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햐여/예수님의 향기

해롯의 궁전(HERODIUM)

까까마까 2014. 3. 31. 16:00

 

 

제9탄입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느낀바는

해롯은 위대한 건축가요 통치자 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헤롯의 삶에는 선과 악과 독창성과 혼란이 섞여있는 것 같습니다.

헤롯 대왕이 무자비한 군주이기는 했지만 뛰어난 건축가며

머리가 뛰어난 책략가 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더 투자해서 집중적으로 조명해 봤습니다.

교회당은 많이 보셨을것 같아 흔치않은 발굴터를 올립니다. .

글이 좀 길어서 글 읽기가 귀찮으시면

사진만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적당한 동영상이 없어서 영어로 된 타큐를 올립니다.

그런데 꽤 볼만합니다.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박윤선 박사님과 차문제 목사님의 주석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해롯의 궁전-HERODIUM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해롯 성전은 커다란 금 판으로 사방이 덮여 있어서

태양이 떠오르면 이내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그 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마치 햇빛을 직접 볼 때처럼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으로 덮여 있지 않은 부분은 모두 새하얀 색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눈 덮인 산처럼 보였다.”

 

 

 

 PANORAMA

 

 

 

 

 

HERODIUM

 

 

 

 

 

 

Herodium은  유대광야에서 제일 높은 꼭대기에 있는

해발 758 meters (2,487 ft)에 있는 궁전 입니다.

Herod 대왕이 Hasmonean 과 Parthian 전쟁에 이긴 기념으로

그 터위에 BCE 40년에 세운

예루살램 에서 12 km 남쪽에 위치한 궁전 입니다. 

 

 

 

 

베들레헴의 남동쪽 12km지점 유대광야에 BC 24년경

헤롯은 베들레헴 근교에 초호화판 여름별장을 건립했습니다.

위에 올라가면 이 분화구같은 산은 사람이 만든 것임을 깨닫게 되며

정교하게 요새화 된 헤롯대왕의 궁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형 별채입니다.

높이 758m의 헤로디움은 마치 절단된 원뿔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아방궁 같은 궁실과 사우나 시설과,

3개의 거대한 물저장고가 지하에 숨어 있습니다.

 

이 높은 곳까지 물을 대기 위해 에브랏에 위치한

'솔로몬의 물저장고(pool)'를 연결시켰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헤로디움 안에

정교하게 남겨진 토굴형태의 온탕입니다.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간판을 찍었습니다.

입장료와 관람 시간표입니다.

(헤로디움도 이스라엘 국립공원의 하나이고

대부분의 국립공원 입장 시간은 같습니다)

 

 

 

  이방인인 두매 출신의 헤롯은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헤롯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옛 성전 터전위에 B.C.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 공사는 A.D.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이같은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것을 무너뜨리면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 하셨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에

상징에 불과한 헤롯 건물 자체를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체이신 당신ㄴ이 죽으면

삼일만에 다시 사실 것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운 이 헤롯 성전은

그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은 믿지 않은 불신의 결과

그저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A.D.70년 완공된지 불과 수년 후에 영원히 함락되고 맙니다.

 

 

 

 

가이드 선생의 설명을 모형도를 보면서 듣습니다.

길이 나있는 오르쪽에 ROYAL THEATRE가 보입니다.

 

 

 
 헤롯 성전(聖殿)은 이스라엘 역사상 3번
 건축(建築)된 그 성전 중 마지막 것이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이란 다른 이방종교에서처럼
 여러 예배의 처소(處所)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절대 초월자이신 유일신(唯一神)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 백성 중에 임재하심 또는 임재하여 계시는 곳을
 상징 (象徵)하는 유일한 처소(處所)였습니다. 
 

 

 

 

올라가면 있을 성전 꼭대기의 모형도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각 성전은 항상 그 시대의
종교적(宗敎的), 정치적, 사회적 구심점(求心點)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각 성전(聖殿)에 대한 전반적 이해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의 종교 문화 전반(全般)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重要)한 열쇠가 됩니다.

