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의 초대/시와 음악이 있는 곳

이어령의 소원시와 김동길 칼럼,정진성

까까마까 2013. 1. 21. 15:38

 

 

 

 

소원시(所願詩)

 

 

 

이어령(李御寧)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인斷崖)의 나락입니다.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대목처럼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김동길 칼럼)
 
 
 
내가 대통령 이라면
 
 
 
 
 
 

일전에 어느 큰 기업의 총수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재벌 때리기’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노조 손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노조를 손보지 않고는 경제민주화는 다만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악질적인 ‘노동귀족’ 중에는 ‘악덕 기업가’보다 열배나 더

고약한 인간들이 끼어 있어서 이 나라의 균형 있는 민주적 발전을

극력 반대하고있는 겁니다.

 

 

 

오늘 여‧야가 목청을 돋우어 부르짖는 경제 민주화는

양면작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를 손보지 않고는 재벌을 제대로 때리기가 어렵습니다.

권력의 칼을 잘못 쓰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김동길

 

 

 

 

 

 

 

 

 

 

 

 

 

 

 

 

 

 

장진성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관

 

 

日학생들

 

그들은 박정희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했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어제 밤 일본 대학생들과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내가 아니라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

국제외교정치를 전공하는 그들은연세대와 고려대 유학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그 소리가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안정된 질서와 기나긴 평화에

체질화 된 일본인들 이어선지 분단 상황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웃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다.

 

나는 한국역사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랍게도 일제히 박정희! 라고 합창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서도 잘 듣지 못 한말을 일본 대학생들에게
듣는 순간전율 같은 감동이 솟구쳤다.

아니 그들은 나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을더 존경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거한 것도 아닌데,

총에 맞아 급사했는데도 자기와 가족을 위한

비자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일본이 3억 달러를 원조했을 때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 같은 경우

그 돈을 횡령하여 혼자만 부자가 된 반면,

박대통령은 고스란히 국민을 위한경제개발에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상식으로 김일성은세습권력을 위한 독재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했다며

분단시대의 두長期(장기) 체제를 비교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선 개발독재라는 표현도

일본 대학생들은 개발독선(獨善)이라고 했다.

박대통령이 비록 밀어붙였지만결국은 옳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때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란 사람들이

과연 역사 앞에 진실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기를 아끼느라 청와대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들었던 사실이며 서거 당시

착용했던 낡은 벨트와 구두화장실 변기에 사용했던 벽돌까지

그들은 박대통령 일화를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는가 물었더니 박대통령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조갑제 닷컴'에서 출판한 박정희 전기를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대학생들 중13권에 이르는 그 방대한 전기를 끝까지읽은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면서도그 위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일방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솔직한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만을 정당화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한강에는 그 상징물이 없는 나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역사정립이고

후대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자꾸 문제 삼는데 우선 저들의 현재부터 바로 세우라고 비판한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에

 

일본을 구원했다면 자기들은 우리의 가까운역사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매우 이상해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논쟁했던 이야기를 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박정희 대통령은독재자일 뿐이고

 

왜 독재를 하게 됐는지,그 결과가 과연 비참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그들의 주장은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틀에 의존한 교과서 같았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비판했다.

이념이나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떠나

시위자들의 사회적응 심리부터가잘 못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스미마셍으로 통한다.

남에게 불편을 줄 때는 물론 부를 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공동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며

자기집 앞은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잦은 시위들을 보면 남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라도 자기들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잘못된 국민정서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아니

법치에 도전해도 된다는 시민의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한류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일본 대학생들을 위해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더치페이가 민주주의 라며
각자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2차 노래방 값은 그들 몰래 내가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