마리우스를 업고 지하수도를 통해 탈출한다.

<左 무너지는 바리케이드.
마리우스를 업고 지하수도의 어둠과 미로, 모래구덩이를 구사일생으로 헤쳐나온 장발장은
강가를 바로 앞둔 출구에서, 열고 나갈 길 없는 철문에 망연자실한다.
이때 그의 뒤 하수도 깊은 곳에서 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돈을 훔치려고 사람을 죽인 후
시체를 강에 버리기 위해 하수도를 지나왔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강도라면서 갖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어준다.
(시체를 하수도에 버리면 발각되니까 강물에 버리려고 업고 왔다고 생각함)
사실 그는 자베르의 추격을 피해 하수도로 숨어든 떼나르디에였는데,
이 낯선 사람을 자기 대신 내보내 추격을 따돌리려고 한 것.
여태껏 어둠과 오물 때문에 장발장을 못 알아본 떼나르디에는
문을 열어주면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게 되고,
나중에라도 그를 협박하기 위해 등에 업힌 시체(마리우스)의 소맷자락을 몰래 잘라낸다.
밖으로 나온 장발장은 떼나르디에를 추격하고 있던 자베르에게 곧바로 체포된다.

<左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지하수도를 건너는 장발장.
장발장은 청년을 살려야 할 시간을 잠시만 허락해달라고 자베르에게 애원한다.
웬일인지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자베르.
장발장과 자베르는 질노르망의 집에 몰래 그를 내려놓고 빠져나온다.
장발장은 딸을 마지막으로 보게 해달라며 한 번 더 사정하고,
이를 받아들인 자베르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꼬제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창밖을 보는 장발장.
그의 눈에 자길 남겨두고 사라진 자베르의 빈자리가 들어온다.
자베르는 (우연히도) 자기가 평생 추적하며 괴롭힌 죄수가 위기의 순간에 자기 목숨을 살려주고,
게다가 죽을 고비를 넘겨 다른 사람을 살리려 한 사실에 괴로워한다.
죄악에 대한 혐오와 타협 없는 법 집행이 곧 정의이고,
죄인의 교화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이 무너졌음을 깨달은 자베르.
도망자를 놓아준 자신에게 괴로워하던 자베르는
그 혼란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장발장을 체포하러 가는 대신
유서를 남긴 후 강물에 몸을 던진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업고 온 마리우스는 외할아버지의 사랑 속에 날로 회복해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꼬제뜨가 옆에 있었다.
질노르망 노인이 결국 외손자와 함께 꼬제뜨를 받아들이고
둘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기 시작한 것.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장발장은 마리우스와 꼬제뜨에게 그동안 숨겨두었던 재산 모두를 건넨다.

다음 해 2월 결혼식 당일, 결혼행렬은 마침 행진 중이던 가장행렬 사이를 지나 식장에 도착한다.
(이 가장행렬에는 떼나르디에와 그 딸 아젤마가 있었는데, 장발장을 알아보고 그의 뒤를 캔다)
얼마 전 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는 장발장 대신,
질노르망 노인이 대리인 자격으로 서약서에 서명함과 동시에 식은 끝난다.
피로연이 시작하기 전에 그곳을 살짝 빠져나온 장발장.
그는 집으로 돌아와 이사 때마다 몰래 갖고 다니던 상자를 꺼낸다.
그 안에는 그가 처음 꼬제뜨에게 사준 검은 상복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딸의 어렸을 적 옷가지를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고 크게 흐느낀다.

다음날,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찾아가
자신은 신분을 숨긴 죄수이고 꼬제뜨와 자기는 혈연이 아님을 밝힌다.
충격을 받은 마리우스와 계속 말을 잇는 장발장.
장발장은
신분을 숨기고 그들 부부와 영원히 같이 살 수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망수의 가족으로 만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제껏 보살펴온 꼬제뜨에게 새로운 보호자가 생겼으니
자신은 다시 도망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손이 다친 척해서 서명을 안 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
자신이 준 거금은 꼬제뜨의 친척으로부터 그녀에게 적법하게 상속된 재산이라며
(실은 그가 시장 시절 저축했다가 체포와 함께 숨겨놓았던 돈)
마리우스를 안심시킨다.
모든 걸 고백한 장발장은 매일 그녀를 찾아와 만나는 것만 막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데,
마리우스는 마지못해 승낙한다.
다음 날 저녁 꼬제뜨를 찾아간 장발장은 딸에게 '부인'이라는 존칭을 쓰며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꼬제뜨는 의아해하지만,
마리우스와의 행복 속에서 장발장을 단지 포슐르방씨라고 부르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장발장은 매일 저녁 그녀를 찾아간다.