헤롯 성전은 B.C 19년 경에 건축 되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그 기초 골격(骨格)은 완성 되었지만
그것이 최종 완공된 것은 A.D 63년 경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당시(當時)에는 헤롯 성전이
아직 미완성 상태(未完成 狀態)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헤롯 성전(聖殿)은
당시 이스라엘 종교 생활의 구심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공생애 사역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헤롯 성전에 관한 전반적인 사실들을 살펴 봄으로써
복음서의 배경으로서의 신약 시대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
정치적 배경(背景)들을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헤롯 대왕(B.C37-4)성전 건축을 개시할 당시
 이스라엘에 성전(聖殿)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즉 B.C 516년에 건축된 제2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기존에 있던
 제2 성전을 헐어버리고 새롭게 재건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방 이두메 왕가 출신으로서
 로마 제국의 임명에 의해 팔레스틴을 통치하게 된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헤롯이 이방인(異邦人)이라는 이유로
 그의 통치에 대해 강한 반감(反感)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헤롯이 로마 황제에게 유능한 통치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일이 필수적(必須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적 열정이 매우 강한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새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 입니다.
 
 또 사실 당시에 있었던 제2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과거 제1 성전인 솔로몬 성전에
 비해 매우 초라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 의해
 수 차례 모독을 당함으로써 대부분(大部分)의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외면(外面)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 때문에 성전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종교적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헤롯은 새로운 성전을 재건(再建)함으로써
 자신과 정치적으로 결탁한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다시 성전을 중심(中心)으로 일반 민중(民衆)들에게
 더욱더 큰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기를 바랬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팔레스틴
 통치(統治)가 수월해 지기를 바랬습니다. 

 

 

 

 

 원형극장 뒤에있는 것이 ROYAL CHAMBER 입니다.

 

 

 물론 이같은 동기에서 헤롯이 성전 재건 사업을
추진(推進) 하기는 했으나 스룹바벨 성전 시대 이후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잃어 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에게

성전 재건을 빌미로 새삼스럽게 획기적인 종교,
정치적 영향력(影響力)을 끼치기는 힘들었습니다. 

 

 

 

 

 

 

 

 

 Hebrew University고고학 명예 교수이신 PROF.Ehud Netzer가

HERODION을 히브리 대학 고고학 연구소의후원 하에  발굴 하셨는데

이 궁전을 세울 때 목적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극장을 지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PROF. EHUD NETZER는

세계적인 ARCHEOLOGIST로 MASADA,JERICHO,CAESAREA,ZIPPORI등을

발굴하신 분인데 2010년에 HEROD TOMB을 발굴하다

20FT 위에서 떨어지셔서 돌아가신, 일을 많이하신 학자 님 이십니다.

 

 

 

그리하여 헤롯 성전은 다만 헤롯 왕가의 통치(統治)를
지지했던 헤롯당과 헤롯에 의해 임명되었던 대제사장과
그 수하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의 주관(주관)에 의해
정규적인 동물 희생(犧牲) 제사가 드려진 종교 의식적인
측면(側面)에서만 그 의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헤롯 성전이 건축(建築)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통치(統治) 18년째인 B.C19년 이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본체와 성전 뜰은
 착공한지 10년 만인 B.C 10년 경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 공사(外壁 工事)는
 성전 건축 개시(建築 開始) 46년 만인 A.D 26년 경,
 곧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개시하실 무렵에야
 비로소 시작(始作)된 것으로 추측(推測)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 수비 요새인 안토니아 망대를 비롯하여
성전 외벽(外壁)과 각 모퉁이의 망대들까지 모두 완공된 것은
성전 건축 개시(建築 開始) 83년 만인 A.D 63년 경이었습니다.

한편 A.D 49년 경 유대 주재 로마 총독
벤티디우스 쿠마누스(48-52년)때에 로마
병사가 유월절에 성전을 모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는데 많은 유대인의 참사로
사건(事件)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GUIDE에게 설명을 들은 후 곧바로 헤로디움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최근에서야 헤롯의 무덤을 발견하고 발굴공사가 한창입니다.

