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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마을 초가집 한채:외딴 양지한덤

까까마까 2012. 11. 5. 20:48

 

 

 두메마을 초가집 한채:외딴 양지한덤

 

 

 

 

 

 

 

중요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외딴 두메마을 양지한덤의 조길방 초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가지 않은 길은 늘 의문 속에 신비로 남아 있다.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와 맞닥뜨리는 일이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여행은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설령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고 해도 여행은 인생처럼 치명적이지 않다.

 더러 길을 잘못 들어 늦어질 수도, 돌아갈 수도, 전혀 다른 곳으로 빠질 수도 있는 게 여행이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게 여행이고, 그것 자체가 여행의 일부분이다.

이른 아침 이슬이 맺힌 거미줄.

뜻대로 되는 여행은 없다. 어차피 길이 엇갈릴 뿐이지,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아니므로 여행에서의 기로와 망설임을 되레 행복한 고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에 ‘나’는 두 번 다시 서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행은 평생처럼 순간을 사는 일이다. 짧지만 눈부신 순간을.

여행에 관한한 나는 이제껏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했다.

관광지보다 오지와 낙도를 떠돌았고, 명승지보다 시골길이나 산중의 외로운 풍경에 심취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 10년 넘게 그렇게 떠돌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로 다니는 것은 더 많은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소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거기서 만난 흔치 않은 것들과 낯선 풍경을 본 것만으로 그것의 보상은 충분했다.

정대리 양지한덤 오르막길의 성황나무와 돌서낭당(위). 양지한덤에서 볼 수 있는 조길방 초가 전경.

 해발 800미터쯤에 자리해 있다(아래).

당신은 여행이 호구지책이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하지만 이제껏 여행이 나를 먹여살리진 못했다.

무슨무슨 책을 내고, 짤막한 여행기사를 실어 번 돈은 고스란히 길에 뿌려졌다.

그러므로 나는 여행가일 수 없으며, 여행자일 뿐이다.

길 위에서 나는 늘 정처없었다. 우연히 들어선 길을 따라가다 낭패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무작정 들어선 길에서 뜻하지 않게 감동한 경험도 적지 않다.

초가집 헛간채 앞에 놓인 디딜방아는 이제 낡을대로 낡았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양지한덤이 그런 경우다.

대구 인근 가창댐을 따라가다

우연히 발견한 정대리 표지판을 보고 길을 접어든 것이 양지한덤까지 오르게 되었다.

정대리에서도 양지한덤까지 오르는 길은 지프차도 헐떡거리는 가파른 산길이다.

한참을 올라서면 금줄을 친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양지한덤 서낭당이다.

성황나무가 서 있다는 것은 여기서 마을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때는 가을이어서 가파른 산길에는 가랑잎이며 낙엽이 수북하다.

길가의 감나무에는 이제 막 홍시가 열어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정대리 양지한덤 조길방 초가 안채 섬돌에 놓인 흰 고무신.

해발 800미터. 그야말로 양지한덤은 마을이 있을 것같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고작해야 마을은 다섯 가구가 전부이고, 터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지만, 마을은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어떤 이는 양지마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한덤마을이라고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양지한덤이라고 한다. 어떤 마을 사람에 따르면 이 곳에서는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솟았다가 금세 쏘옥 내려가고 마는 곳이라고 해서 양지한덤이란다. 실제로 양지한덤에서는 주변의 치솟은 봉우리에 해가 가려서 볕 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양지한덤 아래에는 해가 이마저도 들지 않아 음지한덤이라 불리는 마을도 있다. 어떤 이는 마을 뒷산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한덤’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지한덤에서 만난 흙벽이 떨어져나간 외양간. 뚫린 흙벽 사이로 늙은 소의 실루엣이 보인다.

두메마을인 양지한덤에는 두메마을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초가가 자리해 있다.

 조길방 초가(중요민속자료 제200호)로 이름붙은 이 초가에는

현재 조씨의 후손인 젊은 조대희 씨가 오며가며 살고 있다.

