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고궁을 찾아서

국보1호 남대문 내부

까까마까 2013. 7. 10. 13:45

 

 

 

이래사진들은 푸른초원 님이 얼마전에 복구된 남대문을

6월 23일에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찍은 귀한 사진들 입니다. 

 

 

 

 

 

 

학교때부터 항상 헷갈리던 두가지.

국보와 보물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국보는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로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
즉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것 중에 제작연대가 오래 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유례가 드물고 우수하며 특이하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것을 지정한다.


보물은 목조건축·석조건축·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고고자료(考古資料)·무구(武具) 등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중에서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한 문화재를 뜻한다.


이런 백과사전적 의미로 놓고 봤을때 보물과 국보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그런데 비슷한 문화재이면서도,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이고

동대문은 보물 제1호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의식 밑바탕에는 국보는 매우 훌륭한 문화재요, 크고 뛰어나며,

예술적 가치가 굉장함은 물론 돈으로 따져도 상당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국보 1호 숭례문보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이 떨어지고 .....

 

 

 

 

 

 

 

 

 

 

 

 

 

복구전의 국보1호 남대문

 ▲국보1호 남대문

 ▲국보1호 남대문 측면모습

▲국보1호 남대문 내부 천정단청문양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ㅇ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붕괴됨.

현재 복구공사로 2012년 12월 공사완료 예정임.

 

 

 

이래사진들은 푸른초원 님이 얼마전 6월 23일에 복구된 남대문을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찍은 귀한 사진들 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복구후의 남대문

 

 

 

이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촬영-제작- 편집- 푸 른 초 원

 

 

 

 

 

 

 

 

 

 

 

 

 

촬영-제작- 편집- 푸 른 초 원

 재편집=씨밀래

 일부출처=웃믕과 즐거움이 항상 있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