헤롯 무덤의 모형도로,헤로디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오른쪽에 4M 높이의 플라스틱 Herod's tomb모형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GUIDE에게 설명을 들은 후 헤로디움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또 A.D 65년 경 유대 주재(駐在) 로마 총독인
플로투스(A.D65-70년)가 헤롯 성전의 창고에서
보물 몇 개를 가져갔다가 유대인들의 큰 반란을 사게
되었고 이것이 비록 식민지 체제로나마 국가로서의 유대의
최종 멸망을 초래한 유대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A.D 70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의 아들
디도(Titus)의 예루살렘 함락에 의해 헤롯 성전은 전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헤롯 성전은 완공된 형태로는
불과 7년 밖에 존립(存立)하지 않은 셈이 됩니다. 
 

 

 입구를 지나 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 구절에서 찾아 보세요.

 

 

 

 한편 디도(Titus)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당시
로마 군병들 사이에 헤롯이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의 돌과 돌 사이에 막대한 양의 은 금을 넣어
두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병사들은 그 금과 은을 찾아내기 위해
성전(聖殿)의 돌 하나 하나를 다 파헤쳤는데 이로써 결국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헤롯 성전의 전체 규모(規模)는 솔로몬
성전보다 오히려 크고 웅장(雄壯)했습니다.

 

 


먼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체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은 성소의 높이가 30 규빗(45.6cm),
자성소(至聖所)의 높이가 20규빗 인데 반해

헤롯 성전이 성소(聖所)와 지성소의
높이는 각각 60 규빗 이나 되었습니다.

 

 

 

물론 성전 본체전체의 길이와 넓이는 둘 다 동일 했습니다.
특히 헤롯 성전의 현관(玄關)의 높이는 100규빗에 이르며

현관 정면과 동편(東便)이 금판(金板)으로 꾸며져
그 화려하기가 다른 어떤 성전에 비할 바 아니었습니다.

 

 

 

요새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고

10분 정도 올라가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흔히 헤롯대왕으로 불리는 헤롯은 여리고에서 죽어

이곳 베들레헴 근처 유대광야에 있는 헤롯자신이 유사시

피난처로 만든 요새인 해로디움에 주전 4년에 묻혔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에
각 단계별로 접근할 수 있는 자의 자격(資格)을
엄격(嚴格)히 제한 함으로써

죄인과 하나님의 근본적인 단절(斷絶)을 상징하며
나아가 죄인이 그 속죄를 구하러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과 그에 요구되는 자세의 엄정함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는 이 헤롯 성전의 원형인 모세 시대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聖殿)의 건축 양식(建築 樣式)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직접 규정하신 규례 들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宗敎 指導者)들은
이런 규정의 참 정신은 도외시하고 이런 성전에서
종교 의식을 집전(執典)하는 자신들의 종교적 특권과
배타성(排他性)을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성소와 지성소(至聖所)로 구성된 성전 본체는
성전 전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정상 중간 쯤에서 올라와서 찍은사진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면서..

 

 

 

 


성전 본체를 비롯하여 성전 뜰을 다 포함하는
성전 외벽에 둘러싸인 헤롯 성전 지대 전체의
총 면적(面積)은 141.638㎡였습니다.

 

 

 

 


그리고 서쪽 성벽(城壁)의 총길이는 479m,
북쪽은 306m, 동쪽은 469m, 남쪽은 276m로서
전체 모양은 약간 삐뚤어진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 올라와서 첫 지점에서 가이드의 설명

 

 

 

 

 

 

 

 

 

 

 

 

산 정상에 있는 모형도

 

 

그리고 성벽(城壁)의 높이는 약29m가 되었습니다.

한편 과거의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에서도 성전을 둘러싼 성벽이 있었으나

그 크기나 규모에 관해서는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遺蹟)이 없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으며
헤롯 성전의 외벽 보다는 훨씬 적었을 것으로 추측 됩니다.