230여 년 전 함안 조씨가 난리를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와 지은 초가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너무나 번듯하다.

집의 생김은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 세 채의 건물이 ㄷ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기단을 높인 안채를 중심으로 마당 좌우에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다.

이 집은 보기 드물게 거목으로 자란 싸리나무를 잘라 집 기둥을 삼았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항간에는 싸리나무가 기둥으로 쓸 만큼 자랄 수가 없으니,

이는 그냥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양지한덤 입구 오르막길에 서 있는 감나무에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안채에서 마당을 건너 아래채를 지나면 바깥에 그냥 둔 디딜방아도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써오던 디딜방아이고, 아직도 멀쩡하지만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초가 뒤편으로는 감나무가 주렁주렁 감을 매달고 둘러서 있다.

어떤 집에서는 요즘 보기 드문 밀타작을 하느라 좁은 마당이 밀 이삭 천지이고,

 어떤 집에서는 소에게 먹일 쇠죽을 쑤느라 아궁이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요즘 정말로 보기 드물어진 우리 밀. 타작을 위해 마당에 밀이삭을 말리고 있다.

 

 

 

 

 

 

 

 

 

 

 

 

걷고싶은 가을 시골길 추천 5

걷고싶은 가을 시골길 추천

 

 


무건리 가는 길에 만난 노란 단풍.

때때로 차를 버리고,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오로지 발바닥으로 흙바닥과 교감하며, 길의 질감을 느끼고 싶은 길이 있다.

인류 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길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것은 속도와 물류 기능이 더해진 ‘도로’가 되면서

자연과 자원을 파괴하는 통로가 되고 말았다.

기능적으로 길과 도로는 다른 것이다.

길이 태생적이고 자연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도로는 인위적이고 문명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길은 애당초 보행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도로는 자동차나 기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위한 것이다.

길에는 자연의 모든 흔적과 무수한 전설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지만,

도로에는 시공일자와 교통사고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쩐지 길에서는 걸어야 할 것같고, 도로에서는 달려야 할 것같은 기분이 난다.

 

 

 

전통적인 우리의 길이 맨 처음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침략과 수탈로에 다름아닌 철길과 교통로를 건설하면서부터이다.

물자수송과 침략을 위해서는 되도록 넓고 곧게 도로를 건설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천년이나 이어져 온 우리의 길은 뭉청뭉청 잘려나가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가 되고 말았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시작된 경제개발시대에 이르러 또한번 우리의 옛길은

 대대적인 수난을 당해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수난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겨우 남아 있는 시골길은 눈물겹다.

간신히 흘러가는 시골길은 안쓰럽다.


1. 삼척 무건리 가는 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모롱이길

 

 

 

 

 

무건리(‘물건네’에서 유래) 소재말에서 큰말까지 이어진 십여릿길은

차와 사람을 전혀 만날 수 없는 심심하고 무료한 길이다.

이 은밀한 길은 산 아래 소재말에서 시작된다.

소재말에서 가파른 고개(국시재)를 올라서면 고갯마루에 성황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거기서부터 큰말까지는 비탈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내내 이어진다.

다만 너무 심심하지는 않게 길은 산자락의 굽이를 따라 구불구불 에움진다.

산의 능선도 길처럼 흘러서 멀찍이 다른 능선과 만나고 겹치고, 헤어진다.

 

 

 

무건리 소재말에서 큰말 들어가는 외롭고 쓸쓸한 산모롱이길.

 

 

 

수시로 몸을 바꾸는 구름과 바람에 잎들이 맞부딪치며 내는 미묘한 소리와

가을산을 아찔하게 물들이는 붉고 노란 단풍과 숲에 깃든 적막과 적막을 흔드는

어떤 새의 음악들. 그 속으로 걸어간 발자국들.

도로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나는 길 위에서 본다.

차를 타거나 속도를 내서 지나가면 보지 못했을 것들을 길 위의 보행에서 나는 본다.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걸어야 제격인 무건리 가는 길.

