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알기에 시간투자는 필쑤임다.
감격의 "백만불짜리 강연 2번"을 먼저 올리고 이제 진짜 1번을 올립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찬성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구 선생마저 대한민국 건국을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이승만 박사 혼자서 강대국들과 싸우고 설득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남북합작으로 소련 위성국이 되어
김일성 세습왕조의 군사독재 수용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일밑에 다른 어떤 것 보다 어랜지(Arrangement)가 잘되고
연주가 훌륭한 안익태 선생님의 코리아 환상곡. Fantasia Koreana을
지휘자 임재식 Director JaeSik Lim -스패인 오케스트라로 올립니다.
아래 들리는 합창은 스패인 합창단이 우리말로 하는 연주입니다.
동영상을 재생해서 다시보시는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강연 들을실 땐 음악 끄시고...(씨밀래)
사진이 오래된 것은 가끔 없어지길 잘 하니
혹시 없어지더래도 우클릭해서 show picture에서 다시 보시길...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1.
이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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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수석고문 로버트 올리버.

대한민국 제 1, 2, 3 대 대통령 이승만
[삶과 추억] 이승만 대통령 수석고문 로버트 올리버
[중앙일보]
입력 2002.02.23 12:13 / 수정 2006.03.10 00:33
지난달 29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로버트 올리버 박사는
대한민국 건국의 숨은 공신이자 미국내 '지한파' (知韓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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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조격인 인사다.
그는 이승만(李承晩)박사의 국제정치고문을 맡아 유엔을 무대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막후에서 전개해 건국의 초석을 마련했고,
건국후엔 대통령
수석고문으로서 한국 실정을 미국 조야에 알리는 메신저 역을 수행했다.
또 李 전 대통령이 가장 속내를 많이 드러낸 측근이었지만 독재의 길로 접어든 그에게
수차례 용퇴를 권유했던 '충신' 이기도 했다.
유영익(柳永益.64)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장은 "한국의 독립 및 건국은 물론 미국의 대한(對韓)
원조에 이르기까지 올리버박사의 공로는 매우 컸다" 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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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묵었던 기숙사 방(1901년 촬영).
김동조(金東祚.82)
전 외무장관도 "건국초기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우리나라의 실정을 홍보해준
'절반의 한국인' 이었다" 고 기억했다.
올리버박사와 李박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1942년 9월 어느날 워싱턴 근교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펜실베니아주 버크넬대에서 수사학을 강의하던 33세의 소장학자 올리버는
67세의 망명 노정객의 독립에 대한 열정에 매료됐다.
올리버는 방한시 인터뷰를 통해 李박사와의 첫만남에서 '절제된 위엄' 에 감복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초대 대통령이 된 李박사는 올리버박사를 각별히 배려했다.
그는 경무대(景武臺)의 집무실 바로 옆에
올리버 박사의 개인 사무실을 마련해 두곤 수시로 흉금을 털어놓았다.
그는 한해의 절반이상을 한국에 머물며 외교문제 뿐 아니라 국내정치 현안까지
李 전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며 해결책을 찾는데
협력했다.
하지만 때론 직언도 서슴지 않아 충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柳소장이 전하는 일화 한토막.
李대통령은 평소 영어연설문은 올리버박사에게 대부분 맡겼으나
54년 워싱턴을 방문할 때는 그에게
원고를 보여주지 않았다.
올리버박사가 수차례 "초안을 보여달라" 고 간청했으나 李박사는 이를 무시하고
상하양원 합동의회에 나가 " '제3차대전을
각오하고라도'
소련과 중공을 견제해야 한다" 는 요지의 강경발언을 했다.
이 연설은 미국 의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李박사에 대한 지지를 철회케 하는 역효과를 냈다.
올리버박사는 생전 두고두고 이를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후 李 전 대통령이 점차 장기집권의 길로 접어들자
그는 미국에서 사신을 보내 5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만류했다.
그러나 李박사가 출마를 강행해 당선하자 59년엔 다시 "장면(張勉)
박사나 조병옥(趙炳玉)
박사를 후계자로 삼을 것" 을 권유했다.
그러나 李박사는 "장면은 애국심도 많고 능력도 있지만 너무 약하고,
조병옥은 무절제한 사생활이 마음에 걸린다" 며 끝내 그의
충고를 거절,
마침내 4.19혁명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하지만 李박사의 하야 후에도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계속됐다.
그는 워싱턴에 '코리안 퍼시픽 프레스' 라는 출판사를 차려
홍보활동을 계속했고
노년까지 한국에 대한 저술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올리버박사와 말년까지 서신을 주고 받아온 李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李仁秀.69)씨는
"건국 전후의 어수선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그는 큰 기여를 했다" 고 전하고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오히려 한국인 이상이었다" 고 애도했다.