 

 

 

 

 

 

헤롯 성전의 본체(本體)의 기본 구조(基本 構造)는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의 구조와 동일 했습니다.

다만 그 크기나 웅장함에 있어서 헤롯 성전은
다른 성전에 비해 월등(越等)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성전 건물 전체는 6구획으로 이루어
졌으며 각 구획마다 그 높이가 각각 달랐습니다.

 

 

해로다움 간판이 보입니다.

거의 요새애 도착을 해 갑니다

 

 

 

 

 

 

 

 

 

 

헤롯의무덤은 주후 67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1차 반란

(67-70년,예루살렘성과 성전이파괴됨)시,

이곳으로 피신해온 유대반란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헤롯의친척 것으로 보이는무덤잔해들도 발견이 되었습니다

 

 

 

성전 외벽
 
 이 외벽의 동, 서, 남쪽에는 각각 2개의
 성문이 있었고 북쪽에는 1개의 성문만 있었습니다. 

 

 

 

 

 

 

 

 

 

 

 

본관으로 가기전에 남쪽에 집합해서 설명을 듣습니다.

 

 

 

 

 

 

 

 

 

 


 
 혹자(或者)는 남쪽에 3개 서쪽에 4개의 문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4장을 합친 파노라마로 보는 해롯궁전 터

 

 

 

 

 

헤로디움은 동,서 남, 북, 각각에 성루가 있어 견고한 성채였음을 알 수 있고,

재는 그 터만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성전 수비 요새의 역할을 하던 안토니아 망대는
성벽 북동쪽 모퉁이에, 그리고 감람산으로 통하는
솔로몬의 보좌라고도 불리는 금문(Golden Gate)은
동쪽에 위치(位置)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행각도 동쪽 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많이 보존되어 남아있는 벽은 서쪽 벽으로서
소위 "통곡의 벽"이라 불려지는 곳도 이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포로시대 이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단일 중앙
 성소로서의 성소의 중요성은 상당히 격감되었습니다.
 
 그 근본적(根本的) 이유는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이
 대부분 회당을 중심으로 한 각 마을 단위로 공동체
 또는 디아스포라 공동체 중심으로 전개 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단지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헤롯 성전의 경우는 이방인 출신인 헤롯이
그 성전(聖殿)을 건축(建築)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에세네파 사람들까지 성전에서의 제사를 그렇게
중요(重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희생 제사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제사를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예배처에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PANORAMIC VIEW FROM TOP OF MOUNTAIN

파노라마 뷰 입니다.

O

 

 

 

 

더욱이 초대 기독교 공동체(基督敎 共同體)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주의 구속사역을
예표하는 희생 제사의 유일한 장소로서의 성전의 의의는
종결되었고 더욱이 헤롯 성전 파괴 예언에 의해
가견적 건물로서의 성전의 중요성은 결정적(決定的)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신약 시대에는 각 성도의 전 인격이
곧 성전이 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헤롯 성전이 갖는 신학적(神學的) 의의는
이전 솔로몬 성전 시대의 그 성전이 갖는 의의에
결코 비할 바 못됩니다. 
 

 

 

헤롯의 무덤 근처에 있던 소규모 원형극장(아래)과

윗 부분의 화려한 극장부속 건물입니다.

헤롯은 이곳 요새에다가 로만식의 목욕탕을 만들었는데, 온탕과 냉탕으로 나누었습니다.

헤롯이 세운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유적지에는 예외 없이

이런 로만식 목욕탕을 만들었습니다

헤로디움 자체적으로 물이 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다가 이런 목욕탕을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 성전은 여전히
그 시대 유대인들의 종교, 정치 중심지로서
그리고 신약 성경(新約 聖經)의 한 무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 중에 임재하여 계심
또는 임재(臨在)하여 계시는 처소의 상징으로서의
성전(聖殿)의 의의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성령이 각 성도에게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단순히 상징의 차원(次元)을 넘어
실제적(實際的)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해롯대왕은 예루살램에서 적의 침공시 속히 피신하기위해

이 궁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베들레헴 근처 유대광야에 있는 헤로디움은

벳사훌(목자의 뜰 도시. 현재 센타 공사 현장)에서 약 8킬로 동쪽에 있는 758미터의

산 꼭대기의 요새로 주전 200년경 헤롯 대왕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 헤롯)이 별장겸 요새로 건축한 곳입니다.

