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자료들은 박사모에서 퍼온 글 입니다.
글 쓴이가 너무 흥분하셔서 약간 반복되게 쓴 것이 있으나
양해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 말 중-영 아편전쟁. 영국은 중국을 침략했고 청나라는 굴욕적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영국에 넘겼다.
그 때 중국을 날로 먹은 영국은 주변국들에게 좀 미안했다. 특히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영국의 압박에 굴한 청나라는 우리 땅을 제멋대로 러시아에 넘겼다. 이것이 베이징 조약이다.
뜻밖의 횡재를 한 러시아는 이 땅에 동방 개척기지를세웠고 그 이름을 블라디보스토크라 하였다.
'블라디'는 '동방'이라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지배하라'라는 뜻이니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이다.
도시 이름만 봐도 남의 땅을 어거지로 지배한 역사를 나타내고 있지 아니한가.
대저, 나라가 힘이 없으면 이렇게 날로 먹히게 되나니.
조선말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권력을 다투고 왕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못난 촌극을 연출하고 있을 때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곡창지대가 그냥 남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러시아 방문 후기]
광할한 대지
.
분노가 일었다. 보라. 조선말 당시의 우리나라 지도는 이러했다.
조선(한국)령 연해주. 1800년대 로마 교황청에서 발행한 지도이니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우리의 영토 지도다.
(당시 프랑스에서 그린 지도든, 어디서 그린 지도든 대부분의 국제 지도에서는 연해주는 우리 땅이었다.)
땅덩이만 넘어 갔는가.
그 땅에 살던 우리 민족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그 추운 동토의 땅을 짐짝처럼 실려가면서 엄청난 동족이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미 남의 땅인 것을.
그래서 우리는 노래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노래하면서 나는 울었다.
이 땅, 이 광할한 대지.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지평선 너머 끝 없이 이어지는 대지.
아... 이 땅을 잃어버리다니, 나라가 힘 없어 이 넓은 대지를 빼앗기다니.
광개토대왕이 말 달리고, 대조영이 칼 꽂아 도읍한 이 기름진 평야.
눈 앞에 펼쳐진 끝 없는 대지 위에 자리잡은 발해 성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선구자를 부르는 것 밖에 없다니.
우리 옛 땅에 일몰이 스며들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노래하면서 울었다.
보라 저 광할한 대지. 이 땅은 원래 우리 땅이었다.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넓은 기름진 평야.
그러나 나라가 힘 없어 잃어버린 우리의 대지.
어찌 눈물이 솟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노래했다.
......
2012년 11월 24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 분 두 분, 총 28명의 북한 수재민 돕기 박사모 대북 곡물지원 대표단이 한 분도 빠짐없이 제 시간에 집결했다.
박사모 중앙상임고문님이자 이번 일정의 인솔대장(?)격이신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박사님의 주의사항 전달이 있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와 다르니 매사 조심하라는 말씀과 반드시 이박사님의 인솔을 따르라는 지침이 전달되었다.
간단한 러시아 말 몇 마디를 배웠다. 유머 섞인 말씀에 느낌이 좋다. 하라쇼! (좋다!)
출국 수속을 밟고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
참가자들이 거의 백만원에 가까운 자비를 부담하고 가는 길. 최소한 3박 4일의 일정을 잡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대선이 한참인데 1박 2일도 길다면서 줄이고 줄인 일정이다.
비행기는 오전 9시 20분에 예정대로 이륙했다.
기내에서 비행 항로가 그려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상식으로는 동북 쪽으로 날아가면 훨씬 더 가까울테지만
비행기는 서해로 나가 북진하여 중국 영공을 거쳐 다시 동진하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향했다.
불과 70분에서 100분 이내면 날아 갈 거리를 서해를 돌아 중국을 거쳐 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북한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절감될 비용이 한 두 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아침/점심(아점)을 겸해서 기내식으로 때운다. 식성 좋은 대식가 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다.
13시가 넘어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에 진입했다. 호기심에 창밖을 본다.
듬성 듬성 산이 보이고 나머지는 평야다. 드넓은 평야.
건물도 도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
현지 시각으로 13시 50분 비행기는 제 시각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입국장 관리들의 일이 느리다. 느리게 느리게 수속을 마쳤다.
그래도 옛 소련 시절에 비하면 초스피드로 처리되는 것이라고 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는 그날의 서울보다 추웠다.
간단한 사진 촬영 후,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보낼 곡물(보리)가 실릴 핫산역에 도착했다.
역은 한산했고 겨울의 철길은 황량했다.
협궤와 광궤의 차이에 따른 국제 철길. 이병화 박사님의 국제철로학 약식 강의가 있었다.
현재 우리의 철로는 막혀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도 철로를 따라 유라시아로 중국으로 유럽으로 육로를 이용한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 사진을 펼쳐 우리 박사모가 먼저 이 길을 답사했노라고 말하자.
고종항제의 밀명을 받고 머나먼 길을 떠났던 헤이그 밀사.