이를 지켜보던 마리우스는 장발장과 꼬제뜨가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이 만나는 방 벽난로에 불을 피우지 않고,
하루는 의자를 문쪽에 놓고, 어느 날부터는 의자를 아예 놓지 않는 식으로
장발장의 방문을 거절한다.
마리우스의 뜻을 이해한 장발장은 거짓 여행을 핑계로 딸과의 만남을 그만두지만,
딸의 집 발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생활을 1년 동안 계속한다.
그리움 속에 기력이 다해, 마침내 집 밖으로 걸어나갈 힘도 없어진 장발장.
그는 지금껏 소중히 간직해온 은촛대에 양초를 꽂고 불을 당긴 후,
간신히 펜을 들어 자신과 팡띤느의 일생을 적어 내려간다.

<左 딸의 집 앞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리는 장발장.
바로 그날.
떼나르디에가 마리우스를 찾아와 장인의 비밀을 알려주는 대신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마리우스는 이미 장발장에게 직접 얘기를 들었다면서,
장인의 고백 이후에 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덧붙인다.
전과가 있었지만 개과천선했던 마들렌느란 사람이 몽트뢰유 쉬르메르를 부흥시켰는데
장발장이 그를 고발하고 나서
몰래 그 시장의 돈을 인출해간 걸 해당 출납계에게 확인했으며,
(돈을 인출해줬던 출납계가, 경찰로부터 장발장이 인출자였단 얘길 듣고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했던 것.
출납계원의 얘길 들은 마리우스는 장발장이 준 돈이 부정하다고 생각해왔다)
바리케이드에서 자기정체를 알아챈 자베르를 총으로 쏘아 죽인 것도 알고 있다는 것.
그의 얘기를 들은 떼나르디에는 더 큰 거금을 요구하면서
마리우스가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주겠다며 말을 잇는데,
마들렌느와 장발장은 동일인물이고, 자베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증거로
각각의 사건을 보도했던 신문기사를 내밀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던 밤
장발장이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업고 하수도를 나오던 걸 봤다면서
그 시체의 옷에서 오려낸 소맷자락을 보여준다.
그제야 사지를 넘어 자기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 장발장이었단 것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생명의 은인이자 성자 같은 장인을 모욕하며 쫓아낸 자신을 한탄한다.
곧, 아버지의 보은은 끝이라며 떼나르디에에게 돈을 던져주고
꼬제뜨와 함께 용서를 빌기 위해 서둘러 장발장을 찾아간다.
(후에 떼나르디에는 딸 아젤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노예상이 됨)
숨을 거둬가던 장발장 앞에 늦지 않게 도착한 마리우스 부부.
장발장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길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준 것에 한없이 고마워한다.
마리우스와 꼬제뜨가 눈물로 용서를 비는 가운데, 장발장은 용서와 사랑에 대한 말을 남기고,
(꼬제뜨는 그를 다시 아버지라고 불러준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양심과 책임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장발장은
마침내 평화롭고 행복하게 숨을 거둔다.

※어린 꼬제뜨가 옷 입힌 칼을 쓰다듬으면서 엄마가 죽었다고 노래하는 부분은
원작에서는 장발장과 만나 여관으로 돌아온 후 벌어지는 일인데요,
제가 여관 안의 이야기를 대부분 생략했기 때문에, 흐름상 그 바로 이전에 집어넣었습니다.

소설에 언급된 연대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1789. |
프랑스대혁명. 공화정 수립 장발장 수감(24세) 혁명 뒤 혼란을 안정시키며 나폴레옹이 제1통령 취임. 군사독재 제정 시작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실패 유럽연합군이 빠리점령. 나폴레옹 실각/유배. 부르봉 왕정복고 나폴레옹, 엘바 섬 탈출.쿠데타로 재집권 |
--소설의 주요 내용 시작--
1815.6월 ~
6.6