헤롯은 이두메 출신으로 온전한 유대인이 아니였기에

왕권 유지에 대해 항상 신경을 썼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피난할 수 있는 요새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유대광야에 헤로디움을 만들었지요.

 

 

 

 

위치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지역이며,

주후 70년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유대 반란군이

이곳에서 로마군에 강하게 저항을 했었고 이 때 성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132년 2차 로마에 대한 반란 때에 다시 이곳에서

유대 반란군이 본거지로 삼아 로마군과 싸웠습니다.

산의 정상 부분에 인위적으로 봉우리를 깍고

축대를 쌓아올려 평평하게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헤로디움에서 헤롯대왕의 무덤이 발견되어 현재 계속 발굴 작업중입니다.

아직은 현장에 들어갈 수 없고 가까이 에서는 발굴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은 여리고에서 죽은 후 이곳 헤로디움에 장사 되었다고 했는데,

 최근에서야 헤롯의 무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21세기 고고학에 있어 중요한 성과이지요.

 

 

 

 

 

 

헤로디온의 동쪽 타워

 

 

 

아랍권이 7세기경에 정복했을 당시에는 이곳은 버려진 상태로 있었는데

그당시엔 Bedouin유목민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방인의 뜰

여인(女人)의 뜰과 이방인(異邦人)의 뜰 사이에는
약 3 규빗(역 1.2m) 높이의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으며
울타리 꼭대기에는 이방인들이 이 울타리를 넘을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적힌 팻말이 달려 있었습니다.

한편 환전상들과 희생 제물을 매매하는 장사꾼들이
위치했었던 곳도 바로 이곳 이방인(異邦人)의 뜰이며
두 번에 걸쳐 예수께서 이곳 장사꾼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祭司長)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 사이에는
약 2 규빗(90cm) 높이의 분리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곳에서 제사장들이 집행하는
동물 희생 제사(動物 犧牲 祭祀)를 보았습니다.



 

 

 

 

 

 

 

 

 

 

 

 

 

 

 

 

 

 

 

 

 

 

 

 

 

 

 

 

 

 

 

주위 경관을 관찰후 본관으로 내려갈 준비 끝

 

 

 

 

 

 

 

본 회당이 있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에서 15계단, 약 3m 아래 위치해 있습니다.
유대 여인들에게만 출입(出入)이 허용(許容) 되었습니다.

 

 

 

 

 

 

 

 

 

 

 

 

 

 

 

 

 

물 저장소가 있는 동굴로 들어가는 문

 

 

 

 

 

 

 

 

 

 

 

 

 

 

 

 

 

 

 

 

보이는 길의 왼쪽이 DINNING ROOM으로 썼던 터 입니다.

위 오른쪽 하방이 ROYAL LIVING COURT입니다

 

 

 

 

 

 

 

 

 

 

 

동쪽 에서의  본 VIEW

위로 보이는 곳의 오른쪽 하방이 ROYAL LIVING QUATERS 입니다.

 

 

 

 

 

정가운데  왼쪽이 남쪽을 바라본 COLONNADED 정원 입니다.

 

 

성전 본체에서 12계단, 약2.5m를 내려 가면 이르는 곳 입니다.
제사장들에게만 출입이 허용(許容)된 곳이며 이곳에서 주로
동물 희생 제사(動物 犧牲 祭祀)가 이루어 졌습니다.