이 길을 나는 가을에도 왔고, 봄에도 왔다.

가을 저녁의 길은 약간 두려웠고, 봄 아침의 길은 더없이 눈부셨다.

무건리 인근에서 만난 붉은 단풍의 물결.


황조리에서도 황새터 오르는 길은 부드러운 곡선이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지르는 옛 두메마을길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 사는 집 한 채에 빈집이 예닐곱 집. 길 위에서 보면 올라온 길의 곡선 너머로 육백산 자락의 가을 단풍과 뭉게구름이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서 건너편 산자락을 타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성하밭이고, 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덕지기 본마을이다. 성하밭 오르는 길은 황새터보다 더 경사가 심해서 마을까지 가자면 두세번은 다리쉼을 해야만 한다.

 

 

 


3. 인제 마장터 가는 길: 문명을 비켜선 은밀한 산중마을


 

2. 삼척 황새터 가는 길: 하늘과 맞닿은 곳


황새터 중턱에서 바라본 에움진 길과 뒤로 펼쳐진 육백산 풍경.

도계 인근의 마을은 하나같이 옹숭깊은 두메마을이다.

가곡면 동활리도 그렇고, 도계읍 황조리도 그렇다.

특히 육백산(1244미터)이 솟아 있는 황조리는 삼척의 전형적인 산촌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옛날부터 황새가 많아 황새터, 황새밭이라 불려온 황조리는 덕지기,

가마실, 방우리, 성하밭, 황새터 등 여러 자연마을이 육백산 골짜기를 따라 흩어져 있는데,

특히 성하밭과 황새터는 해발 800여 미터 안팎에 자리잡고 있어

그야말로 마을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황새터 건너편 마을인 성하밭에서 만난 곶감 말리는 풍경.

 

 

 

 

황조리에서도 황새터 오르는 길은 부드러운 곡선이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지르는

 옛 두메마을길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 사는 집 한 채에 빈집이 예닐곱 집. 길 위에서 보면 올라온 길의 곡선 너머로

육백산 자락의 가을 단풍과 뭉게구름이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서 건너편 산자락을 타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성하밭이고,

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덕지기 본마을이다.

성하밭 오르는 길은 황새터보다 더 경사가 심해서 마을까지 가자면

두세번은 다리쉼을 해야만 한다.

 

 

 


3. 인제 마장터 가는 길: 문명을 비켜선 은밀한 산중마을

 

 


붉고 노란 단풍잎이 융단처럼 깔린, 마장터 들어가는 호젓하고 적막한 산길.

 

 

마장터 가는 길은 바퀴가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잡아당기는 길.

길은 미시령 ‘창바우’라는 곳에서 제법 수량 많은 계곡을 건너야 시작된다.

그것도 눈을 씻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산 사람들은 이 길을 샛령길이라 부른다.

이 길을 아는 사람은 드물어서 같은 동네 용대리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절반 이상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옛날 인제나 원통의 지게꾼들은 감자나 잡곡을 지고 이 샛령길을 넘었고,

고성이나 속초의 마부들은 소금을 싣고 반대쪽을 넘어와 마장터에 이르렀다.

그 옛날 마장터는 난장으로 물물교환을 하던 산중장터였던 셈이다.

마장터라는 이름도 바로 이 곳에 마방과 장터가 있었다는데서 비롯하였다.

 

 

 

 

 

 

 

 


마장터에서 볼 수 있는 한칸짜리 오두막 샛집.

길은 계곡을 따라 실낱처럼 이어지다가 이내 은밀한 숲으로 꼬리를 감춘다.

곰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무섭도록 적막한 숲길.

신비가 드리운 계곡의 그늘. 봄과 여름, 가을에 각각 한번씩 나는 이곳을 다녀갔지만,

아무래도 가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는 안개가 자욱해서 숲은 더없이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길에는 붉고 노란 갖가지 단풍이 융단처럼 깔려 아른사른했다.