1832.6.7 |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이 영-프로이센군에 패배. 왕정 재복권 전투가 끝난 밤, 떼나르디에와 조르즈 뽕메르씨(마리우스 아버지)가 만남 5살 무렵의 마리우스 뽕메르씨가 외조부에게 입양됨 장발장가석방. 미리엘 주교와 만남. 가석방기간 중 굴뚝청소부의 동전을 훔침 장발장이 마들렌느로 이름을 바꾸고 몽트뢰이유 쉬르메르에 공장 세움 팡띤느 버림받음. 꼬제뜨 출생 떼나르디에 부부가 꼬제뜨 맡음 팡띤느가 마들렌느(장발장)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지만 곧 쫓겨남 마들렌느(장발장), 시장직 수락 미리엘주교 사망 팡띤느가 난동으로 체포됨 빠리에선 샹마띠외가 체포되어 장발장으로 오인됨 팡띤느 사망, 장발장 재수감 장발장, 죽음으로 위장하는 데 성공 장발장은 꼬제뜨를 데리고 빠리로 가 고르보 주택에 세들어 삼 자베르의 추격으로 장발장 부녀가 수녀원에 들어감 이때부터 장발장은 정원지기를 따라 포슐르방 성을 사용 마리우스 아버지(조르즈 뽕메르씨) 사망. 마리우스 가출 포슐르방(장발장) 부녀, 수녀원을 나와 빠리 외곽에 주택구입 7월 혁명 발생 마리우스, 고르보 주택에 세듦.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기 시작함 마리우스가 꼬제뜨와 사랑에 빠져 사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장발장 부녀를 미행함 포슐르방(장발장)은 마리우스의 존재를 알아채고 거처를 옮긴 후 공원 산책을 그만둠 떼나르디에의 강도사건이 일어나 떼나르디에 일당 체포 떼나르디에 탈옥 꼬제뜨 마리우스 재회 꼬제뜨의 사랑을 알게 된 포슐르방(장발장)은 영국 이주계획 세움 시내에 공화정을 위한 무력시위 발발. 바리케이드 설치 그곳에서 마리우스에게 아버지에 관한 오해를 풀어준 마뵈프 노인사망 에뽀닌느, 가브로슈 사망, 앙졸라를 비롯한 학생그룹(ABC의 벗들) 사망 새벽, 포슐르방(장발장)은 하수도를 통해 마리우스를 구해냄. 자베르 사망 마리우스와 꼬제뜨 결혼. 장발장이 자신의 신분을 마리우스에게 알림 장발장 사망 |

뮤지컬은 10주년 25주년 기념 콘서트만 봤는데요,
미리엘 주교의 비중이 줄고, 에뽀닌느의 사랑과 희생이 많이 강조됐습니다.
(아무래도 에뽀닌느의 외사랑이 워낙 절절하다 보니..)
가브로슈는 떼나르디에의 아들이 아닌, 부랑자 꼬마애 정도로만 축소된 거 같구요,
마리우스의 편지를 장발장에게 전하는 것도 가브로슈대신 에뽀닌느가 합니다.
(영화에서는 원작과 같이 가브로슈가 편지를 배달합니다)
마뵈프노인은 생략이 됐네요.
그래서 바리케이드의 첫 번째 희생자는 마뵈프가 아니라,
마리우스를 보기 위해 바리케이드로 돌아오다가 총에 맞는 에뽀닌느가 됩니다.
마뵈프는 그야말로 학처럼 살아가던 식물연구가쯤 되는 노인인데,
점점 궁핍해지는 생활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부터 바리케이드에서 맞이하는 죽음까지
소설 속에선 임팩트가 매우 큰 인물입니다.
팡띤느를 간호했던 쌩쁠리스 수녀도 생략됐습니다.
그녀는 일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장발장이 잠깐 탈옥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와 마주쳤음에도
자베르에게 장발장을 보지 못했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워털루 전쟁이 생략되면서 마리우스 아버지와 떼나르디에의 관계도 생략.
마찬가지로 마리우스의 외조부도 생략.(영화에는 등장합니다)
가브로슈의 두 남동생과 둘째 누나 아젤마도 생략.
원작에선 마리우스가 왕당파에서 황제파로, 다시 공화파로 바뀌는 과정이
ABC의 벗 구성원에 관한 내용과 함께 중요하게 묘사됩니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정치성향 변화와 같은 궤라는군요.

전 국민의회의원 G도 생략됐습니다.
그는 민중에 대한 동정과 공화정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과격 혁명파 인물로,
성향만으로 보면 앙졸라(혁명논리담당)의 노인 버전이라 할 수 있구요,
왕정복고 시작과 함께 축출되어,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왕당파에 가까웠던 미리엘 주교의 방문을 받은 G는
비참하게 살아가는 민중에 대한 동정과 종교를 넘어선 양심을 설파함으로써
주교의 마음을 근본부터 흔들어놓는 사람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생략됩니다.
보통의 대하소설이 미칠듯한 스피드로 엄청난 분량의 얘기를 쏟아내는 데 반해
소설 레미제라블은 분량의 거의 반 정도를
줄거리와 관계된 개념론(시대 담론, 역사, 종교와 이성 등)에 할애합니다.
뮤지컬에서는 당연히 이 부분이 줄어드는데요,
원작이 낭만주의 소설의 절정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는 만큼,
뮤지컬은 바로 그 낭만적인 드라마에 집중하여
소설의 많은 부분을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있는 내용을 뽑아냅니다.

19일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몰랐는데 18일 저녁에 조기 개봉했더라구요.ㅎ
어떤 말로 리뷰를 시작할까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음"
원작소설을 영화화할 때는
장르 한계상 서사는 생략되고, 묘사는 부족하며, 정신은 실종될 수밖에 없어서
많은 경우 네러티브의 요약에 그치기 쉬운데요,
특히 소설의 분량이 방대하다 싶으면
시간상으로 유리한 TV 시리즈 정도가 그나마 낫다는 평을 듣습니다.
