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이 넘치는 홍매화
기도시
이해인 수녀
해마다 이맘때쯤 당신께 바치는 나의 기도가
그리 놀랍고 새로운 것이 아님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얼음도 풀리는 봄의 강변에서 당신께 드리는 나의 편지가
또 다시 부끄러운 죄의 고백서임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살아 있는 거울 앞에 서듯 당신 앞에 서면 얼룩진 얼굴의 내가 보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나의 말도 어느새 낡은 구두 뒤축처럼 닳고 닳아
자꾸 되풀이할 염치도 없지만
아직도 이 말 없이는 당신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소서 주님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고 다급할 때만 당신을 불렀음을
여전히 게으르고 냉담했고 기분에 따라 행동했음을
여전히 나에게 관대했고 이웃에겐 인색했음을
여전히 불평과 편견이 심했고 쉽게 남을 판단하고 미워했음을
여전히 참을성 없이 행동했고 절제 없이 살았음을
여전히 말만 앞세운 이상론자였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주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하셨습니다.
이 사십 일만이라도 거울 속의 나를 깊이 성찰하며
깨어 사는 수련생이 되게 하소서
이 사십 일만이라도 나의 뜻에 눈을 감고 당신 뜻에 눈을 뜨게 하소서
(부산개금 개림초등학교 뒤)
출처=나그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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