 

 

 

 

 

 

 

 

 

 

 

 

 

 

 

 

가장 심했던 3차 REVOLT때의 미크베(유대인 정결 의식을 행하는 물 저장소)입니다

 

 

 

 

 

 

 

 

 

 

 

 

 

 

 

 

 

 

 

 

 

 

 

 

 

 

 

 

 

 

 

 

참으로 물이 귀한 곳에서도 대규모의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지배층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고,

 

 

 

 

 

 

 

 

 

원형 그대로  일부가 보존 되여있는 프래스코화 입니다.

 

 

 

 

 

 

 

 

 

 

ORIGINAL 프레스코가 보이는 BATHHOUS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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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안에 있는 유대인 회당터 입니다

 

 

 

 

 

 

 

 

 

 

해로디온의 전면뷰 입니다.

 

 

 

 

 

 

CONTRAST를 좀 많이준 거임

 

 

 

 

 

 

EASTERN TOWER OF HERODION입니다.

 

 

 

 

 

 

 

 

HERODIAN UPPER COMPOUND 입니다.

 

 

 

 

 

 

 

 

 

 

발굴현장 전면도

 

 

 

위에서 본 목욕탕의 모습입니다

 

 

 

 

 

 

 

북쪽궁의 LOBBY

 

 

 

 

 

 

 

 

 

 

 

 

 

 

 

 

 

 

해로디움 정상에서 본 유대광야의 모습입니다.

 

 

 

 

 

 

 

 

요새 정상에서 본 모습입니다

 

 

 

 

해로디움 정상에서 본 유대광야의 모습입니다.

 

 

 

 

정상에서 본 베들레헴의 전경입니다

 

 

 

 

정상에서 본 드고아(눈물의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의 모습입니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현재는 유대인 정착촌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변의 팔레스타인 마을들과 대조되어 보입니다

 

 

 

 

 

 

 

 

 

 

 

 

정상에서 본 드고아(눈물의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의 모습입니다.

 

 

 

 

 

 

 

 

 

 

 

 

 

 

 

 위의사진 20장을 PANORAMA로 엮은 것

 

BETHLEHEM의 북서쪽이 보이는 PANO VIEW입니다.

 

 

 

 

 

 

 

 위의사진 20장을 PANORAMA로 엮은 것

 

 

 

 

 

 

 

 

 

 

11장으로 맹근 PANO VIEW입니다.

20장으로 엮은 것과 별 차이 모르겠음.

 

 

 

 

 

 

 

 

 

 

 

 

 

 

 

 

 

 

 

 

 

 

예루살램까지 다 보이는 전경입니다.

북쪽으로는 올리브 산이 있고 남서쪽으론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이라고 하는 곳이

보인다고 하는데...

 

 

 

 

 

 

많은 양들이 저 멀리 밑에 있었는데 LENS를 바꿔 끼는 동안에 놓치고

양치는 목자를 살짝 옆모습만 찍었네요.

 

 

 

 

 

 

 

해로디움 정상에서 본 유대광야의 모습입니다.

 

저 멀리 요르단 산 봉우리가 보이고,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바로 사해 입니다

 

 

 

 

 

 

위의 사진 29장을 PANORAMA로 맹근 거임..

 BETHLEHEM의 NORTHWEST쪽 입니다.

 

 

 

 

 

 

PANO VIEW임다.

 

 

 

 

 

 

 

 

밑에 보이는 LOWER HERODIUM의 전경입니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현재는 유대인 정착촌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의 사진판이 희미해서 확대하지 않았음.

 

 

 

 

 

 

 

화려했던 BATH HOUSE의 모형도

 

 

 

 

 

 

 

 

 

 

 

 

 

 

 

 

 

 

 

 

DOME AT HERODIUM.

 2천년된 OLD DOME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했던

ROMAN BATH의 DOME입니다. 

가이드 님이 보고있는 DOME

 

 

 

 

 

 

 

 

 

 

 

 

 

 

 

 

 

 

 

 

 

 

 

 

 

 

 

 

 

 

 

 

지하 터널로 들어가는 표지판

 

 

 

 

 

 

 

이제 이곳 산 정상에 있는 요새에서 어떻게 물을 저장하고, 사용하고 했는지, 물 저장소를 보려고 합니다.