(제인 에어와 레미제라블 모두 그랬죠)
그러다 2012년,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이는 앞서 극화된 레미제라블의 흥행 결과를 보면 유일한 선택사항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소설을 뮤지컬(뮤지컬영화)로 만들면 대략 세 가지 장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관객은 '말 대신 노래를 부르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보며 장르 자체의 매력에 빠지기 쉽고,
둘째, 방대한 서사가 시(詩)와 멜로디로 압축됨으로써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내용을, 그것도 감성적으로 극대화해 담게 돼
원작에 비해 극의 밀도가 높아지며,(재미에 큰 영향을 주죠)
셋째, 감정 묘사의 경우, 화면이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가사로 직접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입니다.
1985년 작 뮤지컬은 이 과정을 통해
가뜩이나 감성적이라고 평가받는 내용을 더욱 유려하게 다듬어
20년 넘게 무대에서 대중의 검증을 마쳤습니다.
그 뮤지컬을 영화라는 장르로 변주한 2012년 영화는 원작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노래와 극적인 시각효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목표입니다.
이 영화는 라이브 녹음도 물론 화제였지만,
그것보다 원작 뮤지컬처럼 송 쓰루라는 점이 훨씬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입니다.
(송 쓰루(Song Through)-대사없이 노래로만 진행)
뮤지컬영화의 상업적 이점을 꼽자면,
대사와 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중간중간 심리를 묘사하거나 내용을 정리하는 노래로 극에 리듬감을 줌으로써,
관객의 흥미를 환기할 수 있다는 걸 텐데요,
영화 레미제라블은 대사연기가 거의 없습니다.(다 합쳐서 열 마디나 되려나요)
넘버 사이에 공백도 거의 없이, 뮤지컬넘버가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보통 뮤지컬 영화의 트랙은 많아야 20개 정도고 3분씩이라고 쳐도 1시간을 넘지 않죠.
바로 이것이 기존 뮤지컬영화와 이번 레미제라블을 구분 짓는 방점이 되고,
관객의 호불호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영화에 적용된 송 쓰루에 대해 느낀 점을 써보자면,
1. 2시간 반 동안 끊이지 않는 멜로디 전부가 인상적이지는 않음.(송 쓰루 필요성의 문제)
2. 돋보여야 할 넘버가, 앞뒤로 꽉 들어찬 멜로디 때문에 오히려 묻힐 때도 있음.
3. 대사가 없는 만큼 관객은 가사와 정황으로 극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시(詩)구에 가까운 가사는 아름답긴 했지만 상황설명에 효과적이지 않음.
-예를 들어 이별에 대한 노래의 경우, 화자의 슬픔은 충분히 전달되겠지만,
소설이나 극영화라면 설명됐을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는 것과 같음.
-게다가 주요 넘버를 제외한 대화씬 같은 경우,
일반 관객들에겐 낯설고 정돈되지 않은 음의 연속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됐을 듯.
(오페라에서 아리아와 아리아 사이에 노래로 대사하는 것을
'레치타티보(recitativo)'라고 한다는데요,
레미제라블의 '음을 붙인 대사'도 '레치타티보'라고 할 수 있다는군요/hian****님)
4. 가뜩이나 밀도 높게 압축된 이야기는
넘버의 템포에 맞춰 영화 내내 거의 몰아치듯 진행되는데,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곱씹기를 바라는 관객에게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함.
(개인적으로, 스토리의 기능은 거의 뭉개졌다고 느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겠다 싶으면 벌써 다음 노래 나오고 있는 식.
5. 무대라면 가능했겠지만, 노래로 영화 전체를 커버하기엔 영화 속 시공간이 너무 넓다고 느낌.
이와 같습니다.
송 쓰루라는 방식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합니다.
자막은 읽어야 되지, 화면은 봐야 하지, 거기에 귀에 안 꽂히는 멜로디는 계속 들리지...
정보량이 너무 많아 피로감이 조금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소설이나 뮤지컬이나, 최소한 동화로라도 내용을 좀 알고 가야
연출자의 의도대로 불편하지 않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작진으로선 모험이었을, 안정된 가창을 버리고 선택한 라이브 녹음의 경우,
개인적으론 큰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일 큰 수혜자는 앤 해서웨이구요.
(길지 않은 등장이었지만, 어떤 분은 그야말로 통곡을 하셨습니다)
악보를 정확히 재현하는 대중가요에 비해
감정을 최대로 올려 부르는 뮤지컬 넘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사를 하듯이 자유롭게 노래한 레미제라블의 넘버는
배우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라이브로 가창을 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면
자칫 2시간 반짜리 뮤직비디오처럼 보였을 것도 같습니다)
물론 몇몇 장면에선 정돈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역효과도 보였습니다.
