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동영상에는 신학교의 히브리어 교수가
보조 내래이터로 수고하고 계십니다.
일부 중요한 자료는 주석을 SCAN해서 올렸습니다.
지금들리는 이 동영상에는 아주 귀한 갈릴리의 영상물이 있으니
다 보신 후에 재생해서 보세요.밑에 보이는 영상들은
순례자 친구가 찍은 영상으로
일부 성지순례를 이곳에서 해 보시져?.
갈릴리 호수의 고기잡이
요단강, 갈릴리 호수, 사해바다
요단강은 발원지인 헤르몬산으로부터 사해까지의 직선거리가 대략 130㎞이며,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는 약 96㎞이다. 그러나 강의 전체 길이는
하류의 굴곡 때문에 무려 320㎞가 넘는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강의 폭은 약 30m,
깊이는 1-3m 정도이다. 초봄에 비가 많이 내리면 강의 폭은 더 넓어지지만,
강 어느 곳에서도 배가 다닐 수 없다.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다보니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 60여 곳이나 된다.
성서시대에는 요단강에 배도 없고 다리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 여울목들이 전략상 중요한 위치가 되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요단강은 지중해보다 낮은 곳에서 흐르고 있고 낙차도 심해서 흐름이 급하다.
요단강은 해면보다 약 210m 정도 낮은 갈릴리 호수에서 해면보다 약 398m나 낮은
사해로 흐르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낙차가 무려 188m나 되며,
1㎞당 평균 낙차도 약 2m나 된다.
갈릴리 호수는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흘러 들어오는 물을 받아
넓은 호수를 이루고 있으면서 넘치는 물을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흘러 보낸다.
현재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의 물을 퍼 올려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아주 중요한 수자원이다.
사해도 한 때는 죽음의 호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자원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염해' 또는 '롯의 바다'로 불렸던 사해는 큰 호수로써 지중해보다 무려 398m나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한번 유입된 물은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이며, 유입되는 물이 매일 7백만 톤에 이르지만,
요단 계곡의 뜨거운 열기가 증발시키는 양도 그에 못지 않아서 호수 안팎에는
많은 양의 소금 덩어리가 형성되어 있고, 염도가 보통 바다의 5배가 넘는 25%나 되는 곳이다.
사해는 많은 양의 소금뿐 아니라,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많이 녹아 있고,
비누와 비료의 원료가 되는 포타슘의 매장량은 전세계가 100년간 쓰고도 남을 양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해 주변에는 사해의 물에서 광물질을 뽑아내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또 사해의 물은 피부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뛰어나고, 이곳의 진흙은 피부미용과 신경통에 아주 좋으며,
산소의 양이 지중해보다 15%나 더 많고, 또 기후가 건조해서
호흡기 질환 치료에 아주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따라서 사해 근처에는 이런 질병들을 치료하는 특수 병원들이 들어서 있다
갈릴리 호수의 고기잡이
비록 여러 저작자들이 사용한 수 많은 히브리어 전문용어들에 의해서
고기잡이의 중요성이 드러나고는 있다. 하더라도 긴네렛 혹은 게네사렛이
고기가 풍부한 호수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신약에서 뿐이다.
복음서의 많은 기사들이 이 호수를 무대로 하고 있고 또 그리스도의 사역도
이 호수 북쪽의 여러 읍과 동네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제자들 중에 적어도 일곱은 이 호수의 어부출신이었고 이 사실은
고기잡이에 강조점이 놓여 있는 이유를 일부 설명해 준다.
예수님을 배척한 읍들 중 하나요, 또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집이 있었던 벳새다는
"그물의 곳"혹은 "어업"을 의미하였다. 지금도 작은 수효로 잡히고 있는 바
신약시대 이후로 알려진 두 종류의 물고기를 제외하면 오늘날 그 호수의 물고기들은
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알고 있었던 종류들이다. 이 호수의 본토어종은
대략 25종에 달하나 그 중 중요한 것은 불과 몇 안 된다.
가장 이름이 난 것은 "성 베드로의 고기"로 알려진 틸라피아(Tilapia)종으로서
성경시대에 주로 많이 잡히던 것이 바로 이 종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 당시의 총 어획고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오늘날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해서 건져 올리는 탈라피아의 연간 총 어획고는
대략 300톤에 달하고 그 밖의 종류는 대략 1,000톤에 달한다.
이 총 어획고 중에서 복잡한 현대장비로 밤에 건져 올리는
정어리(Aca- nthobrama terrae sanctae)는 무려 800톤에 달한다.
요단 골짜기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긴네렛 호수면보다 900피트 가량 더 높은
"훌레"라고 하는 상류 호수가 나오는데 여호수아 11:5에는 "메롬 물"로 언급되어 있다.