 

자 이제 계단을 통해 물 저장소로 가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물 저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으로 해서 내려 가야 합니다

 

 

 

 

 

 

 

 

연석회암 으로 되어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하얀가루로 부석 부석 잘 부서집니다 .

그러나 총알이 관통을 못합니다.

 

 

 

 

 

 

우리가 칠판에 분필로 쓰는 그런 CHALK입니다

 

 

 

 

 

 

 

 

 

철제 계단으로 내려가면 동굴 처럼 생긴 굴로 해서 내려 갑니다.

  

 

 

 

 

 

 

연석회암 으로 되어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부석 부석 잘 부서집니다

 

 

 

 

 

 

 

마사다에도 이런 물 저장소가 있었는데 산의 경사진 곳에

비받이 통로를 만들어서 빗물을 받아 저장했는데

밑에서 방은 빗물은 ROPE를 이용하여 물통을 옮겼습니다.

 

 

 

 

 

 

 

 

 

 

 

 

 

 

 

 

 

 

 

 

 

철제 계단으로 내려가면 동굴 처럼 생긴 굴로 해서 내려 갑니다.

 

 

 

 

 

 

BAR KOKHBA(가장 심했던 유대인 3차전쟁시 지도자이름) 

그시대의 HERODION의 지하터널 입니다.

 

 

 

 

 

HERODIAN의 물 저장소 입니다.

 

 

 

 

 

 

 

 

 

 

 

 

내려 가시다가 중앙 물저장소 표시가 보이면 왼쪽으로 해서

조금만 내려 가시면 중앙 물 저장소가 나옵니다

 

 

 

 

 

 

 

계속 밑으로 내려 갑니다.

내려 가면서 어떻게 또 다시 이곳으로 올라올까..

 

 

 

 

 

 

계속 깊은 터널로..

 

 

 

 

 

 

 Herodium 물 저장소

 

 

 

 

 

 

Herodian Water Cistern in Herodium

 

 

 

 

거의 밑 바닥에 와서 조금 왼쪽으로 해서 1-20미터 정도 가면

보시는 바와 같이 중앙 물 저장소가 나옵니다.

 

 

 

 

 

 

 

바로 이곳이 이곳 헤로디움의 가장 중요한 시설인

물 저장소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이런 굴속을 이번에 참 많이 들어갔습니다.

 

 

 

 

 

 

 

 

 

빢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천장이 아주 높습니다.

적군과 싸우다 도망갈 때 빨리 도망갈 수 있게 만든 지혜가 보입니다.

 

 

 

 

 

 

 

거리는 짧은데 한 참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파란 선은 계단과 통로이고 노란선이 물 저장소입니다.

산 속 깊은 땅 속에 이런 규모의 시설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물이 부족한 이곳에서 이런 시설을 만들어

 이곳에서 생활 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하터널 넷트웍크 입니다.

 

 

 

 

 

 

중앙 저장소에서 오른쪽으로 해서 조금 돌아나와서 보면 이런 문이 보입니다.

바로 이 문이 밖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중앙 저장소에서 약 2-30 미터 정도 됩니다.

 

 

 

계단이 가파르니 조금은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 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가면 요새 산 중턱 아래가 나옵니다.

나가서 왼쪽으로 해서 나갑니다

 

 

 

 

 

 

 

 

 

나와서 먼저 만나게 되는 극장.

지금은 안 보이나 뒤쪽에 ROYAL CHAMBER가 있던

해롯궁의 ROMAN THEATER 입니다.

 

 

 

 

 

 

이런 요새를 만들기 위해,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물저장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목욕시설을 만들어 생활을 했던 권력은

이제 후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로8미터, 세로7미터, 높이 약 6미터인 ‘로얄 박스’는

극장 건물의 상부에 있는 방들 중앙에 있습니다.