감독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영화 전체에 적용한 것처럼 보였는데
(라이브 녹음, 송 쓰루, 클로즈업을 포함해 핸드카메라로 찍은 역동적인 화면)
영화 안에서, 장면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를 줬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바리케이드씬은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는-마치 뮤지컬 무대 같은 스튜디오 장면과,
피날레에서 영화관을 눈물바다로 만든 굉장한 규모의 실제 바리케이드씬,
이 두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이는, 마지막에 극의 프레임을 한 단계 높이는 뮤지컬의 구성을 재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뮤지컬 피날레에서는
장발장의 죽음 이후, 모든 등장인물이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르며 막을 내림으로써
그의 죽음을 민중의 혁명정신으로 승화시키는데요,
이와 비슷한 구조로,
영화 내내 보였던 스튜디오의 바리케이드가
마지막 엔딩에서는 희생된 모든 이들과 함께 현실의 모습으로 바뀌어 등장함으로써,
'그 불쌍한 사람 모두가 갖고 있었던 삶의 존엄성'과 '그들 각자가 지녔던 희망의 가치'를
벅찬 감동과 더불어 '보다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송 쓰루였단점이 못내 아쉬운데요,
아무리 원작 뮤지컬이 송 쓰루라고 하더라도 그 부분을 과감히 포기하고
인상적인 곡 위주로 극에 리듬감을 주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는 게
뮤지컬에 낯선 많은 관객을 위해서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영화적인 연출(대사 느낌의 라이브녹음과 영화적 영상)을,
영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뮤지컬적인 연출(송 쓰루)을 보여준 이 영화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는지, 아니면 둘 다 놓쳤는지를 판단하는 건
오롯이 관객 각각의 취향에 달린듯합니다.
오늘만 해도 몇 분이 중간에 나가신 반면, 우느라고 정신 못 차리는 분도 많았거든요.
제 경우에도 심드렁하게 본 몇몇 부분이 있었지만,
피날레에선 뱃가죽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눈물이 터지려는 걸 참아야 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나름 만족스럽게 관람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영화 레미제라블의 감동은
고전적 의미의 영화로서라기보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이나 명화가 주는 감동과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잘 살리지 못했지만,
이 웅장하고 장대한 서사극을 저는 몇 번이고 다시 볼듯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한정된 네러티브가 미처 못 다룬 소설 속 이야기 중, 몇 개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장발장의 대칭점에 있는 안티-히어로 자베르는 사실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형사로서의 자베르는 어떻게 보면 서슬 퍼런 대쪽, 프랑스의 포청천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럼에도 끝내 긍정적인 평가가 어려운 이유는 그에게 연민과 동정이 없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를 사람이 아닌 시스템처럼 느끼게 합니다.
(팡띤느를 해고한 노파와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에서,
사회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은 사회를 공격하거나,
역으로 사회를 감시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범죄자의 자식으로 교도소에서 태어난 자베르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고,
방향이 정해진 생각은 점점 완고해져 갔습니다.
(자베르가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일단 한쪽으로 치워놓기로 합니다.
레미제라블은 불행에 놓인 사람의 자세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불행에 빠진 사람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봐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니까요)
이런 완고하고 강력한 신념일수록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되는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요,
(영화에서도 자베르가 위태롭게 난간을 걷는 장면이 몇 번 나옵니다)
신념에 대한 반증으로 마음이 꿰뚫린 장발장과 자베르는
모두 급격한 자아의 붕괴를 겪게 됩니다.
장발장은 주교의 용서로 20년 가까이 키워왔던 증오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자베르는 장발장이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평생의 신념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거죠.
이 정체성의 극단적 위기 속에서 장발장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는 데 반해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자베르는 죽음을 선택하고 마는데요,
어떻게 보면 자베르가 더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죄인이 나쁜 게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든 어둠이 나쁜 것이다-소설中"
죄를 지은 사람보다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환경이 더 문제라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자베르를 용서하고 동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 작위적일 정도로 물고 물리는 인생의 연결고리를 보면,
앞서 줄거리에서 소개한 가브로슈의 두 동생이 나중에 자베르처럼 될지도 모를 일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장발장이나 가브로슈의 두 동생에 대한 연민을
자베르에게 나눠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에서 교회는 장발장을 세 번이나 구해줍니다.
처음엔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의 증오를 무너뜨렸고,
두 번째엔 쌩쁠리스 수녀가 거짓말을 해서 중요한 시간을 벌어줬으며,
세 번째엔 수녀원의 담장이 자베르로부터 장발장 부녀를 보호해줬지요.
교회, 성직자가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빅토르 위고는 소설 속에서
종교가 문명의 태동과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현대에는 오히려 인류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대놓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극단적인 이성주의자도 아닙니다.