그 당시에는 훤히 트인 호수였으나 오랜 세월에 제대로 가꾸지 아니한 주변 산들에서 깎여 내린 퇴적토로
점차 메꾸어져서 일련의 늪지와 연못들로 변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에 그 전 지역을 매립하여
농지로 바꿀 때까지만 해도 그 곳 연못들에서는 많은 고기가 잡혔다.
비록 구약성경이 고기와 고기잡이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선지서들은 우리가 고기잡이 방법들에 관하여 어떤 암시들을 얻어낼 수 있는 많은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히브리어 레쉬드(resheth)는 그물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또 에스겔 32:3의 문맥은
그 용어가 어떤 고기떼나 특별한 고기를 잡기 위해서 던지는 투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케렘(cherem)은 훨씬 더 큰 그물로서 어쩌면 오늘날에 흔히 사용하는 예인망(후릿그물)과 비슷하였을 것이다.
(아래 헬라어 싸게네(sagene)부분을 보라).히브리어 마크모르(makm- or)와 미크마르(mikmar)도
역시 큰 그물들을 가리키는데 이사야 19:8과 하박국 1:15-16에서는 "그물"과 "저예망"(A.V.),
혹은 "예인망"(R.S.V.), "저인망"(N.E.B.) 등 (한글개혁판은 일반적으로 "그물")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 그물은 또한 아라비아산 오릭스(Oryx,영양의 일종)을 잡기 위해서 광야에 쳐두기도 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투망을 던지는 모습
복음서들에 나오는 헬라어 용어들은 대부분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딕튀온(Diktuon)은 일반적으로 그물을 가리킬 수가 있다.
예, 마태복음 4:20,"(베드로와 안드레가)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들은 방금 투망을 던지고 있었다. 직업적인 어부들로서
그들은 한 조의 표준 그물들을 다 갖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일반적인 용법은 그들의 그물들을 씻고 깁는다는 언급들에서도 역시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속건성의 인조섬유로 된 실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것을 씻고 말려서 수선하는 일이 훨씬 더 간편해졌다.
닥튀온은 또한 오늘날 자망으로 부리우는 것과 같은 보다 특별한 그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가지고 있던 그물은 오직 이 사건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그 말은 헬라어로 암피블레스트론인데 보통은 지금도 어떤 열대지방,
특히 얕은 물가나 작은 호수에서 사용되고 있는 투망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투망은 원모양으로 되어 있고 끝 부분에 돌아가며 작은 주들이 달려 있으며
한 가닥을 어깨에 걸치고 나머지 부분을 한 손으로 추려잡은 다음 몸을 돌리면서
물 위에 원을 그리며 평평히 퍼지게 던진다. 끝에 달린 추들은 그물을 신속히 바닥에 가라앉게 한다.
일단 가라앉으면 그물 중심에 연결된 줄을 서서히 잡아다녀서 그 안에 갇힌 고기들을 건져 올린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옛적에 고기잡이 방법을 보여주기 위하여 갈릴리 호수에서 이따끔식 이 투망을 던지고 있다.
헬라어 싸게네는 마태복음 13:47에 단 한번만 나오는데 그 곳에 보면
천국이 그물에 비유되고 있다. 이 그물은 이제 일반적으로 길이가 수백 피트에 달하는 예인망으로 간주된다.
그러한 그물은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물고기를 다 몰아잡을 수가 있다.
따라서 비유에서 지적되고 있는대로 일단 잡은 고기는 좋은 것과 못된 것으로 가려진다
갈릴리바다(호수)
최초의 명칭이 긴네렛(수13:27)이다
갈릴리바다는 길이가 21km 폭이 14km인 호수이다
호수 둘레는 약 50km정도가되고
헐몬산에서 발원한 물이 북쪽으로 흘러들어 온 뒤
요단강을 통해 사해로 빠져나간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불렀던 장소(마4:18-22, 막1:16-20)이며
수천명의 군중들을 불쌍하게 여겨
호숫가에서 먹을것을 나눠주던 기적의 장소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바다위 물위를 걸으셨고(요8:16-21)
폭풍을 꾸짖어 잠잠케 하기도 하셨다(마8:23-27)
이스라엘은 대부분이 황토색 황무지에 나무가 자라지않는다
이 건조한 나라에 맑고 푸른 물의 갈릴리 호수가
있다는것이 신기하다.
이 호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악기
수금처럼 생겼다. 이 악기를 히브리어로 긴놀(Kinnor)
이라 부른다.
구약 당시 갈릴리는 호수의 이름이 아니라 호수의 서편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릴리는 호수만을 지칭하는 이름이되었다.