미국은 이승만을 죽이려 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추진한 ‘남북 좌우합작 정부’ 수립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입니다.
6.25때도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휴전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이승만을 없애라’는 비밀작전명은 <Ever
Ready Plan>이었습니다.
그때 이승만이 왜 목숨을 걸고 ‘좌우합작’과 휴전을 거부했는지 이제서야 우리는 압니다.
미국, 소련, 북한은 물론,
남한의 정파들도 미-소가 추진하는 좌우합작에 우왕좌왕

▲해방기 건국 투쟁사와 호국 비화를 기록한 책.
현대 인류문명사의 성공신화 ‘G20 대한민국’은 그러나 자신의 탄생 역사조차 모릅니다.
건국의 아버지도 모릅니다.
이승만과 대한민국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국가가 국민교육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초등학교부터
건국 아버지들(Nation Founders: Founding Fathers)의 건국 역사와
국가정신을 필수로 교육합니다.
오늘날 각급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국사와 이승만은 가짜입니다.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세력이 왜곡 조작 파괴한 ‘거꾸로 된 역사’를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 벌어 부자가 되고, 정치투쟁으로 형식적인 민주화는 이루었으되,
수십년간 반국가 교육이 길러낸 국민들은 정체성이 결핍된
자아상실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선진국이 되자고 외쳐봤자 애국의 영혼을 잃어버린 국민은 쇠퇴의 길을 헤매다
자멸의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더구나 현재 한국은 통일의 절호의 찬스를 맞아 좌우투쟁이 해방후보다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이승만의 글로벌 리더십과 자유통일 국가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승만이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나치게 폄하된 인물 중 하나라는 것.
이유는 뭐 여러가지 있겠지만
분명 이유가 될 수 있는 이유긴 하지만
그 이유가 너무 부각되었지
그래서 나머지가 다 가려져버린 결과
대한민국에는 국부가 없다
국부를 만드는 것에는 찬성이야
누가 국부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편견을 버리면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
이것이 지금 시대의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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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록들은 대한민국 수립의 중요한 시기에 일어난
한ㆍ미관계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이승만이나 그의 측근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건ㆍ인물,
그리고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며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다.
날마다 그리고 달마다 진행 상황에 대한 매우 완전하고도 자세한 기록 문서에 근거를 두고
이승만이 맞서야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은
왜, 그를 제거하려 했는지, 일본은 왜 그를 두려워 했는지,
김구는 왜 그의 건국을 반대 했는지,
김일성은 왜 그를 말살시키려 했는지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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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
위스콘신 대학교 ph.D. 시러큐스 대학 교수 ㆍ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승만 대통령 정치고문(1942~1960)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6ㆍ25전쟁 수행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승만 박사를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는 진정 ‘한국의
은인’이었다. 지은책「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
「한국의 비극」「이승만과 국제연합」「한국전쟁 기원」
「중국의 수사학 전통 공자와
맹자」「고대 인도차이나와 중국의 통신과 문화」등이 있다.
<옮긴이>
박일영(朴日泳)
황해도 송화 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수학.
제1차 아시아자유회의 대표, 민주공화당 정구영의장보좌역, 월간지편집인,
숭의여자대학 교수 역임. 지은책으로「나의 회고록」옮긴책으로 존 듀이「철학의 개조」
「민주주의와 교육」등이 있다.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
목차
머리글 로버트 올리버
한국 독자들에게 로버트 올리버
1 암담했던 워싱턴 시절(1942∼1946년)
2 서울의 여름(1946년)
3 실망과 불화의 대립(1946년 겨울∼1947년)
4 신탁통치 찬반의 고비(1947년 가을)
5 워싱턴의 한국 로비(1946∼1950년)
6 국제연합의 수상한 움직임(1947년 겨울∼1948년)
7 어둠에서 광명으로(1948년 봄)
8 정부 수립(1948년 여름)
9 대혼란 속의 행정(1948년 8∼12월)
10 대한민국의 시련(1949년 봄)
11 남하하는 철의 장막(1949년 7∼12월)
12 공산군의 남침(1950년 6월)
13 38도선 이남(1950년 여름)
14 압록강까지(1950년 겨울)
15 실수의 대가(1951년)
16 성채 내부의 분열(1950∼1952년)
17 헌정의 위기(1951∼1952년)
18 반공 포로 석방(1952∼1953년)
19 판문점 휴전(1953년 7월)
20 어지러운 외교 무대(1954년)
21 폐허를 딛고 경제 부흥으로(1950∼1960년)
22 격동의 건국기를 넘어서(1959∼1960년)
코리아 환상곡. Fantasia Koreana
. 지휘자 임재식 Director JaeSik Lim -스패인 오케스트라
위의 음악 끄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