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로 올렸습니다.
전에 올렸던 내용보다 훨씬 알차게 꾸몄습니다.
플래르 펠르랭 장관의 성공기도 대단하지만
그 보다더 용재 오닐의 한국에서의 성공기는 더욱 치열했기에
여기에 그의 연주음악 동영상을 올립니다.
마지막에 올린 동영상은 YTN이 WEBSITE에 못 올리게 태그를 붙여
뺄가 하다가 너무나 귀한 대담의 내용이라 그냥 올리니
귀찮으셔도 YOU TUBE에서 지시 하는대로 가셔서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주 당당하고 아이댄티티가 분명한 그녀의 대담내용을 들어 보시기를...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한국 알린 공로로 ‘징검다리상’ 받은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검은색 단발에 붉은 립스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김종숙 대신 플뢰르 펠르랭으로 살아온 그는 올해 41세로
프랑스 정부의 고위 공직자로 성장했다.
정계에 입문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오른팔이 됐다.
디지털경제 담당 장관으로 그를 지명했다
.
한국 출신이 해외에서 성공하면 ‘한국인이 외국에서 성공했다’며
법석을 떠는 한국에 대해 그는 냉정하다.
지난해 3월 자신을 버린 나라의 땅을 다시 밟은 그는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향해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친부모를 찾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 내 가족은 프랑스에 있다.
난 프랑스 국적의, 프랑스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돼 영광이다.
(한국이) 입양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15일 서울에서 한국을 해외에 알린 이들에게 수여하는 ‘징검다리상’을 받았다.
매년
1월 국내외 여론을 수렴해 수여하는 상이다.그는 북미 출장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직접
참석하는 대신지난달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그의 집무실에서 상을 직접 수여했다
.
시상식 직후엔 최 이사장이 본지가 준비한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CICI-중앙SUNDAY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이사장은 “펠르랭 장관의 집무실에 멋진 그림이 걸려 있길래
물어봤더니 자신이 직접 그렸다고 해서 놀랐다”며
요리 솜씨도 뛰어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
-본인의 인생에서 큰 용기를 냈어야 했던 때는.
“(지난해) 방한 당시, 내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다.
장관으로서, 또 공인으로서 나에 대한 관심이 한·불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내겐 흥미롭게 다가온다.
가끔은 장관으로서의 내 임무와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뒤섞이는 바람에 난처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고, 그 결과로 한·불 관계가 좋아진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질문에 맞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CICI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러 국가 중 문화로 소통을 가장 잘하는 곳으로 프랑스가 선정됐는데.
“조국 프랑스에 관한 일이니 프랑스어로 답하겠다.
펠르랭 장관은 16세에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고위 공무원 양성학교인 국립행정학교
(ENA)를 졸업했다.그 는 희망했던 기관인 감사원에 들어가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
2010년엔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인이었던 세골렌 루아얄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언론 담당으로 일한 인연도 있다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은 채
올랑드 대통령이 그에게 맡긴 분야는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다.
펠르랭 장관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이라고 존경심을 나타냈다
.
인터뷰 내용
-장관직을 맡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에 대해선 한국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는 소통할 이슈들이 무궁무진하다.
한국은 디지털경제 시대의 선두주자 아닌가.
한국의 정보기술(IT)은 한국 경제부흥의 주역으로 세계에서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프랑스에도 전도유망한 벤처 기업들이 많기에 양국이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디지털 이외에 한식과 같은 문화로 한국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한식 역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과 한국과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문화, 그중에서도 요리와 식문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가오는 2016년이 한·불 수교 130주년인 만큼 양국 문화교류는 더욱 급증할 것이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CICI의 징검다리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은.
“이 질문엔 영어로 답하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며 자랑스럽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곧 한국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CICI는 2005년부터 매년 한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사물을 지정해
‘디딤돌상’ ‘징검다리상’ ‘꽃돌상’ 등을 수여해 왔다
.‘나를 떠나지 말아요
(Ne Me Quitte Pas)’를 부르며
이와 함께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구자훈 LIG문화재단 이사장 등 재계 인사 등이 두루 참석했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
한국계 입양아 출신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인생 역전
부모의 양육 포기로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던 아이는
40년 후 프랑스 장관이 되어 고국을 찾았다.
한국 이름 김종숙, 플뢰르 펠르랭의 인생 역전 이야기.
한국에서 태어난 지 3일 만에 길에 버려진 아이는 프랑스에서 ‘꽃’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입양 후 4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플뢰르 펠르랭(40·한국명 김종숙)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 이야기다.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플뢰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프랑스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3월 23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그는 단발머리에 검정 치마 정장 차림이었다.