갈릴리호수를 가면 꼭 들르게되는 곳이
베드로 고기를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서 빵과 함께 음식이 나오는식당이다
이곳에서 성서의 베드로를 생각하며 음식을 먹으니 감회가 새롭다
갈릴리 호수엔 수십종의 고기가 잡히나
유독 순례객들에게는 베드로고기가 의미가 있기에 특별한 음식이 되고있다.
갈릴리 호수
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수13:27)로, 신약에서는 게네사렛 호수(눅5:1), 갈릴리 바다 혹은 디베랴 바다 (요6:1, 마4:18)로 불리운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담수호입니다. 호수의 둘레가 약 53km 이고, 남북으로 21㎞, 동서로 11㎞이며 면적은 대략 166km²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갈릴리호수는 -210m이고 바다의 수심은 평균 212m이다
헬몬 산으로부터 흘러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이 저장되어 있는 이 물은
이스라엘 국민의 수원이 되고 있고 젖줄이라 말할 수 있다.
갈릴리 하구 지역은 예로부터 매우 기름진 땅과 풍부한 수량으로 농사에 적절한 지역이나
그 이외의 지역들은 낮은 곳의 이 물을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사용가치가 없었다고한다
갈릴리 호수로 내려나는 중에 보이는 집들이 참 아름답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갈릴리
지방에서 행해진 24회의 이적들 가운데
18회가 바로 이곳 호수에서 행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유명한 일곱가지 비유를 바로 이 호수 위에서 가르쳤습니다(마13:장).
이 호수는 해수면으로부터 약 209m가량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심의 평균 깊이는 약 26m, 가장 깊은 곳은 무려 43m라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수심이 깊어 보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이 호수에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여 제자들이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요21:6).
그래서 갈릴리 호수는 분명 호수(lake)임에도 바다(sea)라고 불리울만큼 웅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누가만이 호수(lake)로 정확히 표기했고(눅5:1), 구약이나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모두 바다(sea)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하긴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에서는 바다라고 부를만도 했었지요.. 또한 이곳에는 물고기가 풍부했습니다.
이렇게 바다라고 불리울만큼 큰 호수이다 보니까 잠잠하던 호수에 갑자기 바람이 불면 바다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이럴때는 바다가 미쳤다고 말하게 되는데, 사실 이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어부들도 언제 그러한 바람이 불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신약에서도 이런 풍랑과 그 풍랑을 잠재우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마8장).
사진에서 보듯이, 갈릴리 지방에선 큰 나무가 별로 없는 반면 석회석이 풍부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선 예수님의 직업이 텍톤(tekton)이라고 했는데(막6:3), 본래 텍톤이라는 헬라어는 물론 나무나 돌을 쓰는 장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위와 같은 이 지방의 여건을 고려해볼때, 예수님의 직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대패를 미는 목수보다는, 돌을 다듬는 석공에 가까왔다는 성서학자들의 견해가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직도 갈릴리호수 주변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을 꾸려가는 어부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어부였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4제자를 이 호수에서 불렀습니다(마4:18).
갈릴리 호수 주변의 봄 풍경입니다..주변 풍광도 이만하면 뛰어난 편이지요?
가장 최근에 찍은 갈릴리 호수 주변 전경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아침 풍경입니다. 구름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빛이 인상적입니다..
일몰인가 일출인가 잘 모르겠는데요, 암튼 묵상에 젖게하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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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날은 안개가 끼어있어 맑은 날처럼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갈릴리에 왔다는 행복감이
어찌나 넘치던지~
신약성경에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요7:49)로 규정하고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요7:52)고 확신하기도 했다
또 베드로는 '갈릴리 사람'(막14:70)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 배의 잔해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베드로가 고기를 잡던 당시의 배와 비슷한 규모의 배에서 한컷 찰칵~
예수께서는 이곳을 중심으로 약 12개 마을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셨으며
그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6명(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마태)이 이곳 갈릴리 출신이다
선상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가 준비되어있다
수위권 교회에서 바라다보는 갈릴리는
지금도 예수님의 발자국이 찍힐것만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예수를 생각하며
믿음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할것 같다.
서기 17년에 갈릴리 호수편에 디베랴라는 도시가 건설되었다.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가 세운 도시였다.
당시 디베랴는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어서 자연 갈릴리 호수 이름도 디베랴호수로 불리기도했다.
성경에 호수 이름이 갈릴리, 게네사렛, 디베랴 등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것은 이때문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해발 -210m의 언덕을 넘어야지 다음 행선지가 나오지요~
서기 17년에 갈릴리 호수편에 디베랴라는 도시가 건설되었다.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가 세운 도시였다.
