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광"이란 엄비치 으뜸으로 빛이 비추는 곳이란 뜻.
4.19혁명 50주년 맞아
‘4·19혁명기념관’
[폴리뉴스 김유진 기자 ]
“시대변화에 맞게 제반시설 재개관"
국가보훈처는 4.19혁명 제50주년을 맞아 4.19혁명기념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오는 1일 재개관한다.
국가보훈처는 정양석·최규식 국회의원, 김현풍 강북구청장, 각 보훈단체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월 1일 오전 11시에 재개관식을 열 계획이라고 31일 밝혔다.
재개관하는 4.19혁명기념관은 정의의 불꽃·4·19혁명의 전개과정·증언(1층),
영상실·혁명의 유산·체험학습장(2층), 전망대․야외학습장(3층) 등으로 다채롭게 재구성됐다.
특히 헌법 전문에 명기된 ‘4·19이념’인 자유·민주·정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신 4·19 영령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4·19정신인 ‘정의의 불꽃’ 작품 전시를 비롯해서
당시 700여자로 된 ‘전국사월혁명중고생학생대표’의 조사(弔辭) 내용도 발굴해 1층에 전시하고 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정식 개관 전인 지난 1월 일반 국민은 물론 학생, 체험학습 강사,
문화관광해설사 등을 대상으로 시험 운영을 했다.
국립4.19민주묘지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419 혁명기념관의 외부의 모습입니다.
1,2층은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옥상은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면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안내데스크가 자리하고 오른쪽 벽면에는
1,2층의 기념관 내부 안내도가 그려져 있네요.
기념관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에는 3D 형태의 불꽃으로 꺼지지 않는
민주화 정신을 상징하는 "정의의 불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의의 불꽃 통로를 지나니 본격적으로
"혁명전야"코너부터 전시실 내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처음 전시물은 조국의 광복과 전쟁 그리고 독재정치라는 주제로 년도별로
굴직한 사건들을 표시해 놓은 전시물입니다.
3월 15일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하는
마산의 모습을 표현한 "마산3.15의거" 미니어쳐입니다.
오른쪽 벽면에는 3.15부정선거 부터 어떻게 4.19의거가 생겼는지 표현한
석고로 만든 작은 전시물이 순서대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왼쪽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 옥상 전망대의 모습이다.
뒤쪽 북한산의 모습과 잘 만들어진 나무마루가 휴식을 취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옥상전망대에서 바라본 국립
4.19 민주묘지의 모습이다.
4.19 기념광장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시위대는,
시위대 중 3월 18일 경 실종되었다가 4월 11일 부산일보 허종 기자의 기사에 의해
마산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시위는 격화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하야했으며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의 일가족은 사퇴 후 동반자살하였다.
일본의 민중운동인 안보투쟁에도 영향을 준 혁명이다. 4·19 민주혁명 혹은 4·19 학생운동,
4·19 의거, 4월 의거, 4월 혁명, 미완의 혁명 등으로도 일컫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4월 인민봉기 , 4·19 인민봉기,
4.19 반미 반파쇼 항쟁, 남조선인민봉기 라고 부른다.
시험 운영기간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의의 불꽃, 첨단장비를 활용한 혁명진행과정 연출,
명사방명록, 1960년대 분위기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거나
염원의 벽 코너에 방문소감을 메모하는 체험코너,
4·19묘지를 중심으로 한 수유동 북한(삼각)산 기슭의 이준 열사,
손병희 선생 등 20여분의 애국지사 묘소 안내도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고휘주 국립4·19민주묘지관리소장은 “4·19혁명기념관의 관람객 편의 제공을 위해
장애용 엘리베이터 설치, 옥외에서 이용가능 한 화장실 진입로 개설,
옥상에 야외학습장을 마련하고 내방객에게도 개방하는 등 시대변화에 맞게
제반시설을 재단장 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04월 04일 일요일
419 기념관는 국립 4.19민주묘지내에 있으며 국립 4.19민주묘지는
3.15 부정선거의 정당화를 위한 총.칼에 대항하여 맨손으로 불의와 싸워
희생을 당한 분들의 안식처로 자유, 민주, 정의가 살아 숨쉬는 묘역으로서,
4.19혁명에 참가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과 희생하신 분들의 영령들이
잠들어 계시는 성스러운 곳이며, 경관이 아름다운 선열들의 혼이 담겨있는 성역입니다.
4.19민주혁명은 자유를 위해 정의감에 불타는 학생들과 국민들이 혼연 일체가 되어
불의를 물리치신 자유 민주 정의에 대한 열망의 결과였고, 나아가 글로벌 시대에
세계사적 민주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과 중앙공원 버스 정거장
민주공원에는 서면에서 42번 해운대와 광안리에서
38번 버스가 입구까지 운행하고 있다.
엄광산 둘레길 충혼탑에서 본 민주공원
엄광산 둘레길 중앙공원 조각동산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 4.19광장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 상징 횃불 조형물
1960년 4월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조작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하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
이는 비합헌적(非合憲的)인 방법으로 헌정체제(憲政體制)의 변혁과 정권교체를 결과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혁명(革命)으로 규정하여 이를 4월혁명, 4·19혁명, 4·19학생혁명,
또는 4·19민주혁명 등으로 불리었으나 5·16군사정변 이후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혁명으로 환원되었다
엄광산 둘레길 중앙공원 조각동산
엄광산 둘레길 중앙공원 조각동산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 표지석
엄광산 둘레길 충혼탑
엄광산 둘레길 민주공원과 충혼탑
엄광산 둘레길 구봉산과 엄광산 자락들
엄광산 둘레길 구덕산
엄광산 둘레길 대신동 구덕골
엄광산 둘레길 대신동 구덕골 꽃마을
엄광산 둘레길 구덕산
편집솨음악=씨밀래
일부출처=doopedia.
'세계의 역사자료,여행지 > 문화산책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향교 (0) | 2014.02.12 |
---|---|
★한강 28개다리와 최초 준공 순서★ (0) | 2014.01.16 |
현충사 은행나무길 구경 오세요. (0) | 2013.11.20 |
안동 가볼만한곳 '하회마을' 속으로.. (0) | 2013.11.16 |
뿌리의 길-다산 초당 (0) | 2013.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