이성적 회의론이 부딪힐 수 있는 허무주의에 대한 보완으로 종교를 제시하기도 하거든요.
그럼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 뮤지컬 中 장발장의 마지막 대사"
(소설에서 마리우스가 꼬제뜨에게 전한 '사랑받는 사람은 신이 된다'는 쪽지 문구를
전체 주제를 나타낼 수 있도록 고쳐서 인용한 것 같습니다.)
작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신앙은
이성과 종교를 넘어선 양심과 자비, 사랑 같은 인류애입니다.
빅토르 위고에게는 휴머니즘이 종교인 거죠.
서원을 어기고 장발장을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쌩쁠리스 수녀나,
정치적 스탠스를 뛰어넘어 결국 손자에 대한 사랑이 제일 중요하단 걸 깨달은 질노르망이
이런 작가의 생각을 극적으로 상징합니다.
모든 상황과 생각을 넘어서는 휴머니즘은 용서라는 화두로도 나타납니다.
미리엘은 은접시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하고,
장발장은 자기를 미워한 포슐르방을 구해주느라 자베르앞에서 힘자랑을 하고,
생명을 빚진 포슐르방은 수녀원에서 장발장 부녀를 보호해주고,
장발장은 평생 자기를 괴롭힌 자베르를 풀어줌으로써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그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이것도 모자라 장발장은 꼬제뜨에게 유언으로 떼나르디에를 용서하라고 얘기하고..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처럼 이야기 내내 이어지는 용서와 자비의 릴레이는
만인에 대한 평등한 사랑이 결국 선순환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소설이 150년간 전 세계에서 읽히고,
끊임없는 미디어믹스로 리바이벌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쉽고 보편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휴머니즘을 주제로 했기 때문일 겁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다른 작가에 의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스칼렛이 쓰인 것처럼
레미제라블도 '코제트'와 '마리우스'라는 제목으로 현대에 쓰인 속편이 있는데요,
평도 안 좋고 저도 안보긴 했지만,
어쨌든 원작의 결말에서 이어지는 불행, 용서, 자비의 선순환이 그 주요 내용이라고 합니다
"진보의 포악행위가 혁명이다. 그게(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인류는 곤욕을 겪었다. 하지만 진보했음을.-G"
소설의 처음 부분,
미리엘 주교가 고독사 직전의 G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의외다 싶은 내용이 나옵니다.
독자가
'양심의 화신인 미리엘 주교가 꼬장꼬장한 G를 죽음 직전에 감동적으로 회개시켜 주려나 보다'
예상하는 순간,
두 사람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생명의 존엄이라는 주제로 살벌한 논쟁을 벌이고,
진보와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G가
사실상 왕당파였던 주교를 뼛속까지 논파하고 마는 거죠.
(그리고 나서야 앞서 예상했던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집니다)
레미제라블은
공화정을 출범시킨 유혈 대혁명이 제정과 왕정복고로 모욕당한 프랑스 혼란기에 쓰였습니다.
당연히 이런 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고뇌가
소설 곳곳에 직접적으로 서술되는데요,
진보를 위해 혁명은 어쩔 수 없다는 G와 앙졸라의 생각에 작가의 휴머니즘 관점을 적용해 보면,
만인에 대한 평등한 인류애에서 출발한 민중에 대한 동정심이
진보와 혁명에 정당성을 주게 되는 거죠.
단 '민중을 강요하는 진보는 외면받게 돼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임으로써
자기가 무비판적인 혁명옹호론자는 아님을 얘기합니다.
정확히 옮기진 못하지만 대충 옮겨봅니다.
사회는 무상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법이 아니라 풍조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주택, 교육 등, 어느 정권 어느 법제에서도 해결될 기미가 없는 문제가 많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죠)
사람은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해 영웅을 향한 비난을 자기가 받는 것처럼 생각한다.
잘못된 권위를 비난한 자만이 그 권위의 몰락에 환호할 수 있다.
(부정한 권위에 아무 소리 안 했던 사람은 나중에 떡도 먹지 말란 소리인 듯)
이를 비롯해 나폴레옹과 루이필립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민주주의 시대의 절대 권력자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1. 장발장은 자기 죽음에 이르러서야, 꼬제뜨에게 팡띤느의 삶을 편지로 전합니다.
물론 꼬제뜨는 성장해 감에 따라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하게 되는데요,
꼬제뜨에게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장발장은
팡띤느가 '자신의 비참했던 삶이 딸에게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침묵을 부탁하는 팡띤느의 환상을 보는듯한 묘사가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 팡띤느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함구하게 됩니다.
