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위 선양 선봉에 섰던 그녀.1부는 22세때 한창 뜰 때 인터뷰 내용인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2부는 (밑에있는) 실제 연주상황.
이렇게 감명깊게 연주를 즐기기는 근래 드믄 일 이였습니다.아주 귀한 비데오 입니다.
피치카토며 bowing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더욱 유익했습니다.
Kyung-Wha Chung's first appearance on BBC television in 1971,
less than a year after her London debut.
She plays Mendelsohn concerto with
Andre Previn and London Symphony Orchestra.
정경화(鄭京和 1948~)
서울의 음악 집안에서 태어난 한국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4세경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2 년 후에 자기의사로 바이올린으로 전향했다.
그 뒤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어, 10세 전에는 자주 서울의 무대에 서서 연주했다. 1960년 12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음악원에 입학하여,
명교사인 이완 갈리미언에게 사사했다. 1967년에 카네기 홀에서 열 린 리벤트리트 콩쿠르에 출전했는데. 이 때는 동문인 핑카스 주커만도 참가했으며, 두 번의 연주에 의해서도 우열이 판가름나지 않아서. 마침내 두 사람이 공동 우승을 했다는 이례적인 결과가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때 재빨리 저널리스틱한 명성을 높였다. 유럽에 데뷔한 것은 1970년의 일로, 장소는 런던에서 프레빈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을 반주로 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것이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미국 등지에서 앞다투어 공연을 신청하는 등, 그녀를 일약 인기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그 이래 극히 분주한 연주 생활에 들어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 으로 주요 오케스트라와 활발한 협연을 계속하고 있다. 또 서울과 미국 등지에서 언니인 첼리스트 명화 및 동생인 피아니스트 명훈과 트리오로 호평을 받고 있다.
1984년 서른 여섯 나이로 결혼하면서 그의 연주기법도 부드럽게 변했다. 이 무렵 그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3막은 손가락 부상을 딛고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이다.
“부상 전과 후
인생관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손가락을 다친 후에는 악기를 완전히 접었으니까요. 50년 동안 바이올린을 하고 녹음을 했던 정경화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땐 지금 내게 주어진 사명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죠. 지금도 옛날 제 연주를 들으면 저 같지 않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테크닉 면에서 그때처럼 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완벽주의는 덜어냈어요.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22세때의 정경화 인터뷰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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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鄭京和 1948~)
Kyung Wha Chung plays Mendelsso hn violin concerto-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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