그 중의 한 분 이상설 열사. 그가 이 연해주에 잠들어 계셨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이곳 연해주에서 병사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유해를 화장하여 라즈톨로예 강물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뒷 날 사람들은 이 라즈톨로예 강 가에 그의 유적비를 세웠다.
라즈톨로예라는 말은 "슬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강물은 슬프디 슬프게 흐르고 있었다.
멀리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사진조차 석양의 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발해 성터를 찾았다.
보라.
저기가 우리 발해의 옛 수도였고, 전 세계가 인정한 한국령 연해주였으니
누가 이 땅을 자기네 것이라 할 수 있으랴.
분노가 일었다. 보라. 조선말 당시의 우리나라 지도는 이러했다.
조선(한국)령 연해주. 1800년대 로마 교황청에서 발행한 지도이니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우리의 영토 지도다.
(당시 프랑스에서 그린 지도든, 어디서 그린 지도든 대부분의 국제 지도에서는 연해주는 우리 땅이었다.)
조선 말 중-영 아편전쟁. 영국은 중국을 침략했고 청나라는 굴욕적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영국에 넘겼다.
그 때 중국을 날로 먹은 영국은 주변국들에게 좀 미안했다. 특히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영국의 압박에 굴한 청나라는 우리 땅을 제멋대로 러시아에 넘겼다. 이것이 베이징 조약이다.
뜻밖의 횡재를 한 러시아는 이 땅에 동방 개척기지를세웠고 그 이름을 블라디보스토크라 하였다.
'블라디'는 '동방'이라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지배하라'라는 뜻이니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이다.
도시 이름만 봐도 남의 땅을 어거지로 지배한 역사를 나타내고 있지 아니한가.
대저, 나라가 힘이 없으면 이렇게 날로 먹히게 되나니.
조선말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권력을 다투고 왕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못난 촌극을 연출하고 있을 때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곡창지대가 그냥 남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땅덩이만 넘어 갔는가.
그 땅에 살던 우리 민족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그 추운 동토의 땅을 짐짝처럼 실려가면서 엄청난 동족이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미 남의 땅인 것을.
그래서 우리는 노래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노래하면서 나는 울었다.
저녁 식사 자리.
우리는 오늘의 감동을 잊지말자 다짐했다.
우리는 이 땅에 먼저 진출한 농업회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우리가 역사에 기여할 방법을 논했다.
어차피 지금의 국제 관계에서 이 땅의 영유권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자. 우리의 젊은이들이 잊지 말게 하자.
그러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우리는 이 땅을 살 수는 없지만 50년간 임차할 수는 있다.
50년이 지나도 우선권이 있으므로 또 다시 신청하면 된다.
이 땅은 곡창지대이므로 농업적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북한은 굶주리고 있다.
이 땅에 농사를 지어서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
만약 통일이 되면 어차피 2000만명을 먹여살릴 식량은 태부족이다. 그렇다면 이 땅은 기회의 땅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선각자들이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이 땅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많이 죽고 다치면서 이 땅의 농지를 확보했다. 그 일선에 이병화 박사님이 있었다.
이제 우리 민족혼을 일깨우자.
정부에 맡기지 말고 우리 민간인이 하자.
너무 엄청난 땅이어서 10만평 20만평 이런 것은 아이들 웃음거리다.
우리가 땅을 사서(임차해서) 우리 자라나는 대학생들에게 1평씩만 공짜로 나눠주자.
어차피 소유권은 없는 것이니 임차권리증만 만들어 나눠주고 지원자는 봉사대를 만들어 연해주를 방문하게 하자.
그리고 우리가 나이들어 죽고 나서 세월이 흘러도 지금의 젊은이들이 잊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잊지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네 땅이 거기 있노라...고 알려만 주자....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는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찾더라도 관심. 이 관심만 남겨주자.
러시아 핫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러시아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우리 회원동지들이 모아 준 성금으로 마련한 곡물(보리)가 수집되어 이송할 창고를 향했다.
우리는 손수 현수막을 붙였고 나머지 한 장의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북한 주민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의 목소리가, 우리의 진심이 힘든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우리 박사모의 북한 수재민돕기 행사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나 보다.
러시아 핫센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우리의 행사는 러시아 방송국의 뉴스시간에 러시아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곡물 수송 차량은 떠났다.
이날 출발한 곡물 차량은 객차에 실려 다른 수송물이 집결될 때를 기다려
12월 22일 북한-러시아 국경을 넘어 북한 두만강역에 도착했다.
이제 좀 있으면 북한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어쩌면 오늘, 어쩌면 내일.
어쩌면 좀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2012.12.28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기타 > 북한소식과 탈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의 아리랑 공연 (0) | 2013.03.05 |
---|---|
북한 모란봉악단 (0) | 2013.02.10 |
A Look Inside North Korea (0) | 2013.01.09 |
북한동포, 여러분들에게! (읽어보세요...)-천성인어 (0) | 2013.01.07 |
탈북소녀, 미향이의 그날,그후 (0) | 2012.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