당시 디베랴는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어서 자연 갈릴리 호수 이름도 디베랴호수로 불리기도했다.
성경에 호수 이름이 갈릴리, 게네사렛, 디베랴 등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것은 이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Sarotherodon galilae
아래 사진은 Sarotherodon galilaeus - 갈릴리 역돔 (베드로 고기)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 고기와는 조금 다를수 있다.
갈릴리 호수는 거대한 담수호로 여러 종의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보통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베드로 고기는 못생기고 값도 저렴한 Bass종으로 많이 인식하고 있지만
갈릴리 역돔 역시 베드로 고기다.
Tilapia라고 해서역돔 역시 저급으로 불리우지만 Sarotherodon galilaeus는 갈릴리우스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주로
요단강. 나일강 근처에서 서식하는 어종이다. 조금 검은 빛을 띄기도 하며 몸집도 40cm로 큰 편에 속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푸른종의 역돔과는 질적으로 많이 차이가 난다.
맛도 물론 꽤 있고 핑크빛이 도는 살색이 훨씬 더 다른 역돔종들과 차이를 보이는 물고기다.
한국에서는 90년대초 양식에 성공해서 전국에 몇곳의 양식장 및 식당이 생겼지만
현재는 몇몇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기의 비린내가 없는 특징이 있고,
좁은 수조에서는 몇시간 이상을 견디지 못한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틸리피아라는 한 종으로 민물 역돔을 구별하였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역돔의 종류는 3종으로 나뉘게 되었다. 각종마다 뚜렷한 특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급 역돔의 대표격인 틸리피아 종 때문에 민물 역돔의 이미지는 많이 손상되어 있는 편이다.
대중들도 민물 역돔은 저급 종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갈릴리지역에 대하여
(히)Ha-Gali
1 세기의 유대계 로마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구릉으로 이루어진 갈릴리 지방 경계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곧 서쪽으로 아코(아크레)와 갈멜 산, 남쪽으로는 사마리아와 베트셰안(시토폴리스),
동쪽으로는 트랜스요르단, 그리고 북쪽으로는 고대의 바카(아마도 지금의 베제트) 지역 일대로
지금 이스라엘·레바논 국경과 대체로 들어맞는 경계 부근까지가 갈릴리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지리학자 몇 사람은 북쪽 경계 부분을 리타니 강(레온테스 강)까지 좀더 넓혀서 보기도 한다.
갈릴리는 상·하 두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상(上)갈릴리(주요도시는 제파트)에는
좁은 협곡과 골짜기 길들을 사이에 두고 높은 봉우리들이 치솟아 있고,
하(下)갈릴리(주요도시는 나사렛)는 낮은 구릉지대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족은 갈릴리에서 끝까지 저항했다.
〈판관기〉 1장 30~33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뒤에도
유대인들과 가나안족이 갈릴리에서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린 때(BC 10세기)에 갈릴리는 확장된 통일왕국의 일부였으며
그뒤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영역에 들어갔다.
BC 734년 아시리아 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가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후
갈릴리의 유대인 다수가 추방되었다. 그뒤 갈릴리는 예수가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또 대중 앞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뒤 대부분 시간을 보낸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적들 대부분이 행해진 곳도 바로 갈릴리였다.
로마가 제2성전을 파괴한(AD 70) 뒤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지던 유대 학문의 중심지가 갈릴리로 옮겨졌다.
아랍에게 정복당한 뒤(636) 갈릴리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 제파트는 중세시대에 카발라(Kabbala)라고 부르는
유대 신비주의의 주요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 시온주의자들이 옮겨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1882년 세워진 로시핀나(히브리어로 '모퉁이 돌'이라는 뜻)라는 마을을 시작으로
갈릴리에는 정착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정착촌들은
1920 년 영국 위임통치령에 갈릴리 지역 모두를 포함시키는 일에 있어 주요 교섭대상이 되었다.
1947년 11월의 국제연합(UN) 분할안은 갈릴리를 이스라엘과
끝내 수립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아랍 국가로 나누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1948~49년의 아랍-이스라엘 전쟁 후 갈릴리는 전부 이스라엘로 넘어가게 되었다.
1950년대 들어 갈릴리 해 북쪽 훌라 호(湖) 습지가 말라버리면서
팔레스타인의 물리적 지형은 크게 달라졌다.
훌라 강 유역은 기름진 농경지로 변했으며 요르단 강 상류는 곧은 물길이 되었다.
us - 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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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음악=씨밀래
출처= http://hompy.dreamwiz.com/cool6028 ☆ 갈릴리 호수 ☆
GEORGE CANSDALE,양지꽃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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