숨찬 언덕을 넘어가 만난 오두막 샛집은 눈물겨웠다.

설악산 북쪽 한복판에 이런 숨겨진 마을이 있다니!

분명 이 곳의 풍경은 70년대의 낡은 흑백사진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마장터에서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을 만났다.

1시간쯤 타임머신을 타고 와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마장터는 현실 밖의 지층연대 속에 있었다.


4. 달성 양지한덤 가는 길: 첩첩산중 외딴마을에 초가 한 채


양지한덤 올라가는 길의 성황나무와 돌서낭.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양지한덤 가는 길.

정대리에서도 양지한덤까지 오르는 길은 지프차도 헐떡거리는 가파른 산길이다.

이왕이면 차를 버려두고 걸어서 올라야 제격인 길.

한참을 올라서면 금줄을 친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양지한덤 서낭당이고, 서낭당을 지나면 마을이 멀지 않다.

때는 가을이어서 가파른 산길에는 가랑잎이며 낙엽이 수북하다.

길가의 감나무에는 이제 막 홍시가 열어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해발 800미터.

그야말로 양지한덤은 마을이 있을 것같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첩첩산중 양지한덤마을에서 볼 수 있는 조길방 초가.

고작해야 마을은 다섯 가구가 전부이고, 터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지만,

마을은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두메마을인 양지한덤에는 두메마을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초가가 자리해 있다.

조길방 초가(중요민속자료 제200호)로 이름붙은 이 초가에는 현재 조씨의 후손인 젊은 조대희 씨가 오며가며 살고 있다. 230여 년 전 함안 조씨가 난리를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와 지은 초가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너무나 번듯하다. 안채에서 마당을 건너 아래채를 지나면 바깥에 그냥 둔 디딜방아도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써오던 디딜방아이고, 아직도 멀쩡하지만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제천 불구실 가는 길: 두메마을의 오래된 풍경들

불구실 마을의 수수밭 언덕.

대전리 임간마을에서부터 덕산면 수리, 짚실마을, 불구실,

한수면 덕곡리까지는 하나같이 흙집이 수두룩한 옛 마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덕산면 불구실은 50여 가구가 올망졸망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 앞의 펑퍼짐한 언덕은 온통 수수밭이어서

쨍한 가을볕에 다 익은 수수가 보기좋게 모가지를 숙이고 있다.

수수밭 너머에는 눈 시린 가을 하늘과 새털같은 구름이 점점 흩어져 있다.

수수밭을 지나 마을로 걸어들어가는데, 이건 꼭 오래 전 고향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여기도 흙집, 저기도 흙집에다 흙벽 건조실은 도처에 솟아 있다.

저기 흙집 어디에선가 사립문을 열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다.


짚실마을에서 만난 짚으로 엮은 짚둥우리.

인근의 짚실마을에서는 닭장에 짚둥우리가 남아서 때마침 암탉 한 마리가 알을 품는 ‘오래된 풍경’도 만난다. 여기서 아예 큰길을 지나 충주댐 수몰지구 쪽으로 들어가면, 호숫가에 자리한 운치있는 덕곡리도 만날 수 있다. 가을이면 덕곡 일대는 사과 익는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특히 덕곡의 맨 안쪽에 자리한 봉화재(옛날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 함)는 산자락과 마을 주변이 온통 사과밭이다. 이 곳에서 가을은 단풍과 하늘의 빛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과 익는 알싸한 향기로 온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꿩은 꿩꿩거리며 날아가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닭들은 고샅을 질러 계곡으로 총총 내려간다.

마을의 몇몇 집은 빈집으로 남아서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마루와 마당에 세간이 아직 널려 있어 사람 사는 집 같은 어떤 집도 막상 들여다보면 텅 비었다.

하긴 과거에는 이 마을에 10여 가구 이상이 살았다고 하니,

절반 넘게 마을을 떠난 셈이다. 요즘의 두메마을 신세가 다 이렇다.

 

 

 

 

출처-구름과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