2. 사랑에 빠진 꼬제뜨를 보호하려는 장발장의 행동은
다소 비상식적인 수준의 과잉보호인데요,
일단, 미리엘 주교와의 만남 이후 장발장의 행적을 보면
그에게 양심과 책임감이 일종의 강력한 도그마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거기에 소설의 자세한 심리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팡띤느에게 꼬제뜨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던 책임감이 극단적으로 확대돼
집착에 가까운 과잉보호를 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댓글에, 부모가 되니 그 행동이 이해가 된다는 말씀도 있네요)
3. 그랑떼르
drink with me는
바리케이트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느낀 사람들이 죽음 앞에 초연해져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중, 앙졸라 옆에 서서 동료들의 비장함에 초를 치는 그랑떼르는
(세 명 다음에 솔로로 노래 부르는 남자)
늘 술에 절어 사는 염세주의자입니다.
혁명이고 뭐고 쓸데없다는 그가 ABC의 벗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앙졸라의 열정을 동경하기 때문인데요,
(소설에서, 열정이 결핍된 이는 신념에 찬 사람의 열정을 동경한다고 설명됨)
앙졸라는 한심한 그를 늘 냉소적으로 대합니다.
그런 그랑떼르는 바리케이드 안에서도 술에 절어있다가 구석에서 잠들어버렸는데,
자다가 일어나보니 나머지 모든 동료는 군대에 사살되고 앙졸라만 남아있는 상황이었죠.
이때만큼은 결연하게 앙졸라의 옆으로 나아간 그랑떼르는
앙졸라가 내민 손을 잡고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영화에도 나오는 장면)
4. 뮤지컬 덕분에 장발장의 죄수 번호 '24601-투 포 씩스 오 원'이 잘 알려져 있는데요,
소설에서는 샹 마띠외 건으로 재수감된 후 '9430'이라는 죄수 번호를 다시 받으면서
죄수 번호가 한번 바뀝니다.
물론 장발장에게나 자베르에게나,
죄수로서의 원죄를 상기시키는 '24601'의 의미는 무척 특별할 겁니다.

원작 소설은 사회가 만든 어둠(무지와 빈곤) 때문에 불행을 겪는 모든 이에 대한
평등한 연민과 사랑(휴머니즘)의 중요성,
그리고 그 그늘에 빛을 비추려는 진보와 혁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뮤지컬(뮤지컬영화)는 그 원작의 감성적인 면을 훌륭히 폭발시켜 보여줬구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둠 속에서 어린 자베르와 가브로슈의 두 동생이 비뚜로 자라고,
장발장이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가며,
팡띤느가 돈 때문에 희망을 잃고 있을 겁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는 한 레미제라블의 메시지는 언제나 유효하겠지요.

1. 완역 소설을 보실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범우사, 동서문화사, 민음사, 펭귄, 더클래식 완역 비교인데요,
크롬에서는 디씨인사이드가 악성코드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저도 원작 읽는데 약간 힘들었는데요, 팁을 좀 드리자면...
전반부(수녀원에서 안심하고 살게 되는 때까지)는 장발장과 직접 연관된 인물의 얘기이고,
후반부(수녀원 이후)는 이야기의 관점이 확대되어
그 시대 민중 전체의 비참함과 공화정에 대한 열망, 그리고 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니 전반부에 없던 인물이 갑자기 무더기로 등장한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 나름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니까요.
덧붙여 수도원 역사와 빠리 하수구 얘기, 은어, 바리케이드의 역사 부분은
읽기 정 힘드시면 건너뛰셔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2. 리뷰에 사용한 삽화는 kyje****님이 말씀대로, 원작이 출간될 때 삽입된 삽화입니다.
원래 초판본에는 삽화가 없었는데, 두 번째 판본에서 약간의 삽화가 삽입됐구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읽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져서
세 번째 유그판본에 대량의 삽화가 삽입되었다고 합니다.
구글에 'les miserables' 'engraving' 'illustration' 'Emile Bayard(삽화 작가)'를
조합해서 검색하시면 많은 삽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검색하다가 레미제라블의 거의 모든 삽화를 모아놓은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원작 삽화뿐 아니라 최근에 그려진 삽화도 볼 수 있습니다.
(들어가면 보이는 노란 글씨가 모두 삽화제목 링크입니다)
4. 많은 추천과 댓글에 신나서 만들어봤습니다. 재미삼아 비교해보세요~
그림을 클릭하면 새창에서 크게 열립니다.
※콤 윌킨슨은 85년 뮤지컬 초연과 10주년 공연의 장발장, 12년 영화의 주교를 연기했습니다.
※레아 살롱가는 10주년 콘서트에서 에뽀닌느를, 25주년 콘서트에서는 팡띤느를 연기했습니다.
※사만다 바크스는 25주년 콘서트에 이어 2012년 영화에서도 에뽀닌느를 맡았습니다.