한국을 찾은 건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으로서 제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들어선 그에게선 특유의 프렌치 시크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날 인천공항은 국내외 언론사에서 나온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전까지 일 때문에 중국을 찾거나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등 지척까지 온 적은 있었지만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펠르랭 장관. 이유는 단순했다. 올 기회가 없었다고.
펠르랭 장관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번도 출생지를 방문한 적이 없다.
나는 완전한 프랑스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프랑스와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점과 인구 고령화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닮았다”며
“이 같은 고민거리를 함께 나누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입국 소감을 밝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버려졌지만 양부모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원자물리학자인 양아버지와 주부인 양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양성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병사했고 대신 부부는 한국에서
펠르랭 장관과 그의 동생을 입양해 키웠다.
그는 남들보다 2년 빠른 16세 때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 합격했고,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세크와 정·관계 엘리트 코스인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를 거쳤다.
양부모의 사랑으로 엘리트 교육 수료
정치적 성향도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 펠르랭 장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부모에 대해
“매우 좌파적인 분들이었다”라고 적었다. 감사원에서는
문화·시청각·미디어·국가교육 담당자로 일하던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02년 사회당 대선 후보 조스팽의 연설문을 담당하면서부터다.
2007년 대선 때엔 루아얄 후보의 IT 정책보좌관으로서
디지털경제전문가로 활약하며 대(對)언론 업무를 담당했다.
현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사회당 후보 대선 캠프에는 2011년 11월 합류했다.
그곳에서도 전문성을 살려 문화·방송·디지털경제 문제를 담당했다.
지난해 5월 올랑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는 프랑스 중소기업 디지털 장관에 임명됐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주요 국가에서 한국계가 장관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언론 ‘르 피가로’와 ‘르 몽드’의 기사에서 정치인으로서의 펠르랭 장관의 캐릭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르 피가로는 촉망받는 정치인 후보 7명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에서 펠르랭을
“초대받지 않은 회의에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참석하는 배짱 있는 여성”이자
“가장 날카로운 인물”로 묘사했다. 르 몽드는 그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뛰어난 정치인”으로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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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0년부터 2012년 초 신임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전까지
프랑스 여성 엘리트·정치인 모임인 ‘21세기 클럽’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3년 설립된 이 클럽은 프랑스 및 유럽 사회 전반의 다양성 제고와 기회의 평등,
교육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단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여성, 평등,
다양성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한국말도 거의 못하는 그는 지나온 시간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간다.
펠르랭 장관은 “생후 6개월 후 바로 프랑스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없다”며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프랑스 사람으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껄끄러운 감정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 방문이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우호를 위한 가교가 될 좋은 기회”라고 했다.
공무원인 남편(로랑 올레옹)과 딸 베레니스를 둔 펠르랭이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노래방’.
취미가 요리와 그림 그리기,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기라는 그는 입국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에 한국에 가면 노래방에 가보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공항에서 마주친 취재진이 내용을 언급하자
“공항에서 노래 부르라는 건 아니죠?”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올해 초에는 월드스타 싸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1월 26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NRJ 뮤직어워즈 2013’에 수상자로 참석한 싸이는
자신의 트위터에 펠르랭 장관과 나란히 서서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올리고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펠르랭은 “최근 K팝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의 많은 학생이 K팝 가사를 알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해요.
그래서 한국어 강좌도 개설됐죠.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힘이 될 수 있고,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인 3월 27일 오전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송도국제도시를 둘러본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에 탑승했다. 개화역에서 김포공항역 구간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와이파이와 4G를 체험한 펠르랭 장관은
한국 방문 일정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묻는 취재진에게 “와이파이와 초고속 인터넷”이라고 답하며
“앞으로도 프랑스와 한국의 협력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펠르랭 장관은 김포공항을 통해 다음 목적지인 일본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플뢰르 펠르랭 장관,
2014 한국이미지상 수상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은 15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제 10회 ‘CICI 코리아 2014’ 시상식을 열었다.
CICI는 매년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높인 인물 및 상품에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 징검다리상을 수상한 펠르랭 장관
- 디딤돌상을 수상한
- 삼성전자 이돈주 사장
이 날 시상식에는 국내외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돈주 삼성전자 사장, 성김 주한 미국 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앙리 루와레트 전 루브르 박물관 관장 등이 참석하였다.
- 건배제의를 하는 루와레트 집행위원장
올해 징검다리상은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장관이 문화,
경제 기술분야의 활발한 교류 및 소통의 공을 인정받아 수상하였다.
작년에는 가수 싸이가 이 상을 수상했다. 펠르랭 장관은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디딤돌상에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 꽃돌상에 재즈 가수 나윤선씨가 각각 수상하였다.
- 꽃돌상을 수여받은 재즈 가수 나윤선
펠르랭 장관, 한국 중소기업에 프랑스 진출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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