 

 

이 인상적인 방은 극장에서 공연이 있을 때 당연히 왕과 왕의 측근들,

가족들이 지냈고 무대방향으로 완전히 트여있습니다.
뒤와 옆의 벽은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로마와 캄파니아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방식의

벽화와 석회 조형의 정밀한 구조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네쩨르는 아마도 유대를 방문하기 일년 전에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서 헤롯을 만난 마르쿠스 아그립바가 보낸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이 공사를 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방의 하이라이트는 양쪽에 셔터가 달려있고

다양한 자연주의적 풍경이 담긴 일련의 독특한 창문들이

있는 벽의 윗부분 입니다. 전원의 경치, 나일강,

닻이 달린 큰 배가 그려진 해상 경치 등의 풍경이 소재로 이용됐습니다.

한 창문에서는 나무 모양과 동물, 사람들의 모습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또 몇 개의 창문은 손상되지 않은 채 벽에 남아있는 반면

다른 창문들은 바닥에서 조각들로 발견되어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 연구실에서 복원 중에 있습니다.

 

 


셔터가 달린 창문들에는 이탈리아의 중기 후반 폼페이 스타일이 나타나고

 

주로 극장 무대나 정물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이 묘사돼있습니다.

헤로디온의 창문과 가장 유사한 것은

기원전 15-10년 경의 폼페이에 있는 “황제의 별장”입니다.

 

 

 

 

소형극장 뒤에있는 그림으로 그려진 “황제의 별장”입니다.

 

 

 

 


발굴 중에 모은 자료는 극장의 생애가 10년도 안된 매우 짧은 기간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극장은 헤롯 왕이 죽기 얼마 전 원뿔 모양의 인공 언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파괴됐습니다.

또 인공 언덕과 언덕의 아래에 위치한 유명한 기념비적인 계단을 건설하는 동안

‘로얄 박스’를 포함한 극장의 일부분은 임시적으로 건축자들이 이용했는데,

이를 벽에 남아있는 그들의 발자국, 조리 시설과 낙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 왕 무덤의 유물들을 모은 첫 전시회를 곧 개최할 예정인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이

자금 조달과 복잡한 ‘로얄 박스’의 보존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로얄박스 발굴장소는 극장이 부분적인 복원공사를 하는동안

방주변에 특수보호구조물을 설치한 후 대중에게 공개된다고 합니다.

 

 

 

 

 

 

소규모 원형극장

 

 

 

최근 발굴을 통해 헤로디온(Herodion)에 있는 헤롯 왕의

개인 극장 상부에 지어진 ‘로얄 박스’가 공개됐고,

이로써 유명한 유대 군주가 누렸던 호화로운 생활 방식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 2009년에 처음 발견된 이 극장은 2007년 발견 당시에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헤롯 왕의 묘와 가까운 언덕 중턱에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멋지게 장식된 극장은 대략 기원전 15년에 지어졌으며,

네쩨르 교수의 말에 의하면 같은 해에 로마 제국의

두 번 째 권력자였던 마르쿠스 아그립바가 방문했다고 합니다.

 

 

 

 

 

 

 

 

 

 

 

 

 

 

 

 

동굴을 나오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몇 번해서 원 지점으로 나갑니다.

 

 

 

 

 

 

 

 

 

 

 

 

 

 

 

 

 

 

 

 

 

 

터널에서 나와 나가는 길목 입니다.

 

 

 

 

 

 

 

 

 

 

 

 

이 원형돌이 바로 요새로 올라오는 적군을 향해

위에서 굴린 대포알 입니다.

이 돌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될겁니다.

 

 

 

 

 

 

싸울때 쓴 원형돌 대포알

 

 

 

 

 

 

 

롤링스톤 입니다.

 

 

 

 

 

 

다 내려와서 항상 너무 늦으니 빨리오라고 사진사(나)에게 손짓하는 동료

 

 

 

 

 

 

내려와서 준비된 수도꼭지에서 물병에 시원한

물을 담아서 마시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떠나자고 졸르는 가이드님

 

 

 

 

 

 

 

 

 

 

HOTEL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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