한국인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라. 제목만 보자면 ‘불쌍한 자들’ ‘비참한 자들’의 이야기다. 아이 양육비를 벌기 위해 생니 두 개를 빼어 파는 팡틴과 범죄자라는 이유로 하룻밤 묶을 방 한 칸을 얻지 못하는 장발장. 이 비참함이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아마도 단지 비참함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 책이 조선에 처음 번역됐을 때 『레 미제라블』은 수난받는 자의 이야기였다. 제목도 『너 참 불쌍타』와 『애사』, 그리고 『장발장의 설움』 등이었다. 그런데 이 무정한 감정이 조선에서는 민족적인 이야기, 즉 ‘수난받는 자’ 설움과 슬픔의 이야기로 수용되었다. 그래서 그가 차별받으면 차별받을수록, 자베르의 시선이 냉혹하면 냉혹할수록 장발장의 ‘성공’에 더 열광했다.
일본의 번역본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희! 무정(噫無情)』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무정하다!’이다. 조선과 일본의 경우 약간의 이점은 있지만, 『레 미제라블』의 역사적 의미보다 장발장의 파란 중첩한 이야기에 열광한 것은 매일반이었다. 심지어 일본판 역자인 구로이와 루이코는 빅토르 위고가 서문에서 ‘법과 제도를 넘어’ 역사의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레 미제라블』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은 조선에서나 일본에서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요즘 영화 ‘레 미제라블’을 둘러싼 사회적 반향은 사뭇 다른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울려퍼지는 노래 ‘민중의 노래가 들립니까(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통해 원작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만큼 ‘비참한 자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새로운 역사에 대한 의지와 지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3년 현재 많은 이가 이 책을 다시 붙잡는 것은 ‘비참한 현실’에 대한 수긍과 ‘그럼에도’ 이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역사를 간절하게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원작 소설에서 읽어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17년 동안 집필된 이 소설은 묵직하고 두툼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녹록하지 않다. 프랑스혁명 이후의 역사를 굽이굽이 파헤칠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왜 ‘소설’이 불가피한지 설득해내는 소설의 형식이다. 총 5부의 이야기에서 1부의 제목은 ‘팡틴’, 2부는 ‘코제트’, 3부는 ‘마리우스’이며 5부에 이르러서야 ‘장발장’이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또한 단수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당시 프랑스 격변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인물이다.
실제 ‘장발장’조차 수없이 다른 인물들로 변신한다. 어머니는 ‘잔마티외’로 불렀으며, 아버지는 ‘저 장이란 놈’의 약칭인 ‘장발장’으로, 자베르는 ‘24601’번의 죄수로, 시민들은 ‘마들렌’ 시장으로, 마리우스는 ‘포슐르방’으로, 이처럼 장발장은 복수적 존재이다. 장발장의 존재가 그러하듯, 소설은 프랑스 격변기 속에 놓인 다수의 군중, 시민의 얼굴을 담아낸다.
또 영화에서와 달리 소설 『레 미제라블』은 생각만큼 시민·군중·청년의 존재를 마냥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참한 현실을 이겨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과 그 현실을 냉소로서 버텨내는 허약한 환멸이 더 농도 짙게 그려진다. 프랑스혁명의 진취적인 기운은 미지의 심연 속에 갇혀있으며, 남아있는 것은 속악하고 비굴하게 타인의 것을 탐하는 인물군상뿐이다.
청년들이 비참한 현실에 분노하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가두를 점거하자, 시민들은 그 분노가 현재의 삶조차 허물어낼지도 모른다면서 창문조차 닫아버린다. 분노로 가득한 그 거리는 시민들에 의해 모두 닫혀버린다.
바로 이 시점에 위고는 장발장의 ‘양심’을 역사의 빛으로 내놓는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의 영혼을 대신하는 ‘양심’의 탄생이 그것이다. 마차에 깔린 자를 살려내고, 여공의 아이를 대신 키워내며, 죽음을 자처하는 청년을 구출하는 순간마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는 두려워하지도, 그렇다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을 넘어서 고백하며, 분노를 넘어서 상생한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의 기운이 어떻게 인간 내면에 젖어 드는지를 역설해 낸다. 이 양심은 자베르의 ‘법’이 닿지 못한 세계이며 ‘법 너머의 법’이다. 이 세계를 엿보고자 하는 다수의 열망이 지금 다시 『레 미제라블』을 불러들이고 있다.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神이 사라진 시대에 신의 영혼을 대신하는 양심의 탄생..........
양심은 법이 닿지 못한 세계이며, 법 넘어의 법이다." 동감하는 결론입니다.
신의 영혼을 대신하는 양심. 우리가 그양심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기에는 노력이 필요 하겠지요.
법 너머의 법을 알려면 "레 미제라불을 한번 더 읽어?"
. . . 사실은 우리들이 형사 자벨이나 욕심꾼 테날데 이면서도 그걸 모른다는데 있지않은가 합니다.
Hugh Jackman 이 노랠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읍니다.
" I dreamed a dream" 은 무척 슬프게 부르는데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